2월의 설국 아침에 부엌에 갔다가 깜짝 놀랬다 날씨가 풀려 어제 이곳 뽁뽁이를 마침 떼어냈더니 바로 눈풍경을 본다 여기저기 커튼을 걷어보니 밤새 얼마나 내린 거니 기다리는 냥이 밥 주고 먹는 동안 이 창 저 창에서 찍어보고 올 겨울은 정말 원 없이 눈을 본다 날씨가 따뜻해서 몇 시간 만에 정말 눈 녹듯이 사라져 버렸지만 좋았다 올 겨울 마지막 눈일까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하면 또 그립겠지 12시에 축구 봐야 하는데 너무 졸립다 사야의 낯선 마당 2024.02.06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니체의 이 책을 읽은 적이 없어서 적절한 차용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제목이 생각났다찰스 다원 종의 기원 이란 영화를 봤다 다윈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으나 눈꼽만큼도 아는 게 없는 진화론의 창시자 제목만으로는 뭔가 공부가 좀 될까 해서 보기 시작했는데 너무 아름답고 좋은 영화라 푹 빠져 봤다 기대했던 것과 달리 학문에 초점을 맞춘 게 아닌 인간 다윈에 관한 이야기 다윈이 인간인건 너무나 당연한 건데 단 한 번도 다윈을 한 인간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감동적이었달까 아끼던 딸의 죽음으로 고통받고 안 좋은 건강 그리고 신념과 종교사이에서 신음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화면 속에 제목처럼 너무나 인간적으로 그려져 있다 특히 사촌과 결혼한 근친관계로 약한 아이들을 낳은 게 아닌가 고민하는 장면 열명이나 낳았으니 그.. 7. 따뜻한 은신처 2024.02.04
종교라는 이름의 폭력 요즘 핫하다는 아일랜드 작가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읽었다 이 백페이지남짓의 짧은 소설도 역시나 읽기가 쉽지는 않았는데 지난번 이시구로의 소설이 황당할 정도로 격식 있고 올드한 대화체였다면 이 소설의 대화체는 또 사야가 실제로 접해본 적이 한 번도 없는 형식의 대화들이라 좀 당황스러웠다 지난번도 그렇긴 했는데 이런 문장들은 어떻게 번역하는지 넘 궁금할 정도 워낙 짧은 책인 관계로 한 번은 그냥 쭉 읽고 다시 정성스럽게 읽었다 이 소설은 1985년과 회상이 배경이다 1946년 만우절에 16세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난 주인공 빌 펄롱은 친절하고 부유한 고용주의 보호아래 아버지가 누군지 늘 궁금했던 결핍과 더불어 12살에 엄마마저 잃지만 잘 성장한다 현재 딸 다섯에 넉넉한 살림까진 아니더라도 딸들을.. 잉크 묻은 책장 2024.02.03
징글징글한 욕망 얼마 전까지 사야의 소박한 소망은 언젠가는 독일어를 정말 잘하게 되는 되는 거였다 외국어를 정말 잘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큰 욕심 없이 그냥 매일 뉴스 듣고 유튜브보고 가끔씩 소설도 읽고 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 싶었다 지금이야 독일어를 쓸 일도 거의 없으니 못한다고 스트레스받을 일도 없고 말이다 그래 작년 초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갑자기 의식에 관심을 갖게 되고 또 이팔 문제며 영어가 필요하게 되어버린 것 우크라이나 전쟁까지는 어찌 독일어로 커버가 되었는데 이팔 문제는 그게 안되더라 불쌍한 독일어라고 해야 하나 한 독일물리학자의 방송을 보고 감동해서 그녀가 한다는 유튜브를 찾아보니 영어로 진행을 하고 있고 들을만한 웬만한 방송은 다 영어다 티비에서는 독일뉴스방.. 7. 따뜻한 은신처 2024.02.02
소설을 읽는 기쁨 우연히도 두 소설이 거의 같은 시기에 출판되었고 둘 다 여행 중의 이야기다 지난번에 산 책들도 장르가 전혀 다른 책임에도 둘 다 에밀리 디킨스의 시구절을 앞에 써놓았더랬는데 이런 거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야는 그저 신기하다 일본계 영국인인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있는 나날 삼십 년 전에 안소니 홉킨스와 엠마 톰슨이 나왔던 영화를 독일어 더빙으로 봤었는데 이해를 제대로 못했다 사실 내용도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소설을 읽는 내내 그 두 사람으로 상상하며 읽는 걸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영화를 먼저 본 부작용 같은 거랄까 이 소설은 달링톤홀이라는 저택에서 일하는 버틀러가 주인의 멋진 차로 여주인공을 만나러 떠난 일주일간의 여행 중 일어나는 일과 회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행을 하는 시점은 이차대전이 끝난 후지만 .. 잉크 묻은 책장 2024.01.29
