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따뜻한 은신처 543

추억이 밀물처럼

무명이라는 중국영화를 보는데 황레이라는 이 배우가 낯익다 분명 어디서 본 배우인데 필모를 찾아봐도 본 작품이 없다 이럼 궁금해서 잠도 못 자는 사야 어찌어찌 알아냈더니 세상에나 사야가 좋아했던 이 배우 저우쉰이랑 드라마를 두 개나 함께 했던 배우다 수십 회나 되는 드라마를 두 개나 보았으니 아무리 이십 년이 흘렀다고 해도 그 얼굴이 안 익숙하면 그게 더 이상하겠지 저우쉰 작품은 그동안도 몇 개 봤는데 남배우는 처음이다 이십 년도 넘게 만에 한 영화에서 보는 두 배우는 중후미로 가득하다 저우쉰은 성형 안 하나 저 나이 때 한국 여배우들과 달리 뭔가 참 자연스럽게 예쁘다 정말 재밌게 본 그 드라마들도 생각나고 마유미도 생각나고 상해도 생각나고 해서 영화에 제대로 집중을 못했다 마유미가 저우쉰을 두 번이나 봤..

휴식

책 읽는다 틈틈이 읽는 게 아니라 맘 잡고 읽는다 저거 다 읽으면 더위가 지나가 있을까 아크로바틱한 자세로 읽다가 힘들면 바닥에 누워 읽는다 누워서 보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 그러다 이곳 잎들에 꽂혀 멍도 때린다 잔디씨가 발아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옥잠화도 핀다 부레옥잠은 저리 색도 모양도 닮은 게 없는데 왜 이름은 같을까 새끼새들이 모두 무사히 부화되었다 품느라 힘들었을 에미새는 이제 멕이느라 힘들겠다 무사히 성장하기를 그리고 사야에게도 자유를 주기를

잼버리피해와 당당이

잼버리가 문제투성이라는 건 대충 알고 있었는데 축구팬인 사야에게까지 피해가 미쳤다 내일 중요한 게임이 있는데 갑자기 취소가 되어 버렸다 무슨 군사정권도 아니고 당장 전북 홈구장을 내어놓으라더니 그마저도 태풍 때문에 안 되겠다고 이번엔 서울 홈구장을 쓰겠단다 태풍이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일처리를 해대니 이게 무슨 횡포냐고 게임은 쓸데없이 취소가 되어버렸고 서울선수들과 팬들은 또 뭔 죄냐 제일 황당했던 건 불만을 표출한 전북팬들이 안방이라도 내어줘야 할 마당에 부끄럽고 참담하다는 모 의원 이 사람은 프로축구를 조기축구인지 아는 무지함에 죄송하다고 해도 모자랄 판에 질책을 하고 앉아있다 무슨 독립운동하냐 뭐가 저리 당당하냐고 준비가 미흡했던 건 지들 책임인데 왜 국민들이 안방을 ..

축구로한 정신적 피서

더워서 미칠 것 같은 기간 그나마 축구 때문에 위로를 많이 받았다 해외 유명팀들이 와서 멋진 경기들도 보여주고 한국팀하고 경기도 하고 한국의 트루먼쇼 주인공이라는 슛돌이 이강인 선수의 이런저런 소식을 듣는 것도 즐거웠다 그것보다 사야를 엄청 감동시킨 사건 사야는 FC 서울팬이라 수원삼성이랑은 최강라이벌인데 그 수원이 축구를 참 못한다 예전에는 잘했다는데 사야가 축구를 보고부터는 잘한 적이 없다 축구는 야구랑 달리 강등이라는 시스템이 있어서 못하면 살 떨린다 겨우 12팀 중에 한 팀은 무조건 강등이고 두 팀이 또 이 부 리그팀이랑 결전을 벌여야 한다 작년에도 강등권까지 가서 풀옵에서 간신히 살아남았는데 올해는 아예 꼴찌 꼴찌는 다이렉트강등이라 풀옵의 희망도 없다 문제는 이 수원팬들이 리그전체에서 둘째가라면..

나이 탓일까 날씨 탓일까

책장을 들여다보니 쿤데라 책이 두권 있더라 지난주부터 왼쪽 웃음과 망각의 책을 읽고 있다 도대체 재미가 없다 문장도 평범하고 무슨 얘기를 하고 싶어 하는 지를 모르겠더라 쓰리썸 같은 게 평범한 성관계도 아니고 뭔가 개연성이 있어야 하는데 납득불가 무엇보다 예전에 왜 밀란 쿤데라를 좋아했었는 지도 이해가 안 갈 지경이라 충격받았다 그래도 쿤데라인데 하는 심정으로 삼분의 이 가까이 읽다가 포기 옆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다시 읽고 위로받을까 하다가 날씨도 너무 덥고 짜증스러워 그 생각도 접었다 그의 책을 처음 읽은 게 삼십 년 전이니 나이 탓일까 정말 너무 더웠다 샤워를 하고는 옷을 입는 게 난감할 만큼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 와중에 옆집에 꼬마 아가씨가 놀러 와있다 안 그래도 감당이 힘들 정도로 ..

