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이트쪽에서 내놓은 교과서내용때문에 시끄럽다. 4,19유족회에선 몸으로까지 싸웠다던데 지금이 무슨 자유당시절도 아니고 그런식으로 나와 다른 의견을 해결하려는 것에 씁쓸하기 그지 없다. 거기다 개떼처럼 달리는 인터넷답글들도 매국노니 어쩌니 난리가 아니고 말이다.
도대체 우리나라가 공산주의도 아닌데 왜 우리는 다른 의견에 이렇게 예민하게 혹은 폭력적으로 반응하는 걸까
역사란 어차피 나름의 사관을 가지고 당시의 사료를 바탕으로 씌여지는 거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가능한데 더군다나 그저 가늠해볼 수 밖에 없는 역사에 다양한 사관과 의견이 있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거다.
조심스런 문제라면 교과서같은 경우 스폰지같은 흡입력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에게 어떻게 가능하면 다소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을 가르쳐야한다는 어려운 과제가 있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뉴라이트에서 내놓은 제안들이나 의견에 다른 의견들을 가진 학자들이 반론을 제기하고 토론을 하며 그 간격을 좁혀갈 문제지 아무것도 모르는 네티즌들이 나서서 매국노 어쩌고 마녀사냥을 할 문제는 절대 아니라는 게 내 의견이다.
우리나라 백년의 근현대는 참 불행하게 점철되어 왔다. 아직도 제대로된(그런게 있다면) 역사에 대해 왈가왈부 혼란스럽기만 하지 누구도 누구의 의견을 신뢰하지 않고 싸운다.
각설하고 이영훈씨가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정신대문제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우리나라에서 이 문제만큼 말하기 어렵고 조심스러운 점도 없다만 그래도 언급할 건 해야겠다.
당시 나는 토론을 듣지는 않았지만 읽기는 했는데 그렇게 마녀사냥을 당할만큼의 발언은 아니었다. 그 문제가 되었던 '자발적 참여'는 보기에 따라서 기가막힌 발언이긴 하고 표현에 어폐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걸 당시 한국적인 상황으로 보면 그렇게까지 매국노로 몰아부칠 문제도 아니다.
우선 내가 이영훈씨에게 고마운건 그 일을 계기로 그제서야 나는 정신대 문제에 제대로(?)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건데(그러니까 어떤 근거로 저 남자가 저렇게 자신있게 발언하는 지가 궁금했다) 이런 각도에서 보면 다른 의견 혹은 황당한 의견들이 발전의 동력이 된다는 걸 부인할 수는 없다.
어쨌든 그의 요지는 무조건적으로 일본만 비난할게 아니라 당시의 상황을 냉정하게 보자는 거였고 11만(그의 주장이다)이나 되는 한국인 징용병들도 그 위안소를 이용했는데 아무도 그거에 대해 언급하는 사람이 없다는 거였다.
이건 꼭 이영훈씨만 이야기한건 아니고 이영훈씨와 반대에 서있다면 반대에 서있는 좌파 성공회대 교수 김동춘씨도 누누히 언급한 바다.(내가 드물게 인정하는(?) 학자중 하나가 김동춘 교수인데 그가 쓴 '전쟁과 사회'와 '근대의 그늘'은 백만번 추천이다. 혹 읽고 싶으나 살 돈이 없으신 분들 원하시면 사드릴 수도 있다)
역사적 사실을 확인하는 상황에서 필요한 사료(경험한 가해자의 증언)가 우리쪽에서는 전무하다는 이야기 되겠다. 피해자측의 증언은 나와있는데 읽어보다보면 나를 팔아넘긴 의붓아버지가 미웠다거나 하는 식의 언급이 나온다.
그러니까 무조건 백주대낮에 아무나 잡아간게 아니었고 어느 정도의 조직적인 인신매매가 이루어졌으며 거기에 관여를 한 사람들이 대부분 조선인이었다는 거다.
당시 씌여진 채만식의 단편 '동화'에서도 딸이 공장으로 떠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선금을 받는다. 그러니까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팔려가는 거다. 물론 소설에선 그녀가 간 곳이 비단공장이라고만 나오지 그게 군수공장이었는지 아님 위안소였는지는 알 수 없다.
