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아늑한 모래실

알콜성 치매

史野 2013. 1. 10. 22:22

사야는 요즘 술을 마시고 약을 먹으면 그 사이 일을 잘 기억 못한다

근데 그건 자기전에 바로 먹는 약이라 별 상관이 없다.

그냥 정신과샘에게 가서 '선생님 술먹고 약먹으니 기억이 없어욧!' 하고 불평하면' 아니 지금 그걸 나보러 책임지라는 겁니까? ' 웃으며 넘어가던 문제였는데 상황이 달라졌다.

 

 

워낙 예민한 사야는 사주를 본 후엔 약을 먹어도 자꾸 깨고 악몽도 자주 꾸고 불안불안하긴하다.

하긴 그렇게 따지면 수면제를 열 몇알 집어삼켜도 잠을 못자던 사야가 (혹 오해하시는 분들 있을까봐 다시 강조하지만 잠잘라고 그런거다 절대 다른 의도는 없었다..ㅎㅎ)  아무리 술을 마셨더라도 수면제 반알 들은 약제에 잠을 잔다는 것이 차라리 신기한 일이지만 말이다.

 

우짜든둥

어젠 새로 이사오신 분들과 마당에 서서 이야기한 적은 몇 번 있지만 처음으로 그 집에 가서 다과를 나누며 이야길 했다

아저씬 열다섯 살 아주머니는 열 네살 위시더라.

열 살까진 커버가 가능한 사야지만 열 다섯은 좀 무시무시한(?) 관계로 약간 얼어있기도 한 상황이었는데 이 분들이 이사오실 때쯤이 또 남친이 짐을 빼고 어쩌고 겹쳐있었다.

뭔가를 설명하는 걸 너무나 싫어라하는 사야에게 사실 마음 복잡한 시간이기도 했고 말이다 

 

 

역시 또 우짜든둥

갑자기 불려갔지만(?) 나름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이웃집의 중요성에서 부터 시작해서 종교 정치 문화 경제까진..ㅎㅎ 아니더라도 다양한 이야길 하며 좋은 이웃이 이사온 것에 감동했다.

문제는 이야기도중 독일이야기 유럽이야기가 나오는데 ' 저 사실은 그거 제가 더 잘 아는데요?' 소리를 못하겠더라는 거다. 그럼 또 구구절절 이야기가 나와야하니 말이다

어차피 긴밀한 이웃으로 살아야하니 언젠가 나와야할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냥 어제는 그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거기다 거의 빈속에 사과랑 생강차를 마셔서인 지 갑자기 위는 왜그렇게 아픈 지 고맙게도 김치뿐이라도 저녁먹으며 이야기를 더하자는 분들을 뿌리치고 집에 와버렸다지.

 

참 고맙고 좋은 분들이신게 그래도 나름 시골생활 오년차인데가 난로피우기 삼년차인 사야가 처음 난로 피우실 때 잔가지를 한봉지 가져다드린 적이 있는데 그걸 그렇게 고마와하며 갚아주시기까지 하더라지.

 

또 우짜든둥

썼던 예거마이스터란 술로 속을 좀 다스리고 있는데 어젠 또 여기저기서 전화며 문자며 이런 저런 통화를 하며 술을 마시다보니 만땅 취해버려서 또 통화를 하게 되었다는 건데...

친구놈이랑 통화를 하고 고기공놈에게 전화를 했는데 그 놈은 안 받았고 또 약도 안먹은 사야는 어찌 남친이랑 통화를 하다 결국 잠은 들었는데...

 

오늘 저녁에 친구놈이 갑자기 다음주는 출장이 잡히고 어쩌고 내일 담양에 가자고 연락이 온거다.

그제부터 미치도록 새깽이들이 보고 싶긴 했지만 사정상 갈 엄두를 못내고 있었는데 얼씨구나 좋다하고 생난리를 치다보니 뭔가 이상하더라는거다

사실 점심때 고기공놈이 전화해서 ' 언니 어제 전화했던데 자다가 못받았어요' 할 때도 기억안나다구..ㅜㅜ 고기공놈은 그럼 다행이라고 그냥 지나갔는데 이건 아니더라지.

추적(?)을 해보니 사실은 사야가 어제 친구놈에게 전화해서 담양에 데려다 달라고 떼를 쓴거더라는 거다.

아 미치미치, 그걸 친구놈이 전화해서 어쩌고 할 때까지도 전혀 몰랐다.

 

사야랑 술을 마셔본 사람은 알겠지만 백프로까진 장담 못하더라도 실수같은 걸 하지 않는다. 아니 자주 상대는 사야가 술취한 걸 모르게 행동하기도 한다.

술 자리에서 했던 이야기를 거의 대부분 기억하는 게 사야다.

그런데 사야가 세상에나 그런 전화를 기억못하다니.

물론 이게 처음은 아니다. 기억하지 못해 상대에게 날라가기만 말이 없는 건 아니었다만 그래도 상황상 본인이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그래서 이건 좀 충격적이다.

고기공놈이야 너무 충격받지 말라고 언니가 자각하고 있다는 게 중요한 거 아니냐던데 아니다.  

