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따뜻한 은신처

일단 다 읽었다

史野 2024. 1. 10. 12:31

사야가 독일에서 처음 들은 세미나가 르네상스 이탈리안 미술이었는데 한마디도 못 알아들었다
미치고 팔짝 뛰겠어서 담당교수를 찾아갔었는데 내용을 알면 알아듣기가 좀 나을 거라며 관련 영어책을 하나 추천해 줬다
정말 고마웠던 이 교수 자기는 한국어 못하는데 당신은 잘하지 않냐며 쓸데없는 기 까지 살려줬다
그 영어책이라고 이해했겠는가 그래도 읽어야 하니까 이를 악물고 끝까지 읽었다

이번에 being you를 읽으면서 그때 생각이 났다
그러니까 뭔 말인지도 모르면서 책을 다 읽은 건 거의 삼십 년 만이라 학생 때로 돌아간 거 같기도 하고 기분이 묘하더라
그때와 달리 이번에는 꼭 읽어야 하는 것도 아닌데 이해도 못하면서 끝까지 읽은 사야 정말 칭찬해 ㅎㅎ

처음부터 이해할 거라고 생각하고 시작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당황스러울 정도로 수많은 이름들과 개념들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는 실험과정들
한국말로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단어들 거기에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노화되어 가는 뇌
의식의 문제다 보니 철학자들 심리학자들 물리학자들 생물학자들 정신과의사들 뇌과학자들
반갑게도 장하석교수의 온도계 어쩌고 이야기도 나오더라
(봄에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그의 강연 하나를 들은 적이 있다)

이리 간략히 정리된 참고문헌을 옆에 두고 찾아보며 읽고 없는 건 인터넷 뒤지다가 포기
언급된 학자들의 유튜브 방송들을 찾아보다가 또 포기
이번 책 관련만 있는 건 물론 아니지만 유튜브에 나중에 볼 방송이 이백 개에 육박하는 상황 발생
저자가 언급한 영화도 몇 개 보면서 그래도 꾸역꾸역 마지막장까지 눈도장을 찍었다
한번 읽었으니 좀 쉬었다가 이제 다시 단어도 좀 제대로 찾아가며 읽어보면 되겠다
겨울 아직 많이 남았다 ㅎㅎ

이해도 못했으면서 놀라웠던 건 굉장히 흥미롭고 또 저자가 참 따뜻한 사람이라는 거다
주변에 이과가 거의 없어서 뭔가 냉정하고 기계적일 것 같다는 편견이 있었는데 아니더라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사람들의 방송도 몇 개 봤는데 겸손하고 역시 따뜻했다
머리가 허연 노학자들이 모른다고 말하는 걸 보는데 뭔가 뭉클했다
책을 읽었다는 이야기지만 제대로 된 독후감은 아닌 관계로 그냥 여기 올린다


또 눈이 엄청 내렸다
기분 탓일까
눈풍경을 바라보며 아침을 먹는데 오늘은 뭔가 설악산 설경도 안 부러운 축복받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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