북한 작가라 우리에게 알려지진 않았지만 최명익의 단편 '장삼이사'에서는 만주에서 사창가를 운영하는 한국인포주를 피해 도망했던 여인이 잡혀가는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서 물론 짚고 넘어가야할 사항은 일본의 주장대로 군이나 일본국과 관련없이 사적으로 이루어진거라는 망언이다. 그런 군부대내의 위안소가 조직적인 관리없이 이루어졌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러니까 이 문제만은 우리가 무슨 일이 있어도 일본에 사과를 받아내야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물론 조직적으로 운영하지 않았어도 군이 관여했다는 걸 시인했다는 내용은 세종대 박유하교수의 '화해를 위해서'라는 책에 언급되긴 하고 이 책은 우리가 봐야할 것들이 무엇인가에 대해 많은 관점을 제시하는 중요한 책이고 역시 추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사과한다고 그 역사적 사실이, 우리의 책임부분까진 없어지지 않는다는거다. 나는 특히나 이 문제를 여성의 계급적착취로 이해하는데 위안소로 간 여성들의 대부분이 잡혀갔건 팔려갔건 하층계급이었다는거다. 그러니까 그들이 꼭 조선인이어서만이 아니라 착취의 대상이어서, 김활란같은 인텔리여성들이 황국을 위해 비녀나 모으고 하는 상황에서 희생된 우리 역사의 계급문제로 접근해야 더 그 실체를 바로 볼 수 있다고 믿는다.
한국역사책이 왜곡되었다고 하면 일본우익의 주장을 답습한다고 난리인데 나 역시 한국교과서가 왜곡 혹은 과장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봉오동전투에 직접 참여했던 김학철선생의 산문집' 우렁이속같은 세상' 내용중 '독립운동사와 과대망상증'에 보면 '봉오동 전투결과는 한 300배쯤 청산리 전과는 한 500배쯤 부풀려 기념하고 있다'는 한탄이 나온다. 이러면서 과연 일본우익이 이야기하는 우리교과서도 왜곡되었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과연 누군가 다른 의견을 낸다고 매국노니 하는 비난을 퍼부을 수 있을까?
김좌진장군아래서 독립운동을 했던 오항선여사의 인터뷰를 읽다보면 정말 우리 독립운동사의 현주소를 알수 있어 쓴웃음이 날 지경이다.
힘없고 열정만 넘쳐 맨날 회의나 하고 있었다는 게 여사의 증언이다. 무기운반을 맡아했다는 여사는 무기 운반이라기보다 권총 한자루를 운반했단다.
이건 약간 엇나가는 여담이긴 하지만 김좌진 장군만 해도 그렇다. 그 대단하시고 바쁘셨던 독립군장군님께서 왜 여자문제는 그렇게 복잡해서 난리가 아닌건가. 김두한이 과연 장군의 아들이 였나 어쨌나가 도마선상에 오를만큼 잠시 한국에 잠입하셨다 얻은 자식이라는 설명도 그렇고 만주에 있었다는 본부인 오숙근여사나 옆에 같이 있었던 나혜국여사 지금 신문에 거론되는 손녀인지 아닌지 위연홍씨의 문제까지 솔직히 내 입장으로 보면 참 한가하셨다 싶다.
또 각설하고 역사에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증언은 중요하다. 물론 모두 믿을 수는 없지만 무시할 수도 없다. 다른 사람은 다르게 증언할 수 있고 그게 중요한 이유가 그래서 사태를 보는 여러 시선들이 나올 수 있다는거다.
내가 뉴라이트를 변호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우리는 여러가지 의견을 들어야하고 알아야하고 토론을 거쳐 역사적 사실에 나름 근접해야할 의무가 있다. 도대체 언제까지 맹목적인 반일만 외치고 그 끔찍하도록 이쁜 다음 세대에 우리의 증오와 못난 모습을 그대로 물려줘야하겠는가?
일본의 보상문제만 해도 박통의 밀실외교로 (여기서 일본정부도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보상금 받아 포항제철에 투자한건 이제 누구나 다 안다. 우리의 잘못에 눈감으며 남만 탓하는 민족에게 과연 어떤 미래가 보장될지 나는 궁금할뿐이다.
나야 자식이 없지만 최소한 내 조카들이 지금만큼의 내 나이가 되어 사는 세상에선 이성이 합리가 그리고 자기 반성이 있는 사회가 되길 난 꿈꾼다.
