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따뜻한 은신처 543

겨울이 가고 있다

유난히 눈이 많고 추운 겨울이었다 사실 눈도, 맑고 차가운 날도 좋아하지만 이곳에서 겨울을 잘 살아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올 겨울엔 저 난로 덕에 덜 고통스럽게 지나간 듯하다 여전히 아침엔 영하 7도지만 날씨가 아주 미치지 않는 한 앞으로 더 추워지는 일은 없겠지 저 구석의 눈마저 녹았다 작년에는 삼월 중순에도 눈이 내렸는데 눈이 또 올까 찔레와 조팝에 물이 오르기 시작한다 양파를 잔뜩 샀다 뭘 어떻게 할 생각인 지는 아직 모른 체 그저 바라만 보고 있다

세상은 넓고 우주도 넓고

미X놈은 많다 좀 전에 페북에 들렸더니 누가 이딴 글을 공유했더라 올린 사람을 봤더니 전과가(?) 있는 사람이다 작년에는 이런 글을 올렸던 사람 미치고 팔짝 뛰겠다 도대체 뭘 먹으면 저런 글을 페북에 올리는 용기가 생기는 걸까 슬픈 예수라는 책도 썼던데 예수님이 저 사람 때문에 정말 슬프실 것 같다 복도 벌도 안 받고 천국 지옥도 안 가는 사야는 저 사람들과 같은 천국에 안 가는 걸 감사해야 할 지경이다 그냥 무시하면 그만인데 저 자가 노는 물 그러니까 같이 어울리는 사람들 때문에 마음이 많이 아프다 사야가 멀쩡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인데 유유상종이라고 도매금으로 다 넘겨야 하나 그냥 기분이 뭣 같다 그건그렇고 오만 년 만에 왔다는 혜성 때문에 어제 12시 반경에 나가 추위에 벌벌 떨며 찾았는데 뭐가 뭔지..

단순한 사야

어제 문밖의 장작을 안으로 좀 옮겼다고 아침에 온몸이 쑤셔서 늦장을 부리다 간신히 일어났다 커튼을 젖히려는데 이미 햇살이 들어오는 시간이라 저리 속 커튼이 비치더라지 늘 해가 들기 전에 열어서 처음 보는데 엄청 예쁘다 금세 기분이 좋아진 사야 갑자기 몸도 막 안 아픈 거 같아 신나게 하루를 시작했다지 오버해서 수건도 삶아 빨아 널고 ㅎㅎ 요즘 사야가 이것저것 정리 중인데 저 박스엔 많은 추억의 물건들이 들어있다 어제 꺼내놓고 태울 수 있는 건 다 태울 생각이었다가 기분도 좋은 김에 당분간은 살려두기로(?) ㅎㅎ 지난번 추워지기 전에 그러니까 백만 년 전에 뜯어다 장아찌로 담아놓은 상추 역시 까맣게 잊고 있다가 오늘 처음 꺼냈는데 맛있다 시골 사는 재미랄까 부담이랄까 먹거리를 버릴 수는 없으니 힘들어도 울..

꿈 그리고 그림의 떡

시어머니 꿈을 꿨다 아무리 자주 생각해도 돌아가시기 전에도 꾼 적이 거의 없는데 기분이 묘한 아침이다 더 신기한 건 시어머니네 세 자매가 다 나왔다 따뜻한 분들이라 친하긴 했어도 자주 만난 것도 아니었는데 거기다 셋을 한꺼번에 만난 건 두 번 밖에 없고 이모님들은 사야네 집에 놀러 온 적도 없는데 꿈에서는 세 자매가 사야네 집에 놀러 왔다 꿈답게 그 집은 사야가 살아본 적도 본 적도 없는 집이던데 넷이 수다 떨고 놀러 다니고 그랬다 물론 시이모들이라고 해서 누구 결혼식에 갔다 잠깐씩 본건 아니고 몇 박씩 함께하고 놀러 다닌 적은 있으니 아주 이상할 건 또 아니겠으나 특이한 꿈인 건 맞다 꿈이 넘 생생한데 느닷없이 왜 그런 꿈을 꾼 걸까 그건그렇고 사야네 저 복층 연통이 저리 뻗어있고 위에는 천창 말고는 ..

지독한 한파였다

오늘도 영하 11도 한 달 동안 영하 10도 아래에 네댓 번을 빼고는 낮에도 영하 예전에 영하 20도 아래인적은 있었어도 이리 줄기차게 끈질기게 추운 날씨는 사야가 기억하기론 사야인생 처음이다 눈이 안 녹아 헤쳐보니 그래도 시금치는 저리 멀쩡해 신기 너무 추워서 달구경을 못 나가는 대신 요즘은 달이 찾아와 준다 한파 덕분에 아침부터 난로가 활활 탄다 옷 껴입는 것도 무겁고 지겨워 저리 난로 앞에 의자를 붙이고 하루를 보낸다 물론 저 정도 화력이면 뜨거워서 바로 앞에는 못 앉는다 ㅎㅎ 아모스 오즈의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 계획했던 난로 앞 책 읽기를 시작했는데 살다 살다 이리 인명과 지명이 많이 나오는 소설은 또 처음 본다 책을 읽는 건지 검색을 하는 건지 읽다 말다 팔백 페이지가 넘는 책인데 이제 겨우 백..

