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역에서의 단상

황궁과 한국적 유전자

史野 2006. 11. 10. 17:14

 

 

성경에 보면 여호수아가 여리고성을 함락할때 전력이 부족해서 기도를 하니 하나님이 여리고성을 나팔을 불며 일곱바퀴를 돌라고 시키고 그렇게 하니 정말 여리고성이 무너져내렸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문제는 내가 성경을 한 세 번쯤 읽긴 했지만 그게 이십년전이다보니 디테일에서 부정확할 수도 있다..^^)

 

 

 

어제 황궁을 돌았다. 황궁이야 우리 집에서 가깝고 양쪽 방향으로 가보고 자주 스쳐가는 곳이긴 하지만 한바퀴를 돈 건 처음이다. 예전부터 목표는 황궁을 돌며 달리기를 하는 거였는데 (대충 오킬로 정도니까 두 번 돌면 십킬로를 뛰는 거다).

 

왜 뜬금없이 성경이야기를 했냐면 황궁을 돌 생각을 하고 나서부터 갑자기 저 여리고성 이야기가 떠오른거다. 물론 나야 절대 나팔을 불 일은 없고 (하나님은 시키는데로 해야 응답도 주신다..ㅎㅎ) 일곱바퀴를 돌 일도 없지만(그럼 마라톤 수준이다..-_-)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그게 마음이 걸리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발생.

 

 

 

아시다시피 나는 이 곳을 좋아하고 일본을 미워하지 않는다. 물론 용서했냐고 묻는다면 대답할 수는 없다. 내가 배운 것들을 전혀 신뢰하지 않는 나는 나름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인데 아직 식민지 상황의 우리 역사와 일본의 관계까진 가지 못했고 뭘 알지도 못하면서 용서를 했느니 안했으니 왈가왈부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단 하나 확실한 건 일본이 망하길 절대 바라지 않는다는건데( 일본에 지진이 났다고 했을때 한국인터넷 리플에 일본이 망해버렸으면 다 죽어버렸으면 좋겠단 글들이 좌르르 올라오면 난 상처받는다) 그래도 왠지 내가 황궁 주변을 도는 행위가 여리고성같은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는거다.

 

 

 

내 이성이 아니라 일본은 늘 철천지 원수라고 배우고 자란 내 한국인 유전자가 무의식적이라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 안다 이만하면 과대망상증으로 병원에 입원해야하는 수준이라는 걸..ㅎㅎ

 

거기다 황궁쪽으로 걸어가다  일본 법무성앞에 걸려있는 일장기를 보는 순간 이 곳에서 수도 없이 일장기를 봤음에도 갑자기 가슴이 서늘해지는 그 이상한 기분.

 

 

 

 

나는 해방 후  이십 년도 지나 태어났다. 식민지를 전혀 겪지 않은 내가 한국에 살때 일본인을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었는데도 일본을 향해 갖고 있던 그 무지막지한 증오는 지금 생각하면 머리가 쭈볐할 정도다.

 

물론 그건 어린 시절 이야기기는 해도 무조건 일본을 깎아내리고 싶은 마음. 십년 전 일본에 여행왔을때 나도 그렇게 생각함에도 신랑의 일본칭찬이 그저 거슬리던, 내 모든 이성을 순간 마비시키는 한국적 유전자. 그렇다 난 그걸 한국적 유전자라고 부르고 싶다  .

 

 

 

슬픈 유전자.

 

나보다 삼십 년 그러니까 해방후 오십 년이 흘러 태어난 이십일세기를 사는 어린 한국인들에게도 발견되는 그 미움과 증오를 달리 어떻게 표현할 수 있으랴.

 

아직 가치관도 제대로 형성되기 전에 누군가를 미워해야하는 건 참 슬픈 일이다. 아직도 역사청산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른들조차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해줄 수 없는, 아니 아는 게 제대로 없는 상황이란 더 슬픈 일이다.

 

 

 

얼마의 시간이 더 지나야 우리는 자신을 그리고 타인을 나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될까.

 

그러기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야하는 건가.

 

낯선 땅을 아무리 오래 떠돌아도 내가 가진 한국적 유전자는 나를 힘들게 한다.

 

무언가가 자꾸 내게 한국인으로서의 책임을 묻는다. 아니 기성세대로서의 책임을..내 부모세대가 해놓지 못해 그대로 넘어온 그 내 누추한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도 그대로 물려줘야하느냐고 자꾸 나를 채근한다

 

 

 

우습지만 이야기의 결론은 그렇게 삼년만에 처음으로 황궁을 돌았다는 이야기.

