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 사야의 소박한 소망은 언젠가는 독일어를 정말 잘하게 되는 되는 거였다
외국어를 정말 잘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큰 욕심 없이 그냥 매일 뉴스 듣고 유튜브보고 가끔씩 소설도 읽고 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 싶었다
지금이야 독일어를 쓸 일도 거의 없으니 못한다고 스트레스받을 일도 없고 말이다
그래 작년 초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갑자기 의식에 관심을 갖게 되고 또 이팔 문제며 영어가 필요하게 되어버린 것
우크라이나 전쟁까지는 어찌 독일어로 커버가 되었는데 이팔 문제는 그게 안되더라
불쌍한 독일어라고 해야 하나
한 독일물리학자의 방송을 보고 감동해서 그녀가 한다는 유튜브를 찾아보니 영어로 진행을 하고 있고 들을만한 웬만한 방송은 다 영어다
티비에서는 독일뉴스방송마저도 영어로 하고 이것저것 찾아 듣다 보면 독일어뉴스는 겨우 15분짜리인데도 거를 때가 있다
스트레스를 좀 받긴 했어도 별 생각은 없었는데 이번 겨울 영어책들과 씨름하다 보니 또 영어를 잘하고 싶다는 잊었던 욕망이 마구 살아나는 거다
영문학과를 가고 싶었던 오래 전의 사야가 여전히 내면 속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
독일에서의 사 년을 빼면 십 년을 꼬박 영어와 독일어사이에서 정말 고통스럽게 살았다
매일 쓰고 살아야 하는 영어의 너절한 실력에는 화가 났고 제대로 접하지도 못하면서 갈고닦아야 하는 독일어는 숨이 턱턱 막혔다
이러니 중국어는 어쩔 수 없었다고 치고 사 년도 넘게 살며 일본어를 제대로 배우지 않은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한 번쯤은 후회해 볼 법도 한 이혼을 감사하게 생각하게 된 건 그 남자가 러시아로 가버렸기 때문이다
간절히 틀리지 않는 언어를 쓰고 살고 싶다고, 외국어는 정말 징글징글했었는데 이렇게 독일어와 영어 사이에서 고통받는 날이 또 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며칠간 이 책들과 씨름을 하다가 결국 포기하기로 했다
올리버 색스의 책은 몇 년 전에도 읽다가 포기했었는데 관련공부를 조금 하고 읽으면 낫겠거니 했는데 아니다
도킨스의 책도 뭔 말인지 모르겠어서 아예 진도가 안 나간다
근데 웃긴 건 차라리 영어로 읽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는 것
이게 무슨 말인지 문장을 곱씹어보고 단어를 찾아보는 건 매한가지더라
그래서 위의 책들을 영어로 산 건 아니고 이렇게 또 영어소설을 샀다
독일어공부하는 건 겨울공부 계획에 없었다지만 영어소설을 읽을 계획 같은 거도 없었다
스무 살 때도 저러고 비디오를 봤었는데 요즘 또 저러고 있다
중학교를 들어가기 전 겨울방학에 영어를 처음 시작했으니 정확히 44년간의 짝사랑
정말 징글징글한 욕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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