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따뜻한 은신처

천하정도

史野 2024. 1. 16. 19:09

자라면서 도저히 피해 갈 수 없었던 단어 성리학 혹은 주자학
뭔 말인지는 몰라도 조선의 통치철학이었고 그에 따라 나오는 사대부 폐해 송시열 당쟁 등등
거기에 슬며시 끼는 게 하나 더 있으니 바로 양명학
예전에 조선과 일본에 관심을 가질 때 그 양명학이 조선에서만 배척을 당했다 뭐 이런 이야기도 있었고 도대체 양명학은 뭐고 양명은 누굴까 궁금했었다

중화티비에서 그 양명학의 창시자 양명(陽明) 왕수인(1472-1528)의 일생에 대한 드라마를 하고 있는 걸 우연히 알게 되어 좋은 기회다 싶어 보기 시작한 게 한 달도 더 전
드디어 조금 전에 그 긴 여정이 끝났다

심학의 대가라는 그가 주장하는 건 양지론과 지행합일설인데 인간에게는 누구나 양지(良知)가 있고 그걸 갈고닦으며 아는 것을 실천하면 누구나 성인이 된다 뭐 이런 말
드라마에서는 깊이 들어가지도 않고 그걸 오십 회 가까이 반복하니 어찌 보는 게 쉬웠겠냐 ㅎㅎ
그냥 학자였던 것만은 아니고 군사지략에서도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는데 인생은 그냥 고난의 연속에 결국에는 객사까지 하는 인물
사야에게 가장 인상적인 게 있었다면 어느 순간 어느 곳에서도 강연을 멈추지 않더라는 것
답답하고 고집스러운 면도 많았지만 한 학자의 진지한 고민을 보는 과정 자체는 숙연하게 하는 뭔가가 있더라
양명도 말하자면 방법론만 다를 뿐 현대 의식과학을 연구하는 학자들과 다를 바는 없는 모습
따로 찾아보니 양명의 책 전습록이 그의 생전에 조선에서도 읽혔고 그의 사상을 따르는 사람들이 없는 건 아니었단다

여기서 재밌는 캐릭터는 명의 10대 황제인 정덕제(1491생 1505-1520 재위)인데 자신에게 장군이라는 제2의 역할을 부여해 양명이 이미 잡은 반란군을 풀어줬다 다시 잡는 부캐놀이도 하고 아주 현대적(?) 이더라는 것
환관들에게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고 황당한 인물이랄까
사야는 여전히 조선이 왜 그리 명나라를 숭배했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
아무리 봐도 청나라가 더 나아 보이는구만 오랑캐라고 무시하고 조선만이 명의 진정한 후계자라고 한건 불가사의다

사야가 꾸역꾸역 드라마를 본 건 사실 이 책 때문이었다
누군가의 추천으로 사놓은 거 같은데 이번 기회에 함께 보면 좋겠다 싶었다
문제는 이 책의 중국어표기가 일반보통화랑 달라 누가 누구 인지도 헷갈리고 잘 읽히지가 않는다 중국어도 아니고 영어책  번역이던데 문장들도 낯설다
잠시 쉬어가며 읽으려던 책이었는데 사야가 무슨 성리학과 양명학을 비교 연구할 것도 아니고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뭔가 찜찜한 마무리다만 왕수인의 일대기를 본 걸로 사야의 양명학에 대한 관심은 끝
시간도 애매하고 거실에서는 볼 수도 없어서 침대에서 저녁까지 먹어가며 재미도 없는 걸 보느라 고생(?)했는데 끝나니 속이 다 후련하다
이제는 자유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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