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아늑한 모래실

행복했던 하루..ㅎㅎ

史野 2013. 4. 14. 00:22

사야가 다친 이후론 안그래도 힘든 삶이 더 힘들어진 데다가 이런 저런 옵션까지 합쳐 쉽지 않은 날들이었다.

지난 주부턴 비엔 바람에 추위도 한몫을 해서 '정말 내가 이 시간동안 뭘 했지?' 싶을만큼 어정쩡했던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리기도 했다.

아 뭐 물론 사야야 피터지게 사는 게 목적이 아니므로 이래 사나 저래 사나 뭐 그게 그거였다만..ㅎㅎ

 

참 봄 추위라는 게 신기한게 영하 십 몇도랑은 그 차원이 다르다. 춥다 그나마 온도가 올라가면 감사해야하는 게 인지상정(?)인데 봄 추위는 왠지 사람을 갑자기 남극에라도 홀로 데려다 놓은 듯 온 몸을 시리게 하는 어떤 묘한 차가움이 있다.

기억으로는 이년 전인가도 봄에 무지 추웠던 듯 한데 올 봄은 바람까지 동반해 더 춥게 느껴지고 말이다.

 

어쨌든 지난 번 그 황당한(!) 짜장밥을 먹고나니 양파도 감자도 없는 인생은 좀 아니다 싶더라.

 

 

 

그래 저렇게 양파와 감자를 한무더기씩 주문했다. 문제는 살림이랑은 별 상관이 없는 사야가 그저 '햇' 자만 보고 시켰더니 2012년 햇상픔이었단 슬픈 이야기..^^;; 쭈그렁 바가지들이 나타나서 조만간 팔자에도 없는 양파 장아찌, 감자 어쩌구를 만들게 될 지도 모르겠다..ㅎㅎ

 

 

 

없으면 없는 대로 잘 사는 사야긴 하다만 그래도 또 한 번 발동이 걸리면 다 있어야하는 인간이기도 한 관계로..ㅎㅎ 주문하는 김에 팍팍 주문했다. 사야음식에 절대 빠질 수 없는 국물용멸치를 다시 한번 말리는 중.   

 

육개월간 주문을 안할 때도 있다만 한 번 주문을 하면 왜 또 그렇게 필요한 건 많은 지, 어제 배달온 박스가 아홉개..^^;;

열시 반쯤 전화한 아저씨. 꿈나라에서 나타난 사야 공주가..ㅎㅎ 그냥 대문앞에 놓고 가세요, 라고 말했는데 막상 나와보니 고맙게도 대문앞이 아니라 현관앞에 다 쌓아놓고 가셨더라.

 

 

 

아젠 결국 포개놓거나 잘라놓은 장작이 하나도 없어 난로를 못 피웠는데 아무리 보일러를 돌려도 이 집 특성상 찬 기운 때문인 지 감기끼가 좀 있더라.

혼자 살며 더 서러운 건 팔에 기부스를 한게 아니라 감기 몸살이 나 일어나기도 힘든 데 물 한 잔 떠다 줄 사람이 없다는 걸거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사야가 전기장판 ( 아 사야가 자꾸 전기장판하니까 오해의 소지가 좀 있는데 그냥 전기장판보다는 조금 아니 많이 럭셔리한 뭐 그런거다..ㅎㅎ) 온도를 올려놓고 잤더니 땀을 좀 흘렸다.

 

오늘은 바람은 불었어도 꽤 오랫만에 햇살이 좋았던 날. 원래는 이불이랑 이불보를 분리해 빨아야 했다만 늦게 일어나기도 했고 사실 이불보를 바꾼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그냥 저렇게 이불이며 베개며 통채로! 빨아 햇살과 바람에 말렸더니 기분이 아주 좋다.

 

이불보를 일주일에 한번 씩 갈때의 사야 소원은 호텔처럼 매일매일 새 이불보를 덮는 거였는데 이젠 이주에 한 번이 아니라 한달 씩 이불보를 쓸 때도 있다..ㅜㅜ

 

 

 

어쨌든, 멸치 말리고 빨래 돌리고 어쩌고 하는 사이 저리 역시 이번에 주문한 미나리로 물김치도 만들었다. 사야는 물김치라면 환장을 하는 데 사야에겐 일종의 쥬스 개념이다.

술마시고 난 다음 날, 아 뭐 그러니까 매일 아침이 되겠다만 물김치를 한 컵씩 마신다..ㅎㅎ

그러니 당연히 진짜 김치가 되면 안되고 저 물은 다시마로 육수를 낸 소금은 최소한 만 들어간 진짜 물(!) 김치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 할 때도 있지만 또 발동 걸리면 뭐든 지 하는 사야는 오늘 저 우렁된장도 만들었다. 감자 양파 표고버섯 물 마늘 우렁 된장 이렇게 넣고 한소끔만 끓이다 거품만 거더내면 만사 오케이

어차피 나중에 한번 더 끓일거긴 하지만 아니 끓인다기보다 물 끓을 때 잠깐 넣어주기만 하면 되지만 맛간장처럼 한 번 만들어 놓으면 즉석식품처럼 십분도 안되어 맛좋은 된장찌개나 국 완성..ㅎㅎ

 

 

 

역시나 주문 품목에 들어간 쭈구미. 제철이라는 데 함 먹어봐야지..ㅎㅎ

몇 번 가 본 마포의 낙지전문점 비슷하게 흉내내 볶음을 해봤더니 대박이었다. 아 물론 사야는 늘 스스로 만든 음식에 감동하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만..ㅎㅎ

고추장볶음인데 쭈구미의 먹물때문에 저리 짜장처럼 보인다만 같은 걸 두 끼 먹기 싫어하는 사야가 내일 아침에도 해먹을까 고미할 정도다..^^

 

저 쭈구미 덮밥을 해먹으며 남친 생각이 나더라

진짜 맛있게 먹어줬을 텐데 하는 생각 말이다. 함께사는 동안 외식을 싫어하는 사야가 나름 제철음식을 때 맞춰 해주고 했었는데..

음식은 누가뭐래도 혼자 맛있다고 감동하기보단 누군가 맛있다고 난리쳐주는 게 더 필요하단 생각..^^

 

그래 고맙게도 외식을 싫어하는 사야는 지가 만들어 지가 먹으면서도 감동하며 그렇게 또 하루가 간다.

저 쭈구미 볶음밥을 먹으려 만들어놓은 우렁된장으로 국을 만들려다보니 ' 아 냉이 있지' 하며 호미들고 나가는 그런 삶.

다섯뿌리 캐와 두 뿌리 넣고 저 쭈꾸미 볶음밥이랑 같이 먹었다.

 

같이 먹었으면 좋았겠지만 혼자 먹는 다고 그 밥이 맛없는 건 아니더라구

일주일 남짓 너무 춥고 불편해서 삶이 삶이 아니었는데 오늘 반짝 따뜻해졌다고 사얀 이 많은 일을 오늘 다 해 치웠다

아니 여기 올린 일보다 사실 더 많은 일을 했다.

 

그래서 날씨란 게 이리 인간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나, 아님 사야만 그런가

오랫만에 날씨가 좋아 우야든둥 행복했던 날,

농부는 아니지만 이렇게 날씨에 영향받고 일주일간 나눠했을 일을 하루에 하며 넌 행복하구나, 그러는 날..

 

그래, 사야는 오늘 무진장 행복하다

어찌보면 처음으로 인간관계때문이 아닌 그냥 오늘은 그래 오늘만이라도 이 삶 자체로 행복하다

 

 

 

 

2013.04.13. 여주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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