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다닐때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했더랬고 국제결혼을 한 후엔 혼혈아를 낳지 않겠단 이야기도 했더랬는데 말이 씨가 되었는지 정말 그렇게 되어 버렸다만 내가 낳았을 수도 있는 아이 혹은 지금이라도 의술을 빌려 발버둥을 치면 혹 낳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아이, 혼혈아.
신랑이 결혼하자고 했을 때 내가 이야기했던 것 중 하나도 아이문제인데 그때 내 남자는 아주 진지한 눈빛으로 그랬다. 니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부모가 서로 아끼고 사랑한다면 아이도 나름의 어려움은 극복할 힘을 얻을거라고..
부모의 사랑이 꼭 외부로부터의 공격을 막아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어디있냐는 식이 아닌 내 고민에 대해 나름 진지한 그의 대답은 나를 감동시켰던 기억..물론 그래서 결혼한 건 아니다만..^^
오늘 다음뉴스에 뜬 걸 보니 무슨 혼혈인 농구선수의 힘들었던 어린 시절이 나오던데 그러니 옛날 내가 만났던 어느 여자가 생각난다.
키가 크고 늘씬한데다 긴 까만 생머리가 아주 매력적인 그녀는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었더니 일본사람이기도 하고 독일사람이기도 하지 하며 쓸쓸히 웃었더랬다.
그녀는 정말 매력적이었는데 난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 동유럽 사람 그러니까 집시의 피가 섞이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의외의 대답이었다
아버지가 일본인 어머니가 독일인이고 일본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그녀는 여동생과 달리 자긴 나름 동양적인 외모를 가졌음에도 일본에 살때 아무도 자길 일본사람취급을 해주지 않아 외로왔단다. 그래 늘 어머니 나라에 가겠다고, 나를 아무도 다르게 봐주지 않는 나라에 가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독일에 오니 또 나처럼 너는 어디에서 왔냐고 묻더라고..
그녀때문에 내가 가졌던 혼혈아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 심해진건 아니지만 당시 결혼 초였던, 그리고 언젠가 아이를 낳을 생각이 있었던 내겐 그녀의 그 쓸쓸한 답변이 참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내가 혼혈에 대해 부정적 생각을 갖고 있는 건 당연히 한국적 상황때문이다. 특히나 어린 시절을 이태원에서 보낸 내겐 미군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와 함께 혼혈아가 갖는 그 불공평한 사회적 위상이 깊숙이 뇌리에 박혔다.
이런 내가 국제결혼을 했다는 사실이 가끔은 나도 놀랍다만.
요즘이야 그때와 많이 다르게 양공주만 혼혈아를 낳는 세대는 아님에도 우리 사회에 뿌리박힌 의식이 많이 나아졌다는 생각은 들진 않는다.
거기다 내가 아주 우려하는 것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요즘의 국제결혼. 서양권과의 결혼은 별 문제가 안되지만 농촌총각등이랑 결혼하는 동남아지역의 국제결혼은 내가 왈가왈부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님에도 자꾸 내 신경이 쓰이게 한다.
내가 국제결혼을 하던 93년처럼 폐쇄된 공간이 아니라(나는 정말 신랑이랑 서울거리를 걷다 내 평생 들어본 중 가장 더러운 욕들도 들었더랬다) 많이 달라진 사회라고 해도 아직까지 피부색에 대한 한국인(한국인 뿐이랴만)의 의식까지 많이 달라 보이진 않기 때문이다.
작년인가 말레이시아여성이었나 국제결혼을 한 임신부 여성이었는데 한국대학생인듯한 젊은이들이 저 아이는 태어나면 피부색이 어떨까 저쩌고 대놓고 떠들었단 신문기사를 읽고 분노한 적이 있다.
유감스럽게도 동남아나 중앙아시아까지 가서 (이 결혼에 대해 들리는 온갖 잡음들과 문제점에도 할 말은 많다만) 결혼을 하는 사람들이 중산층도 아닌 대부분 사회의 소외층이라는 것.
같은 한국사람이라도 사회적 지위가 부족하면 인간대접 받기 힘든 나라가 안타깝게도 내 나라인데, 그 사이에 태어난 혼혈인 아이들이 가난은 어찌 숨길 수 있어도 피부색은 숨길 수 없는데 앞으로 이 나라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지 가 나는 오지랖 넓게도 너무 걱정스럽다.
아직 우리 사회는 다양성을 받아들일 만큼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생각에 말이다.
안그래도 이제 가난이 대물림되고 사회복지며 없는 사람들이 인간답게 살기가 어려워지는 세상에 날 때부터 피부색이며 부족한 환경(이건 엄마의 한국어 실력도 포함된다)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과연 대한민국에서 버젓하게 자랄 수 있을까 하는 의문.
더 심한 한국인들도 많지만 그래도 다르니까 그들이 더 표적이 되고 왕따를 당하고 불평등의 대상이 되는 그런 위치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
작년인가 통계표에 보니 국제결혼비율이 십프로가 넘는다는데 그 중 티가 안나는 중국이나 일본인이야 상관없겠지만 안그래도 우리나라 보다 못 사는데다 티까지 나는 사람들의 자손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
눈에 띄인다는 것 남과 아주 많이 다르다는 건 참 외로운 일이다.
이제 그 아이들이 자라가고 있고 앞으로는 더 많은 아이들이 태어날텐데 아무 잘못도 없이 그냥 이 땅에 태어나게 될 그 아이들이 덜 차별받는 세상이 왔으면.
높이 계신 분들 포함 우리 모두가 더 늦기전에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뭔가 달라질 수 있으면 좋겠단 생각을-그렇다 안타깝게도 그저 생각만이다- 해보는 날이다
2006.11.13.Tokyo에서 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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