최소한 모르면 입이라도 다물자. 우리사회는 왜그렇게 똑똑한 사람들이 많은 거냐. 학자들이 나와 떠들면(?) 그저 귀기울이고 내가 아는 거랑 뭐가 다른지 그건 왜그런지에만 관심을 갖으면 안되는 걸까. 그게 그렇게 불가능한 일일까.
어제 이런 저런 서핑을 하며 자료를 읽다보니 뉴라이트재단에 일본우익의 자금이 흘러들어간다는 말을 신용하씨가 흘렸단다. 신용하씨같은 사람이 구체적인 자료를 제시하지도 않으면서 언론에 그런 말을 그저 흘렸다는 건 참 어른답지 못한 행동 신용하씨 답지 못한 행동이다.
만의 하나 아니 열의 하나 안병직씨가 운영하는 뉴라이트재단에 우익자금이 흘러들어간다고 해도 내가 보기엔 그리 나쁠건 없다.
그게 친일을 옹호하건 아닌 방향이건 그들은 연구(!)를 하고 있기때문이다. 그것도 자료에 근거해서(이게 아무리 일본측 자료라고 해도 우리가 필요한건 자료다!) 구체적인 수치를 제공하며..
그럼 우리쪽(그 우리쪽이 누군지는 모르겠다만)에선 상대하기가 더 용이해지는 거다. 자료에 대해 어떤 근거로 그게 아닌지 밝히기가 더 쉬운게 아닌가. 아님 반론을 위해서라도 더 연구할 방향이 제시되는 거니 말이다.
누군가 이게 궤변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학계를 둘러보면 꼭 그런것만은 아니라는게 자명해진다. 우리에겐 연구하고 자료를 근거로하는 토론문화가 너무나 부족하다.
임진왜란때 일본에 포로로 잡혀갔다 책을 쓴 강항이란 선비가 선조에게 바치는 글인 간양록에 보면 조선이 얼마나 이웃나라 일본에 무지한지 나온다. 자료부족이고 관심부족이다.
역지사지란 말이 있다.
조선통신사에 관한 책을 읽다보면 임진왜란후 끌려간 포로송환을 끈질지게 요구하는 조선정부의 이야기가 나온다. 문제는 그 포로들이 조선에 돌아갈 생각이 없다는 거다. 왜? 가봤자 일본에서보단 못살고 당할거니까. 그런 포로들을 어떻게 간신히 얼마나마 끌고왔는데 또 조선정부에서는 아무 대책마련을 안해주고 방치해놓는 다는 말도 나온다.(이건 조선쪽 자료다) 정말 열불이 터질 일이다.
상황은 그랬는데 그러니까 조선시대의 폭정에 시달린 민중사에 대해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는데다 일본은 늘 우리가 찬란한 문화유산을 넘겨다준 미개한 민족이라고 배우고 자란 나는 참 당황스럽기 그지 없다.
문제는 나라도 이런 내용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싶지는 않을거 같다는 거다.그러니 어차피 역사교과서는 가감이 있기 마련을 이해못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신대문제를 교과서에서 빼자는 일본인들의 요구를 이해못할 것도 없다는 이야기다.
이해를 한다는 게 상대가 옳다고 인정하는 건 당연히 아니지 않는가.
제발 좀 들끓지말고 기다리자. 아니 기다릴 인내심이 없으면 찾아 읽기라도 하자.
나는 뉴라이트같은 의견들이 마구 쏟아져 나왔으면 좋겠다. 내가 다 찾아 읽기는 힘드니 누군가 대충이라도 근거를 제시해줬으면 좋겠다. 그래야 나름 총체적 역사보기가 가능하지 않겠는가.
그 쪽에서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이 나왔을때 재인식할 필요를 못 느낀다는 몇 사람들의 코멘트를 읽고 쓴 웃음을 지었더랬다. (아 물론 나도 사놓기만 하고 아직 읽지는 못했다만)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거나 읽지 않고 비판을 하는 건 아집이지 의견이 아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최소한 각자 연구를 내놓을 만큼. 그리고 그에 맞는 비판을 기대할 그럴만큼의 사회가 아직 안된건가.
나랑 전혀 다른 의견을 들어는 줄 수 있는(그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바꾸고 아니고는 각자의 문제니까)포용하는 사회 관용적인 사회를 꿈꾸는 건 내 지나친 욕심일까.
2006.12.02 Tokyo에서 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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