 

길고도 긴 서론을 끝내고 황궁 한바퀴 산책기..^^;;

 

 

내가 출발한 사쿠라다(桜田)문(그 외 모든 이름은 까먹었다..-_-)

 

 

세 시가 넘은 시간이었는데 벌써 저녁분위기에 인디언서머란 생각이 들만큼 따뜻한 날씨.

 

 

걷다 뒤돌아본 길. 나는 시계방향으로 돌았는데 일본이 우리와 반대쪽이라서인지 거꾸로 오는 달리기 하는 사람들로 넘친다

 

 

여기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우리식으로 하면 전경차가 서 있던 문.

 

 

그 건너가 요츠야 (四谷) 신주쿠(新宿)로 가는 길. 작년에 신랑이 하루 휴가내고 낭만산뽀가 아닌 발톱이 빠질 정도의 지옥산뽀를 하던 때 저 길로 접어 들었다..ㅎㅎ 저 연필깎이처럼 생긴 빌딩은 한국에서도 유명한 속옷인 와코루빌딩

 

 

우리가 왔을때는 이 곳이 사쿠라 만발이었는데 어쨌든 그 바로 옆의 공원

 

 

황궁주위를 걷는 다는 건 주로 저런 길을 따라 걷는 다는 것. 담배피는 게 금지된 치요다구(千代田区)인데 저 남자는 저렇게 앉아 아주 여유있게 담배를 피더라.

 

 

나같이 백프로는 아니지만 대충 법치주의자는 주로 저렇게 마련된 장소에서..ㅎㅎ

 

 

드디어 내가 가보지 않은 쪽으로 진입. 건너편은 경찰서인데 그때 사막님이 저 나무가 뭐라 하셨는데 까먹었지만 빨간 열매가 이쁘다.

 

 

그 곳에서 내가 걸어온 쪽으로 바라보니 멀리 국회의사당이 보인다.

 

 

원레 에도성은 더 넓었는데 자른 것이라고 해서 그러나 사진에는 안나오지만 오른쪽으로 있는 성벽은 부잣집담벼락과 별 반 안다르다. 그리고 역시 달리는 사람..ㅎㅎ

 

 

이 쪽으로 차들이 많이 들어가나 분위기는 좋던데 경비가 삼엄하더라.

 

 

옴마나 벌써 다른 방향으로 왔던 곳이다. 조금 더 넓을 거라 생각해서인가 갑자기 마사코비가 이런 감옥에 갇혀사는 구나란 생각이 들어 안쓰러운 기분. 아무 상관없는데도 난 늘 그녀가 안쓰럽다.

 

어쨌든 내가 사진을 찍는 이 뒷쪽이 야스쿠니 신사다

 

 

조금 걸어내려와 왼쪽에 보이는 건물은 마이니치신문사

 

 

충격적이게도 저 노숙자가 가진 두 개의 가방은 루이뷔통 여행가방이다. 물론 그를 혹은 그녀를 깨워서 짝퉁이냐 아니냐는 안 물어봤다..

 

 

보통 여행책에 황궁을 가는 길로 소개되는 다케바시, 죽교.

 

 

걸어가는 길 다시 돌아본 다케바시. 저 뒤에 보이는 건물이 미술관이다

 

 

드디어 도쿄타워가, 우리 집이 보이기 시작한다..^^(물론 줌이다)

 

 

또 하나의 출입구

 

 

날은 순식간에 어두어지지만 집은 가까와지고..ㅎㅎ 물론 아무리 보여도 걸어가는데 삼십분도 더 걸리지만..^^

 

 

도쿄역과 마주보는 황궁의 정문

 

 

그리고 드디어 저 불빛이 끝나는 곳이 내가 출발했던 사쿠라다몬.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어쨌든 황궁 한바퀴 왼료. 세월아 네월아 걷는데 한시간 오십분 소요

 

 

열심히 걸어와 드디어 히비야공원이 끝나는 곳(우리 집쪽에서는 시작하는 곳) 분수앞에서 담배 한 대 피우며 내가 아무리 돌아도 황궁은 절대 무너지지 않을거란 생각으로 씩 웃는다..

 

날씨도 좋고 공기도 좋고 계절마다 돌아도 좋겠단 생각. 꼭 일곱 번은 돌아야지. 아니 열네 번을 돌아야하나..ㅎㅎ

 

 

 

 

 

2006.11.10 Tokyo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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