파리 그리고 밀란 쿤데라

이강인 선수가 파리 생제르맹으로 이적하니 축구팬들이 신났다 유니폼 구입은 물론 파리로 경기를 보러 가겠다고 난리들이던데 그중 사야가 기함할만한 글을 봤다 파리에 가보려고 하는데 정말 쥐가 들끓고 오줌냄새가 진동하냐고 묻더라 거기에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어쩌고 하는 댓글들이 줄줄이 달리고 아 요즘 젊은이들에게 파리는 그런 곳이구나 사야에게 파리는 낭만 그 자체 거의 꿈의 도시였는데 말이다 오래전에 쓴 적도 있지만 육 개월 정도 파리에서 머물면서 오전에는 어학원에 다니고 오후에는 미술관을 돌아다니는 것이 한때 사야의 로망이었다 갈 때마다 늘 설렜고 뒤셀도르프가 독일의 작은 파리라는 별칭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는 괜시리 자부심도 느꼈었다 그 파리에서 쿤데라가 세상을 떠났단다 한참 동유럽 문화가 밀려올 때 ..

오랜만에 비오는 날의 수다

예민한 분들은 느끼셨겠지만 사야 상태가 아주 별로다 여러 일이 많은데 여기 구구절절 쓰긴 그렇고 다른 일들을 좀 구구절절해볼까 한다 드디어 실물 영접한 냥이 새끼 한 마리 들리는 소문으로는 네 마리라던데 오른쪽의 당당이 맘이 낳은 두 번째 새끼냥이 저 에미가 오른쪽 앞발 안쪽을 심하게 다쳤더라 잡기도 힘들지만 잡아도 병원에 데려갈 차도 없고 데려간다고 쳐도 그 엄청난 병원비를 감당할 능력도 없고 날은 더운데 염증이 생기면 어쩌나 정말 미치고 팔짝 뛰겠더라 그래서 고민한 사야가 일단 잘 멕여서 자연치유를 기대해 보자고 닭가슴살을 삶아 줬다 근데 이 놈이 물고 튀고 또 물고 튀고 와서는 또 내놓으라고 울고 하악질끼지 하고 ㅜㅜ 옆집에서 들리는 소리로는 다들 먹을 건 주는 거 같던데 왜 난리인 지 그치만 새끼..

25년의 시간

4월 10일 벨파스트협정 25년이라고 또 지금은 조 바이든이 아일랜드에 있어서 며칠 내내 뉴스에서 아일랜드가 나온다 98년 사야가 더블린에 간 첫 해였다 차로 아파트를 들어갈 때마다 세워서 폭탄 탐지기로 훍던 곳 당시 날이면 날마다 티비에서 보던 아일랜드 대통령 얼굴이 나오는데 놀랍게도 오랜만에 외삼촌이라도 만난듯이 반갑더라 아일랜드 사람들을 인터뷰하니 오랜만에 듣는 그 특이한 아이리쉬 악센트도 너무 반갑다 아일랜드가 사야에게 특별한 데는 많은 이유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언어다 홍콩이 있긴 하지만 좀 다르고 사야가 떠돌던 인생에서 유일하게 언어 문제없이 살던 나라 전에 언어도 권력이라고 얘기했었지만 낯선 나라에서 그 나라 언어를 할 수 있다는 것 엄청난 메리트다 잘했건 못했건 당시만 해도 독일어보다는..

황당하고도 슬픈? 사건

설 전날 사야가 난로 앞에 앉아 티비를 보는데 저 쌓인 나무 아래쪽에서 주사위 두 개 정도 크기의 생쥐 한 마리가 나타나더니 잽싸게 티비쪽으로 튀는 거다 충격에 완전 비상 내보내느라 생난리를 친 그 구구절절한 이야기는 빼고 마당 쪽으로 틈이 있어 겨울대비 저리 붙여 놓았는데 저 일 센티도 안 되는 틈으로 생쥐사마가 들어온 거다 데크에는 겨울 내내 냥이들이 진을 치고 있었는데 새끼가 있으니 어미도 있다는 거고 한두 마리가 아닐 텐데 도대체 어디에 쥐들이 있었던 건지 궁금한 거 못 참는 사야는 미치고 팔짝 뛰겠더라 우짜든둥 들어온 곳을 어찌 막았는데 이 놈이 또 나타났다 그래서 또 들어온 곳을 찾아서 저리 보기는 끔찍해도 화장실에 쓰는 게 남았길래 방풍테이플 떼어내고 또 막았다 여기서 사야인생에 획기적인 사..

열공중인 사야의 유투브 예찬

김민재선수가 뛰는 나폴리 경기를 가끔씩 보는데 너무 잘해서 유튜브에서 하이라이트를 찾아봤다 근데 댓글에 이상한 문자가 있는 거다 동글동글 귀여운데 어느 나라 말인지 모르겠다가 그게 조지아문자라는 걸 알게 되었다 기원전에 만들어진 문자라니 놀랍다 나폴리에서 너무 잘하는 2000년생 흐비차 크바라치헬리아라는 이름도 어려운 선수가 하나 있는데 요즘 말하자면 조지아의 국민영웅급이다 손흥민 선수보다는 박찬호선수급 아닌가 한다 울산현대에도 잘하는 조지아선수가 하나 있다 이런 국기를 든 사람들이 단체로 나폴리경기를 보러 오는데 한 댓글을 보니 축구 붐에 자부심에 온 나라가 난리가 아니란다 우크라니아 전쟁 때문에 조지아전쟁도 자꾸 언급되고 징집령 때문에 조지아로 도망간 러시아청년들 다큐를 보다 보니 갑자기 이 나라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