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크 묻은 책장

불친절한 작가

史野 2024. 2. 14. 22:38


현재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인 줄리안 반즈
너무나 유명한 그의 책을 한 번쯤은 읽어보고 싶었기에 이 책을 골랐다
한국어제목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사야에게 소설을 읽는다는 건 보통 릴랙스하게 여가를 즐긴다는 의미인데 이 소설은 며칠 동안 붙들고 씨름을 하게 만들었다
이게 외국어로 소설을 읽을 때의 단점인데 모국어였다면 그냥 나랑 안 맞는 작가구나 하고 말 것을 내가 제대로 이해 못 했나 싶어 단어를 다시 찾아보고 곱씹어보며 머리늘 깼다
사실 늘 그런 건 아닌데 맨부커상까지 받았다고 하고 칭찬하는 사람들도 많으니 자신의 이해력을 의심해 볼 밖에
영어 자체로도 칭찬하던데 그것도 사야의 능력밖이고 내용을 이해할 수 없으니 짜증스러웠달까
내용뿐 아니라 사실 제목도 영어 한국어 둘 다 이해를 못 하겠다
가즈오의 소설이 버틀러 젠틀맨등 가장 영국적인 소재로 보편적인 공감을 이끌어냈다면 이 소설이야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나 영국적인 것 같다
당시 영국사회나 영국인들을 이해해야만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달까
거기에 육십 넘은 돌싱남자인 주인공의 심리까지 이해해야 하는 건 덤
그나마도 작가가 여지를 많이 남겨놓고 시원하게 설명을 하지 않아 상황파악을 독자가 알아서 해야 하는 황당한 깊이(?)까지 있다
유교적인 도덕관념 같은 건 조금도 없는 사야인데도 여자친구 엄마랑 잔 남자친구가 하나인 지 둘 인지를 고민해야 하는 것도 당황스럽다
사십 년 전에 헤어진 딸내미 남자친구에게 유언을 남긴다?
도대체 오만파운드도 아니고 오백파운드 왜 준거냐고??
아드리안과 사라는 서로 진심으로 사랑했던 걸까

우연히 사십 년 전 사건으로 시간과 그 속의 기억, 삶등을 반추해 보는 건데 주인공만큼 삶을 살아본 입장에서 그 시간의 무게를 너무 가볍게 생각한 게 아닌가 싶어 더 공감하지 못 한건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건 과거에 별로 얽매이지 않는 사야의 성향 탓일 수도 있겠다만 부정확한 기억이나 본인이 유리하게 기억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왜곡된 기억 속에서 진실을 찾아가려는 과정 결국은 삶의 의미를 묻는 건데 너무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다는 생각
작가는 설명에 불친절한데 주인공은 말이 너무 많다

소설을 읽다가 뭔가 익숙해서 보니 영화를 봤더라
오래 전도 아닌데 그때도 공감을 못해서였는 지 내용이 거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름 충격적이랄 수 있는 결말도 소설의 끝부분에서야 생각이 났다
결론은 사야가 좋아하는 성향의 작가는 아니었다는 것
그냥 자신을 믿을 걸 괜히 맨부커상이라는데 기죽어서 곱씹어보고 고민하고 그랬다
어차피 독서는 지극히 사적인 체험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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