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흔적

고장난 노트북과 묵은 사진들

史野 2005. 10. 6. 11:40

엄밀히말해 고장은 아닌데 내 노트북에 인터넷을 연결할 수가 없다. 바이러스보호프로그램기한이 다되어 연장을 하려고 했는데 그걸 신청할때가 홍콩주소여서인지 전혀 되지 않아 애를 태우다가 하루 남기고 잔머리를 굴려 한국프로그램을 샀더니 독일윈도우인 내 노트북에서는 프로그램자체를 읽을 수가 없다.

 

어찌어찌 우여곡절끝에 프로그램은 깔았는데 설정 뭐 이런게 잘못되었는지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고 메시지는 자꾸 뜨는데 뭐가 잘못되었는지를 모르니 속만 탈 수 밖에..

 

어쨋든 동경에와서는 거의 만져본 적이 없고 남편의 개인 소유물이라고 생각하는 컴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려니 엄청 어색하고 불편하다.

 

내게 노트북이 생긴건 상해 첫 해 그러니까 사년 반전이다. 말하자면 내가 소유한 첫 컴이다. 주말에도 하나뿐인 컴때문에 남편과 안싸우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게 얼마나 행복했는지 .

 

물론 위에 썼듯이 독일어윈도우라 (회사에서 싼값에 원하는 사람들에게 일률적으로 분양한 노트북이다) 당시 유행하던 챗팅을 할 수도 없었고 또 한국어를 쓰는데 불편한 점이 많았지만 내겐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떠도는 내게 인터넷은 세상을 향한 창이었고 언제나 내가 원할때 만날 수 있는 둘도 없는 친구이기도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준 선생님이기도 했다.  

 

몇가지 사건이 있긴했지만 사람을 가리는 편이라 크게 불미스러운 일은 없이 내겐 아주 긍정적인 것. 오죽하면 남편이 한국어로 인터넷을 하기 시작한 후 내가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았다는 말을 했을까.

 

노트북으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없게되자 과장하자면 세상으로의 줄이 끊기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일까 다시 한 번 나와 인터넷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보게된게..

 

과연 이게 바람직한 생활일까하는. 내가 처한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 사이버의 세계가 말이다.

 

기본은 독일어인데 한국어를 읽고 살아야하는 내 노트북의 운명은(?) 내 삶과도 많이 닮았더라.

 

민족을 규정할때 가장 대표적인게 언어와 문화(특히 음식)라고 볼때 나는 이제 그 음식에서는 자유로와졌는데 아직 언어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남편이 다음 달 한국에 가면 한국어로된 노트북을 하나 구입하라기에 처음엔 좋은 생각이라고 기뻐했는데 지금은 조금 망설여지고 자꾸 내가 처한 현실을 바로보고 거기에 맞게 살아야하지 않나하는 생각을 하게된다.

 

 

 

어쨋든 오랫만에 여기 앉았더니 몇 개 오래된 사진들이 눈에 띈다.

 

 

이 사진 기억하시는 분들 많을거다..ㅎㅎ 92년도 베를린에 다녀오다 동행했던 애가 직접 현상까지 해서 보내준 내가 참 아끼는 사진이다..^^

 

 

이 사진을 보니 저때도 날씬한 건 아니었구나 싶어 피식 웃음이 난다. 저 옷은 지난 번 남편생일날 입었던 그 요란한 파티옷이라 총 세 번 쯤 입었나. 어쨋든 반짝거리는 윗옷에 반짝거리는 스타킹까지 이젠 잊혀져가는 내 모습이다..^^;;

 

저때 우리는 별거중이라 나는 독일에 있었는데 남편이 부부동반파티가 있다고해서 저렇게 옷까지 사입고 아일랜드로 날아갔으니..ㅎㅎ 옷은 뭐 내가 산건 아니고 아들며느리가 어려운 순간을 잘 극복하길 간절히 바라신 시부모님이 사주신거다..^^   

 

 

 

예전 살림에 재미붙이고 살때의 남편..ㅎㅎ 피자반죽을 하고 있는 중이다. 재미삼아 슈퍼에서 받아온 봉지로 주방장 모자를 만들어 사진을 찍어도 그저 좋아하던 그 장난꾸러기 남편은 어디로 갔는지..흑흑

 

 

 

 

이건 상해 첫 해 남도로 여행을 떠나 광주에서 찍은 사진이다. 저때만 해도 남편이 지금보다 십킬로는 덜 나갔는데 이젠 운동부족에 스트레스에 진짜 아저씨가 다 되어버려 안타깝다. 하긴 뭐 제일 안타까와하는건 본인이지만..

 

요즘은 다시 또 너무나 바빠서(언제 안바쁜적이 있었냐고 묻지마라 나도 모른다..ㅜㅜ) 어제도 12시가 다된 시간에 거의 눈을 감고 샐러드를 만들어줬다.

 

아 정말 퇴직금많이 줄테니 제발 나가달라고해주면 좋겠다는 농담반 진담반을 하며 그렇게 살고 있다.

 

이제 정말 이 생활을 그만두고 싶다..

 

 

 

2005.10.06. Tokyo에서 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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