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속 책털기 3탄
식탁에 쌓인 책들을 책장에 집어넣으려다 미련을 못 버리고 다시 집어 들었다
드라마 본다고 고생한 것도 생각나고 더 잊기 전에 마무리를 짓고 싶었다
물론 책을 읽어도 결국엔 또 다 잊게 되겠지만 말이다
예전에 이기론도 그 차이를 이해했다고 엄청 좋아한 적이 있는데 지금은 슬프게도 좋아했단 것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이 책은 두웨이밍 하버드대 중국학교수가 1976년 쓴 Neo confucian thought in action을 1994년에 번역한 책이다
천하정도 드라마가 양명의 일생을 아우른 거라면 책에서는 제자들이 편찬한 그의 년보를 중심으로 양명의 사상변화를 따라간다
정확한 건 아니라지만 왕휘지의 후손으로 여섯 살까지 말을 못 했고 장원급제를 한 아버지와 비교 두 번이나 과거에 낙방하고 27살에야 합격하는 양명
(역시 서예로 자신을 수양했다는데 찾아보니 글씨도 멋지다)
어린 시절부터 시문에 능하고 비범했다고는 하나 16살에 결혼한 걸 생각하면 꽤 늦은 출발이다
그나마도 관직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출세로서가 아닌 유학의 진정한 역할에 천착하고 유학뿐 아니라 도교 선불교등까지 아우르며 자신의 사상을 발전해 나간다
실세인 환관 류진에 반기를 들었다 40대의 장형을 당하고 이민족이 많이 사는 귀주로 유배형식의 좌천을 당하는 건 그의 나이 서른다섯
드라마에서는 부인에 노복에 여종에 곧 제자들까지 합류해 그 심각성을 몰랐는데 실제로는 노복 셋과만 가고 그게 사회와의 거의 완전한 단절을 의미하는 거라나
그곳에서 죽음에 대한 공포 등 결국 그 처절한 환경 속에서 대오각성하고 제자들도 모으며 유학교사로서의 제대로 된 삶을 시작한다
두교수는 아버지와의 경쟁관계도 중요히 다루고 그의 절망등에 대해 자세히 서술하는데 쉰이 넘을 때까지 대를 이을 자식도 없었고 어쩌면 그가 내면에 집중하게 된 게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주희를 비판하면서도 그와 자신의 사상을 분리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책을 읽다 신기했던 건 그에게는 누구의 제자라고 말할만한 스승이 없더라는 것
1313년부터 1905년까지 주희의 주석이 딸린 사서가 중국 과거시험의 기초였다는 사실도 놀랍다
학문이 과거시험을 위한 암기가 아닌 앎의 실천을 통한 자기실현이라는 양명의 말은 지금 이 시대도 여전히 유효하다
유학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저자가 비교하는 전문적인 내용들을 다 이해할 수는 없었으나 유학의 가장 오래된 실천이 자기비판이라는 말에서는 정말 유학을 전혀 몰랐다는 생각이 들더라
"유학은 반드시 자기비판으로 이르고 자기비판 그 자체의 천착은 친구와 제자들이 함께 상호 권고하는데서 구현된다 " p.214
우리나라를 유교사회라고 하지만 위의 인용 그대로라면 우리 사회는 유교랑 멀어도 너무 먼 사회가 아닐까 싶더라지
이 책 초반 도올 선생의 해제를 지난번에는 그냥 거르고 본문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그것부터 읽었다
당시 오십도 되지 않은 오랜만에 접하는 젊은 도올도 좋았다
도올은 양명은 주희와 비교대상이 못되고 인간평등의 보편주의 즉 아나키즘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책을 읽고는 우연히 보게 되어 놓친 드라마 앞부분도 마저 보았다
드라마로만 보면 좋은 드라마는 아닌데 책을 읽고 드라마로 보았던 그의 일생을 다시 생각해 보니 억지로라도 다 보길 잘했다 싶다
역사 속 인물을 대할 때 무엇보다 좋은 건 시공간을 떠나 같은 인간이 살고 있었다는 그 따뜻한 느낌 때문인 것 같다
그의 학당 구석에 한자리 차지하고 앉아 질문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혼자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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