늦은 크리스마스 선물 페북에 작년에 읽은 책중 열 권을 뽑아 올려놓은 누군가의 리스트를 봤는데 사야도 읽고 높이 평가하는 책이 세권이나 있는 거다 성향이 비슷한가 싶어 나머지 중 이 두 권을 골라 늦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야에게 해줬다 날씨가 좋으면 밖에서 틈틈이 읽을 생각이었는데 그럴 기회도 거의 없었고 시간도 안나 놔두었다가 소설 읽으며 좀 쉬기로 했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책은 전부터 읽고 싶은 책이기도 했는데 요즘 영어단어로 너무 고생을 해서 우선 한국어책을 시작 아르토 파실린나의 기발한 자살여행 처음 접해보는 핀란드작가의 소설인데 독일어 중역이다 소설은 스토리뿐만 아니라 표현도 읽는 건데 어찌나 실망스럽던지 미리 알았다면 안 샀다 번역도 어찌 보면 재창작인데 그걸 또 번역하면 어쩌자는 말이냐고 처음부터 선입견 때문이었는.. 잉크 묻은 책장 2024.01.27
지쳐가던 사야 이번 겨울은 11월부터 추워서였는 지 해보기가 힘들어서인 지 벌써 지치고 쉽지가 않다 살짝 해가 나왔다가도 사라져 버리고 이런 겨울 정말 처음 본다 마당의 몇 식물들은 썩어가고 있다니까 난로 피우는 것도 지치고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은데 해야 할 일이 더 많아 힘들다 저거 간신히 다 태웠는데 저만큼 또 있다 냥이 밥 훔쳐먹는 직박구리 역시 흔한 새라는데 처음 본다 갑자기 나타난 당당이놈 사야가 궁금해하는 걸 어찌 알았나 신기하지만 밥도 엄청 경계하며 먹고는 인사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냥이들 밥 준다고 이리 고생을 하는데 새끼쥐가 또 들어왔다 지난겨울에는 들어온 곳이라도 알았지 미치고 팔짝 뛰겠더라 또 예상외의 곳에서 죽어있는 걸 발견할까 공포스러워 잡긴 잡았는데 끔찍한 건 매한가지 이럴 땐 혼자 사는 .. 7. 따뜻한 은신처 2024.01.23
당황스러웠던 독서경험 내가 된다는 것 (being you) 아닐 세스의 이 책을 드디어 제대로(?) 읽었다 소설도 아닌데 이렇게 흥미진진하고 재밌는 책은 처음인데 책을 읽었더니 생각이 많아지는 게 아니라 생각이란 걸 할 수가 없다 의식이 뭔지는커녕 내가 누구인지도 헷갈린다 아니 생각한다는 게 뭔지도 잘 모르겠다 저자는 의식이 뭔가라는 주제로 나라고 할 수 있는 그 나는 누구인가를 신경학자의 입장에서 굉장히 끈기 있게 설명하고 있다 사야에게 가장 놀라웠던 사실은 우리가 뇌에 있는 투명창으로 세상을 보는 게 아니라 각종 감각신호들이 뇌에서 예측하고 통합되고 추론되고 정보예측의 오류를 수정하고 다시 추론하는 수없는 과정을 거쳐 인식된다는 것 그러니까 우리는 사과를 보고 그냥 사과라는 걸 아는 게 아니라는 사실 살면서 내가 누구인가.. 잉크 묻은 책장 2024.01.22
천하정도 자라면서 도저히 피해 갈 수 없었던 단어 성리학 혹은 주자학 뭔 말인지는 몰라도 조선의 통치철학이었고 그에 따라 나오는 사대부 폐해 송시열 당쟁 등등 거기에 슬며시 끼는 게 하나 더 있으니 바로 양명학 예전에 조선과 일본에 관심을 가질 때 그 양명학이 조선에서만 배척을 당했다 뭐 이런 이야기도 있었고 도대체 양명학은 뭐고 양명은 누굴까 궁금했었다 중화티비에서 그 양명학의 창시자 양명(陽明) 왕수인(1472-1528)의 일생에 대한 드라마를 하고 있는 걸 우연히 알게 되어 좋은 기회다 싶어 보기 시작한 게 한 달도 더 전 드디어 조금 전에 그 긴 여정이 끝났다 심학의 대가라는 그가 주장하는 건 양지론과 지행합일설인데 인간에게는 누구나 양지(良知)가 있고 그걸 갈고닦으며 아는 것을 실천하면 누구나 성인이 된.. 7. 따뜻한 은신처 2024.01.16
윈저가 이야기 며칠 덴마크여왕이 양위하는 문제가 핫이슈길래 작년 말에 봤던 다큐멘터리 이야기 원하지 않았건 계속 들었던 영국왕실 이야기 주로 추문이긴 했어도 하도 들어서 뭔가 친밀감이 느껴졌달까 어쨌든 조각조각 들었던 이야기들은 사야에게 어떤 인상을 남겼고 의견도 갖게 만들었다 지난번 이스라엘 문제에서도 절절히 느꼈는데 파편적으로 아는 것만큼 위험한 것도 없더라는 것 영국왕실에 대해 잘못 안다고 뭐 위험할 것까지야 있겠냐만 티비에 있길래 그냥 전체적으로 한번 훑고 싶었다 6부작이라 하루에 하나씩 볼 생각이었는데 5부까지 보고 그냥 6부도 마저 봐서 오일 걸렸다 조지 5세 그리고 여왕의 백부인 에드워드 8세가 유부녀와의 사랑으로 왕위를 포기하는 것, 친부인 말더듬이 조지 6세, 그리고 여왕서거 전까지 스캔들을 중심으로 .. 7. 따뜻한 은신처 2024.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