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는 모 아나운서의 번역서가 대리번역이었다고 난리더니 요번엔 또 어느 대중미술작가의 책들이 다 대필이라고 난리다.
나야 뭐 둘의 책을 읽어본 적이 없고 읽고 싶었던 책들도 아니니 크게 열받을 일도 없다만 한국사회의 그 뒤집어질 것같은 반응은 좀 놀랍다.
정말 출판계에 대필관행이 있다는 걸 몰랐을까? 설사 몰랐더라도 왜 새삼 우린 맑은 물에서만 놀았던 것처럼 우린 모두 깨끗한 것처럼 배신감을 느끼고 울분하고 그러는 걸까.
물론 아니라고 내가 했다고 끝까지 우기는 태도는 당연히 비난받아 마땅하고 그 말에 대한 책임도 져야한다만 이 문제는 조금 더 개인의 문제이므로 그들에게 맡길 수밖에 없으니 여기선 빼기로 하자.
일단 교수들이 내는 번역서만 해도 대신 한 두장 번역 안해본 사람 한국에서 대학다닌 사람치고 있을까?
남의 것을 내 것처럼 속이는 것. 이건 한국의 관행이다. 학교다닐때 컨닝했다고 부끄러워하는 사람 하나도 못봤다. 물론 최소한 부끄러워할 줄 아는 인간들은 말은 안했을테니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다만.
컷닝은 다행히도 해본 적 없지만 나도 한번 친구가 대신 레포트를 내준적이 있다. 그리고 돈과 관계된 건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짧은 글을 대필해준 적도 있으며 (활자화도 된 글인데) 방통대 졸업논문을 대신 써준 적도 있다.
당시는 나도 절박했지만 상대들도 절박한 상황이었으므로 그 일을 크게 떠들어 본 적도 없지만 크게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이 부분에서 나보다 더 도덕적이고(난 물론 한국적인 도덕이란 개념에 절대 동의하지 않지만 잠시 빌려쓰자) 깨끗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왜 어쩌고 누군가를 마녀사냥할 일이 아니라 이걸 계기로 우리사회 모두가 반성해야할 일이란게 말하고 싶은 거다.
오늘 다음기사에 대필작가들의 양심선언(?) 비슷한 것들도 떴던데 돈도 받고 미리 그런 줄 알아놓고는 좀 웃긴다. 대필을 맡기는 사람도 하는 사람도 하나는 강자고 하나는 약자라는 차이는 있어도 엄밀하게 공범이다. 그리고 방조하는 우리들도 공범이다.
나는 대필작가도 하나 알고 있는데 그에게 왜 대필같은 걸 하냐고 물어본 적이 없다. 인터넷에도 버젓이 대필행위를 고백하는 어떤 사람에게도 당신은 왜 그런걸 하냐고 따져 본 적도 없다.
모르는 사람들을 향해는 정의고 양심이고 떠들어도 막상 아는 사람에겐 약해지는 거 이것도 우리 모습이다.
남이 하니까 나도 한다고? 아니 내가 하니까 남도 하는 건데?
더 자세히 들어가보자면 엄마가 숙제를 대신해주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요즘은 뭐 인터넷에서 베껴다가 낸다만, 심지어 자기반 학생들에게 시험지유출까지 하는 선생도 있고 그렇게 자라서 컷닝하고 베끼고 남이 요약한 노트 외워 학점받고 교수되고 그럼 이젠 논문도 베끼고 하다보니 황우석사태같은 것도 생기는 거지 어디 황우석교수가 달나라에서 떨어졌다더냐?
분명히 지난 번 대리번역이나 대필사건과 관계된 사람들도 황우석사태 때는 열나게 욕했을거다.
이런 건 그래도 대필작가에게 댓가나 지불했으니 그나마 나은 거에 속한다.
