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크 묻은 책장 97

낯선 형식의 소설

에르난 디아스의 트러스트 어디선가 오바마대통령 추천이라길래 궁금해서 샀는데 이 소설을 언제부터 읽기 시작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 4부로 되어있는 소설을 1부는 공황시대의 뉴욕주식부자이야기로 나름 흥미롭게 읽었는데 2부부터는 뭔가 이상한 거다 같은 사람들 이야기인가 했더니 아닌 것 같고 1부랑 어떤 연관이 있는 지도 모르겠고 그러니까 무슨 소설인 지 감을 잡을 수가 없어 읽다 말다 하기를 여러 번 그래도 미련을 못 버리고 끝을 보잔 생각에 계속 읽는데 3부는 또 전혀 다른 이야기가 시작되니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하더라니까 월스트리트의 최고부자이야기를 하다가 뜬금없이 이탈리아 이민자인 아나키스트 아버지와 그 딸의 구구절절한 사연이 이어지고 사백페이지 소설인데 이백오십 페이지를 넘어서야 앞의 이야기들이 뭔 말인..

미국이란 나라

결국 힘겹게 정말 힘겹게 책을 다 읽었다 책도 책이지만 하필 가장 더울때라 집중하기가 너무 어려워 오래 걸렸다 다 읽고 느낀 건 미국이라는 곳도 피로 얼룩진 나라구나 하는 새삼스러운 자각 (나쁜 의미는 아니다) 원주민 말고도 초기 그 땅으로 건너간 많은 이들의 피 독립전쟁 남북전쟁 서부개척 등등 늘 미국을 이백 년밖에 안된 국가라고 들으며 자랐는데 초기이민자들까지 포함해 사백 년 역사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여태는 인디언들만 불쌍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초기 이민자들도 불쌍하기는 마찬가지란 생각 사실 살려고 발버둥치는 사람들에게 왜그렇게 잔인했냐고 묻는 건 무의미하다 어찌 보면 충무로보다도 더 자주 듣는 월스트리트가 인디언들을 막으려고 세운 벽에서 유래했다는 얘기를 들으니 수백 년을 건너 그 긴장감이 느껴지는 ..

뉴욕 3부작

2월인가 폴오스터에 대한 글을 봤는데 이 책이 집에 있다는 게 생각났다 왜 있는지 읽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 책 그렇게 꺼내어 식탁에 올려놓은 채로 시간이 갔다 그러다 접한 그의 타계소식 늘 그런 거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야 두 달도 넘는 시간을 지다 다니기만 했는데 기분이 이상하더라 그래서 읽던 책을 놔두고 읽기로 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누군가 읽으라고 두고 간 책이었다 큰 의미였으나 이제는 무관한, 책 안에 쓰여진 그 이름을 한참을 쳐다봤다 너무도 유명하지만 사야가 왜인지 접해본 적이 없는 작가 장편소설인 줄 알았는데 따로 발표된 중편소설들이다 일하며 잠깐씩 읽은 탓인 지 이해력 부족인 지 다 읽고 느낀 건 뭔 말인지 잘 모르겠다는 것 연결된 이야기라는데 그것도 잘 모르겠다 유리의 도시는 뭔가 익숙해서..

시진핑은 어디있는지

책장 속 책털기 4탄 지난번 도올 해제를 읽다가 이 책을 사놨던 게 생각났다 이런 책은 나왔을 때 읽어야 하는데 좀 늦었다 사야는 여러 번 강조하지만 중국도 좋아하고 중국어도 좋아하는데 그런 거에 비해 중국에 대해 아는 건 별로 없다 도쿄 살 때 일본에 관한 책들은 좀 읽었는데 상해 살 때는 책이 해외배송되는 걸 몰랐던 데다가 매일 어학원을 다니느라 여유도 없었다 그나마 드라마 열심히 봤던 게 중국을 이해하는 통로였달까 얼마 전에 중국 관련 방송을 하나 보기도 했고 시진핑이 궁금하기도 해서 요즘 공부방향과는 다르지만 읽고 가기로 했다 아 정말 사야는 도올 선생 안 싫어하는데 자주 느끼지만 책을 쓸 때 주제에 대한 집중력이 너무 떨어진다 이건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요약 능력부족이다 돈을 주고 이 책을..

한 젊은 유학자의 초상

책장 속 책털기 3탄 식탁에 쌓인 책들을 책장에 집어넣으려다 미련을 못 버리고 다시 집어 들었다 드라마 본다고 고생한 것도 생각나고 더 잊기 전에 마무리를 짓고 싶었다 물론 책을 읽어도 결국엔 또 다 잊게 되겠지만 말이다 예전에 이기론도 그 차이를 이해했다고 엄청 좋아한 적이 있는데 지금은 슬프게도 좋아했단 것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이 책은 두웨이밍 하버드대 중국학교수가 1976년 쓴 Neo confucian thought in action을 1994년에 번역한 책이다 천하정도 드라마가 양명의 일생을 아우른 거라면 책에서는 제자들이 편찬한 그의 년보를 중심으로 양명의 사상변화를 따라간다 정확한 건 아니라지만 왕휘지의 후손으로 여섯 살까지 말을 못 했고 장원급제를 한 아버지와 비교 두 번이나 과..