문자부고와 전화번호

오늘 오후 문자부고가 하나 도착했다 보낸 이를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르겠는 거다 사회생활을 전혀 하지 않는 사야에겐 참 특이한 문자 부고문자가 스팸일리는 없고 한참을 고민하다 보니 보낸 이가 아니라 돌아가신 분이 사야가 뵈었던 분이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어찌 인연이 되어 두 번 정도 뵌 기억이 난다 그때 전화번호를 교환했던 거 같은데 그 번호가 남아있어서 자녀분들이 단체문자를 보낼 때 사야에게도 온 거 같다 기억이라는 게 참 재밌는 게 막상 떠오르니 짧은 만남이었는데도 그분이 했던 말들도 막 생각나더라지 참 유쾌하시고 제자로 받아줄 테니 작업실로 출근하라는 말씀도 하셨었는데 그때 그분 말씀을 따랐다면 지금 사야인생이 달라졌으려나하는 생각도 들더라 오늘은 일어나 비비씨뉴스를 틀자마자 펠레와 웨스트우드 부고를..

편안한 아침

아침에 깨보니 천창에 눈이 쌓여있다 또 눈이야? 사람마음 참 간사하다 ㅎㅎ 다행히 살짝 내린 거고 아름다운 아침이다 냥이들도 오늘은 세놈다 일찍들 와서 밥 먹고 무엇보다 아침부터 바흐음악 요즘 저 방송이 말도 많아지고 이상한 프로가 많아 아침마다 실망스러웠는데 오늘 이침은 로또 맞은 기분 한파가 물러갈 생각을 안 해서 집안에만 있다 보니 사야는 또 강제 청소 중이다 뭔가 미묘하게 거슬리는데 그게 간단히 쓸고 닦 고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생고생하며 지쳐가는 중이다 나흘간 세네 시간을 하는데도 아직 거실을 못 벗어났으니 누가 들으면 사야네 거실이 한 이백 평 되는 줄 알겠다 ㅜㅜ 그래도 또 이런 아침도 있다 청개구리인 사야는 기운 내서 오늘도 열심히가 아니라 오늘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자고 굳게 다..

특별한 선물과 그리움

마당에 든든한 지원군이 생겼다 왠지 외로워 보여 또 잽싸게 여자친구 하나 만들고 들어왔다 원래 남자친구를 만들어 줄 생각이었는데 넘 추워서 안 되겠더라 그러고 노는 사이 특별한 선물이 도착했다 슈톨렌이다 안 그래도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니 시어머니 생각이 많이 났는데 슈톨렌을 보니 더 그리워졌다 그래서 찾아본 슈톨렌 레시피 이제 내가 직접 만들어 먹을 테니 슈톨렌 말고 레시피를 보내라고 어쩌면 내가 너에게 만들어 보내줄 수도 있다고 큰소리도 쳤었는데 한 번도 만들어 본 적은 없다 저 글씨를 보는데 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익숙한 식탁에 돋보기를 쓰고 앉아 저 걸 쓰고 있었을 그녀 모습이 눈에 선하다 저 레시피 뒷장엔 사야가 가장 좋아하는 독일요리인 향어요리법도 있다 슈톨렌처럼 원하면 주문..

스웨덴 애들과 영어

우연히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라는 프로를 재방송으로 보는데 영어를 쓰는 애들이더라 영어가 듣기 편한 억양이길래 어떤 나라인가 했더니 세상에나 영어권 애들이 아니라 스웨덴 애들이다 아니 그럼 스웨덴어를 써야지 왜 헷갈리게 영어를 쓰고 난리냐 그러니까 옛날 생각이 나더라 98년 사야가 더블린에 갔을 때 다니던 어학원에도 스웨덴 애들 천지였다 열몇 명인 반에서 독일애 둘 중국애 하나 사야 나머지는 다 스웨덴 애들 그나마도 중국애는 못 따라가겠다고 반을 바꿔서 동양인은 사야만 남았더랬다 (그 중국애가 학원에 다른 한국인이 또 있다며 고기공 놈을 소개해줬다ㅎㅎ ) 영어를 거의 모국어 수준으로 구사하던 애들이었는데 뭘 또 배우러 왔냐니까 국가에서 돈을 대주는 프로그램이라 놀러 왔다더라 어려서부터 영어방송을 접하며..

사야의 비극

사야의 가장 큰 비극이야 애정결핍증이지만 그 못지않은 비극적인 요소가 유머 코드다 사야는 개그 예능프로를 안 보는데 안 웃겨서다 사람들이 왜 웃는지 이해 자체를 아예 못한다 남들이 웃을 때 공감하지 못하는 거 이게 별게 아닌 거 같지만 의외로 사람을 참 외롭게 한다 그런데 육사오 이 영화를 보면서 정말 미친 듯이 웃었다 사야가 울건 웃건 아무 관심이 없는 울 호박이가 놀래서 쳐다볼 정도로 ㅎㅎ 요즘 축구 판이 좀 시끄러워서 이 놈의 나라는 취미 생활하는 것도 이리 뭣 같냐 싶어 우울했는데 잠시나마 실컷 웃을 수 있어 좋았다 황당무계한 내용을 잘 풀어냈고 무엇보다 배우들의 연기가 참 좋았다 물론 남들이 웃는 영화를 사야도 웃어서 그게 제일 좋았다 ㅎㅎ 사야의 또 다른 비극은 부지런하지 않은 주제에 그런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