일본논문같은 거 그대로 베껴놓고도 잘난 교수생활 잘만하는 것이나 외국논문 대충 짜깁기해놓고 연구니 떠드는 것보단 낫지 않냐 말이다. 전자야 유명한 이야기지만 후자는 누가 ~카더라가 아니라 내가 확인한 사항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무진장 중요하고 잘나가는 어느 미술관련교수가 써놓은 논문집을 사서 읽다보니 짜깁기도 그런 짜깁기가 없어 황당했던 적이 있다. 처음엔 그래도 하는 마음으로 일일히 의문사항 줄쳐가며 각주확인해가며 읽다가 결국 포기했다.
평생을 연구했느니 어쨌느니 서론이 창피하도록 외국논문 짜깁기가 확실하더라. 그땐 하도 열받아서 공개질의서라도 띄워볼까 생각했지만 내 시간이 아까운데다 그럴 가치가 있는 인간이 아닌것 같아 그냥 한 이만원 거지에게 줬다 생각하고 말았다.
대필이나 대리번역이나 혹은 그 출판사들이 잘했다는 게 아니다. (내 블로그까지 올 일이야 없겠지만 멍청한 인간들 괜히 또 논점 못 잡고 헤매지마라)
우리는 도덕불감증사회에서 살고 있다. 그러면서 누가 뭐 하면 다들 양심이니 어쩌니 떠들어대는 거 솔직히 가증스럽다.
문제는 모든 것에 이런 식이다. 도대체 왜 우리는 반성이라는 걸 모르는 걸까. 어제도 류성룡이 남겼다는 임진왜란 반성인지 뭐시긴지 하는 징비록을 읽다가 열을 확 받아서는 그냥 던져버렸다.
정말 멍청한 우리 조상들의 대응방식도 열받지만 이 류성룡이라는 '분'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긴 잘했다는 식의 서술을 한다. 물론 나는 끝까지 안 읽었으니 맨끝에 나도 잘못했다 썼을 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중간에는 내가 이렇게 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등의 글은 안 나온다는 것!!!
말이 나왔으니 우리나라가 유학의 전통 혹은 폐해로 이 모양 이 꼴이라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 당파싸움으로 생난리를 치던 성리학은 修己治人 나를 닦고 남을 다스린다 이야기를 표방하는 학문이란다. 그러니까 성리학이나마 제대로 전통으로 이어왔으면 이런 꼴 날일은 애초에 없었단 이야기다.
난 예수도 아니고 이젠 기독교신자도 아니다만 죄없는 자 돌던져라.
아니 죄있는 이가 돌 던져도 좋은데 최소한 던지기 전에 나는 그런 일이 없었는지 생각해보고 앞으로 절대 안그러겠다는 다짐이라도 하고 돌을 던져라.
그래야 지렁이가 기어가든 달팽이가 꿈틀거리던 뭔가 조금씩 이 사회가 달라지고 발전할게 아니겠는가.
갑자기 왜 또 난리냐고?
새해벽두부터 한명기의 광해군을 시작으로 책을 읽었더니 우리나라가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데다 젠장 그 전통을 너무나 철저히 고수하는 잘난 나라라는걸 확인하게 되어 그렇다.
학벌따지며 끼리끼리 노는 것도, 권위를 이용해 한몫보려는 것도, 기득권을 차지하고 안놓으려고 발버둥치는 것도, 백성이라곤 눈꼽마치도 생각안하는 것도, 사대주의라 잘사는 나라에 무조건 날잡아 잡숴하는 것도, 주변정세에 어둡고 그저 자기 잘난 줄 아는 것도, 조선시대부터의 전통이라는 걸 새삼 확인했더니 열불이 나서 이런다고!!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를 알고 싶어서 발버둥을 칠 수록 자꾸 나락으로 떨어지는 드러운 기분이다.
2007.01.03 Tokyo에서 사야
'간이역에서의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가 한국인임이 부끄러울 때 (0) | 2007.02.13 |
---|---|
공지영을 비난하지 말아야할 이유 (0) | 2007.02.10 |
내 결혼이야기 그리고 민족의식 (0) | 2006.12.12 |
교과서논쟁에 대한 단상 (0) | 2006.12.02 |
혼혈아에 대한 단상 (0) | 2006.1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