불친절한 작가

현재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인 줄리안 반즈 너무나 유명한 그의 책을 한 번쯤은 읽어보고 싶었기에 이 책을 골랐다 한국어제목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사야에게 소설을 읽는다는 건 보통 릴랙스하게 여가를 즐긴다는 의미인데 이 소설은 며칠 동안 붙들고 씨름을 하게 만들었다 이게 외국어로 소설을 읽을 때의 단점인데 모국어였다면 그냥 나랑 안 맞는 작가구나 하고 말 것을 내가 제대로 이해 못 했나 싶어 단어를 다시 찾아보고 곱씹어보며 머리늘 깼다 사실 늘 그런 건 아닌데 맨부커상까지 받았다고 하고 칭찬하는 사람들도 많으니 자신의 이해력을 의심해 볼 밖에 영어 자체로도 칭찬하던데 그것도 사야의 능력밖이고 내용을 이해할 수 없으니 짜증스러웠달까 내용뿐 아니라 사실 제목도 영어 한국어 둘 다 이해를 못 하겠다 가즈..

열렬한 다윈 주의자의 수다

책장 속 책털기 2탄 이 책을 포기하려고 했지만 다원의 영화를 본 후 마음을 바꿔 먹었다 생각해 보니 꼭 이 책을 다 이해할 필요는 없겠더라 거기다 이 쪽에 완전 문외한인 사야가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래서 다시 용기를 내서 읽기 시작했고 생각했던 것보다 흥미로왔으나 역시나 이해 안 가는 부분들도 많았다 다원이 1859년에 그의 책을 출판했고 도킨스가 1976년에 이 책을 출판했는데 백 년이 훨씬 넘었지만 다원이 제대로 이해받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자칭 열렬한 다윈주의자인 도킨스는 철저히 진화론자의 입장에서 모든 생명체 그가 생존기계라고 부르는 것 속에 내재된 유전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인간에 대한 건 별로 없지만 결국 인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30억 년 전 최초의 ..

종교라는 이름의 폭력

요즘 핫하다는 아일랜드 작가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읽었다 이 백페이지남짓의 짧은 소설도 역시나 읽기가 쉽지는 않았는데 지난번 이시구로의 소설이 황당할 정도로 격식 있고 올드한 대화체였다면 이 소설의 대화체는 또 사야가 실제로 접해본 적이 한 번도 없는 형식의 대화들이라 좀 당황스러웠다 지난번도 그렇긴 했는데 이런 문장들은 어떻게 번역하는지 넘 궁금할 정도 워낙 짧은 책인 관계로 한 번은 그냥 쭉 읽고 다시 정성스럽게 읽었다 이 소설은 1985년과 회상이 배경이다 1946년 만우절에 16세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난 주인공 빌 펄롱은 친절하고 부유한 고용주의 보호아래 아버지가 누군지 늘 궁금했던 결핍과 더불어 12살에 엄마마저 잃지만 잘 성장한다 현재 딸 다섯에 넉넉한 살림까진 아니더라도 딸들을..

소설을 읽는 기쁨

우연히도 두 소설이 거의 같은 시기에 출판되었고 둘 다 여행 중의 이야기다 지난번에 산 책들도 장르가 전혀 다른 책임에도 둘 다 에밀리 디킨스의 시구절을 앞에 써놓았더랬는데 이런 거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야는 그저 신기하다 일본계 영국인인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있는 나날 삼십 년 전에 안소니 홉킨스와 엠마 톰슨이 나왔던 영화를 독일어 더빙으로 봤었는데 이해를 제대로 못했다 사실 내용도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소설을 읽는 내내 그 두 사람으로 상상하며 읽는 걸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영화를 먼저 본 부작용 같은 거랄까 이 소설은 달링톤홀이라는 저택에서 일하는 버틀러가 주인의 멋진 차로 여주인공을 만나러 떠난 일주일간의 여행 중 일어나는 일과 회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행을 하는 시점은 이차대전이 끝난 후지만 ..

늦은 크리스마스 선물

페북에 작년에 읽은 책중 열 권을 뽑아 올려놓은 누군가의 리스트를 봤는데 사야도 읽고 높이 평가하는 책이 세권이나 있는 거다 성향이 비슷한가 싶어 나머지 중 이 두 권을 골라 늦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야에게 해줬다 날씨가 좋으면 밖에서 틈틈이 읽을 생각이었는데 그럴 기회도 거의 없었고 시간도 안나 놔두었다가 소설 읽으며 좀 쉬기로 했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책은 전부터 읽고 싶은 책이기도 했는데 요즘 영어단어로 너무 고생을 해서 우선 한국어책을 시작 아르토 파실린나의 기발한 자살여행 처음 접해보는 핀란드작가의 소설인데 독일어 중역이다 소설은 스토리뿐만 아니라 표현도 읽는 건데 어찌나 실망스럽던지 미리 알았다면 안 샀다 번역도 어찌 보면 재창작인데 그걸 또 번역하면 어쩌자는 말이냐고 처음부터 선입견 때문이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