뭄바이에서부터 뭔가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으나 안좋은 방식으로 왔다.
그제 밤 늦게퇴근해온 남편 왈 남편의 보스가 밀렸다는 거다. 그는 엄밀히는 남편의 보스의 보스인데 어쨋든 울 신랑을 발탁해쓴 말하자면 울 신랑의 방패막이다.
그가 밀릴거란 건 상상도 못해봤기에 놀라웠는데 그가 밀리면 울 신랑이 밀리는건 불을 보듯 훤한 일,
또 새롭게 조직이 정비되고 그럴때는 어찌나들 잽싼지 어제 벌써 새로운 명단이 돌았다는데 진짜로 신랑이름이 빠져있었단다.
그럼 새로운 사람 이름이나 써놓던지 결정안되었슴이었다니. 그럼 결정될때까지 기다렸다 발표를 하던지 뭐하자는 거냐..ㅜㅜ
지난번에 얘기했지만 우리가 뭄바이에 있을때 이 회사 가장 파워가 있던 사람이 밀려나갔고 새로운 사람이 결정되었는데 그가 낸 의견에 우리 신랑은 반대를 했다. 사실 내가 강력하게 민 탓도 있는데 난 정말 더이상은 못견디겠다는 생각을 했었기에.
그 쪽 파트들은 처음부터 내 남자를 반대했었고 (기억하실거다 홍콩에서 결정이 되고도 가느니 안가느니 했던거) 이번 해에 승진을 할때도 어떻해든지 자기쪽 사람들을 쓸려고 발버둥을 쳤었는데 그때까지는 그래도 그 보스가 힘이있었으니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그때 어떤 분이 남편이 승진을 했는데 왜 좋아하지않느냐고 물으셨었는데 그렇게 힘들여가며 여기 있어야할 필요가 있을까하는게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아시다시피 정말 여기 와서 2년동안 단 한 번도 마음편한 날이 없지 않았는가 말이다.
물론 직장생활이라고는 여기저기 다 합쳐 삼년도 해보지 못한 나는 철없이 당장 그만두라는 말이나 외치고 우직한 남편은 늘 성실이 견뎌온게 다를까.
요즘 세상이 다 그렇다고는 해도 정말 풀뿌리를 캐먹고 살아도 마음편한게 좋지 않느냐는게 내 감정적인 생각인데 남편생각은 그렇지 않은거 같다.
그래 나 지금 드럽게 비싼 아파트에서 잘 먹고 잘 산다. 상해왔을때만해도 비싼 월세에 기절해서 어떻게 이런 집에서 살 수가 있냐고 엄청 우울했었는데 이제는 왜 더 대주지 않을까를 불평할만큼 재수없게 변했다.
참 사람이란게 동경에서 이 정도크기의 아파트에 사는것도 감사해야하거늘 상해 홍콩이랑 비교 작다고 다음달에 이사를 갈까까지 심각하게 생각했다는 것도 부인하지 않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무슨 사치허영덩어리도 아니고 나 월급이 더 적어져도 역시 잘먹고 잘 살 자신있다.
요즈음은 노트북때문에 아무래도 책읽을 시간이 늘어났는데 읽고 싶은 책이 많고 책 읽을 시간이 있고 또 그 책을 살 돈이 있으니 이이상 뭘 더바라랴는 생각으로 행복했던 단순한 인간이 또 나니까.
정말 이럴때는 그동안 애썼으니 좀 쉬라고 내가 자기를 먹여살리겠다고 할 수 없는 게 너무 마음이 아프다.
물론 우리가 한국으로가면 내가 뭔들 못하겠냐만은 그건 신랑이 원하는 방향은 아니고 이 곳에서나 독일에서나 내가 남편을 먹여살릴 방법은 없다는게 처절한 현실이니 말이다.
이제 독일을 떠난지도 곧 만으로 8년
나 정말 더이상 이렇게 머물다가는 독일로 돌아갈 자신없다고 이걸 떠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그냥 확실하게 독일로 가자고 어제 간절하게 말했다.
그런다고 뭐 내가 독일이 전혀 겁나지 않는다는 건 아니다. 내가 아는 애들은 거의 남아있지 않은데다 남편친구들하고는 친하지만 나랑 잘맞는 마누라들도 하나도 없다.
그냥 스쳐가는 게 아니라 뼈를 묻어야할 그 곳에서 다시 모든 걸 새로 시작한다는거 엄청 부담스럽다.
내 이 독일어로 다시 간다고 생각하면 경기가 날 지경이다. 거기다 예전 독일살때는 공부라도 했지 지금은 애가 딸려서 아줌마들하고 수다떨고 살 것도 아니고 어떤 식으로 내 삶을 끌어가야할지 그것도 막막하다.
유럽살때는 몰랐는데 막상 동경에 와서 아무도 내가 외국인인줄 모르는 그 상황도 너무 편하고 좋다.
거기다 시차도 없고 여기서라고 자주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마음만 먹으면 훌쩍 한국에 갈 수 있다는 것도 좋다,
그래도 이젠 자그마하게나마 내 집이란걸 마련해서 아직도 쓸 수 있을지는 모르나 8년동안이나 창고에서 썪고 있는 내 부엌도 찾아오고 상추도 심고 신랑이랑 조깅도 하고 여기와서 그림도 못걸고 사는데 한맺혀서 박고 싶은 곳에 못도 팍팍 박으며 그렇게 살고 싶다.
시부모님은 또 얼마나 좋아하시겠냔 말이다.
그래서 어제 밤 역시나 철없는 마누라는 머리복잡한 남편앞에서 혼자 신났다.
물론 나라고 신나하기만했겠냐 조금은 놀라기도 했고 머리는 캡복잡해졌다.
돌아갈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어도 여러 상황상 못돌아가고 아예 아시아에 눌어앉게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는데 조만간 독일로 돌아가기위해 짐을 싸야할지도 모른다니..
착한 마누라답게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던지 그리고 당신이 어떻게 결정을 내리던지 나는 무조건적으로 지원할테니 내 걱정은 말라는 말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근해서 평소처럼 해결해야하는 일들은 많고 다음 주 홍콩출장도 잡혀있는 남자.
어쨋든 빠른 시일안에 결정이 나기만을 바란다. 그리고 어떤 일이 생기던 내 남자가 넘 맘상하지않고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아니 무엇보다 그 놈의 책임감에 모든 걸 무조건 견뎌내지 않기를 바란다.
아침에 출근하는 남편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괜히 속에서 울컥하는게 안쓰러운 마음이 가득.
정말 단 한 번만이라도 더러워서 못해먹겠다고 일을 그만두겠다는 말을 하는 남자였더라면 내 마음이 이렇지 않을것 같다.
2005.10.13 Tokyo에서 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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