안치환의 노래가사처럼 이건 내가 알던 내가 아니다.

 

겨우 마흔 일곱 거기다 만으로 겨우 마흔다섯.

물론 공자님 말씀을 따지자면 겨우가 아닌 군자가 되어있어야 할 나이다만 군자는 커녕 제대로된 인간이 되기도 전에 의도가 아닌 실수로 그것도 본인이 모르는 실수로, 남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다는 건 사야에게 너무나 놀라운 일이다.

유감스럽게도 사야는 술김에 자기를 애첩인 지 술집인지로 데려간 애마를 베어버렸다는 김유신처럼 그렇다고 술을 안 마시는 일은 없을 테니 그게 더 문제다.

 

또 또 또 또, 그만할까? ㅎㅎ

우짜든둥 그래서 사야는 내일 담양에 간다

그제아침부터 미치도록 보고싶었던 내 새깽이들을 보러 말이다

여주에서 새깽이들이 있는 담양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해 가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 세상에 불가능이 어디있겠냐 미친듯 노력하면 한 여덟시간 정도 걸려 갈 수 있기는 하다

술취했던 덕이건 뭐건 친구놈이 사야를 새깽이들에게 데려다 준다니 일단은 그저 감사할 뿐.

 

어쨌든 사야에게 지금 위기는 진짜 위기인 것 같다..ㅎㅎ

그리고 이게 제목처럼 알콜성 치매인 것 같다는 게 훨 심각하다

사야가 한국으로 돌아오며 한 결심중에 하나가 접시물에 코를 박고 죽을 지언정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는 피해를 주지 않겠다, 였는데

(아 걱정마라 어느 정도의 피해는 인간관계에서 서로 감수하는 거니 그런 걸 말하는 건 아니니까.)

술을 끊을 생각이 없는 인간이 알콜성 치매에 걸린다면 좀 심각한 문제가 아닌가 싶다.

 

아 모든 문제를 혼자해결할 능력이 없는 인간인 사야는 갑자기 신랑이 너무 보고싶다

'나 알콜성 치매인 것 같아 술을 안 마실 수도 없는 데 이 상황을 어찌해야하지, 라고 말이다

물론 사야는 이제 이 말을 다음 주 정신과에 가서 하게 되겠지만 말이다..ㅎㅎ

 

예전에 사야가 외국을 떠돌 때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역시 혼자 지내다보니 주절히주절히 글이 잘도 올라간다

새로 이사온 아주머니가 남편에게 그러셨다네 자긴 절대 저렇게 사야처럼 이런 곳에서 혼자살 수는 없으니 당신 건강하라고..ㅎㅎ

여담인데 새로 이사오신 분들은 나를 '일호집 아주머니'라고 부른다

외국생활에선 당근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이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거의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이라 많이 낯설고 어색하지만 남들은 그거 말고 무슨 호칭이 있겠내고 또 묻네..ㅎㅎ

 

새대가리.

사진이 없는 불친절한 글을 길게도 올리면서 진짜 말도 많다만 요즘 새들때문에 미치겠다

먹이를 와서 먹고 가는 것 까진 감사하다만 툭하면 거실 창문에 부딪히는 데 미치고 팔짝 뛰겠다

부딪히는 소리에 사야도 놀래지만 저 작은 몸으로 저길 부딪히면 얼마나 아플까 안타깝기 그지없다

하긴 새들은 어쩐지 모르겠다만 인간들은 자신들에게 손해가 되는 걸 알면서도 같은 행동을 반복해대니 어쩌면

인간들이 새들보단 더 새대가리인 지도 모르겠다.

 

하긴 새대가리 선두를 달리는 인간이 사야인가?

정말 드럽게 똑똑하다고

너무나 합리적이라고

거기다 마음까지 너무 따뜻하다고 자부했던 사야는, 지금

하루하루를 참 힘들게도

연명해가고 있다.

 

 

 

근데 말했잖아

잘 할 수 있을거라 믿어 돌아온 게 아니라니까

너무나 힘들어서 돌아온거라니까

진짜 지금 미치도록 남편이 보고싶지만

그 남자를 버리고 온 걸 후회하진 않는다니까

그냥 간절히 그 남자의 그 말이 그 남자의 입을 통해 듣고 싶어

 

사야 너는 정말 괜찮은 인간이야

너의 가장 큰 장점은 가슴이 따뜻하다는거야

당연하지 우리 마누라는 절대 이유없이 무슨 행동을 하진 않아

 

아 이런 말이 다 무슨 소용이랴

그 남자도 그랬는데

'네가 한국으로 가버리면 널더러 누가 나처럼 술 좀 그만 마시라는 잔소리를 하겠냐구

네가 그렇게 술마시다가 죽어버릴까 미칠 것 같다구'

 

 

 

그래서다

누군가가 내게 엄마때문이라도 잘 살아야한다고 말하던데 아니다

엄마가 아니라 신랑때문에 잘 살아야한다

내가 어찌 왔는데

난 정말 그 남자가 살아있는 동안은 그 남자를 힘들게 하면 안된다

내가 이 생에서 해야 할 최소한의 예의다...

 

 

 

 

 

 

 

 

 

 

2013.01.10, 여주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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