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했듯이 월요일에 큰언니네 부부가 나타났다.
보면 볼 수록 신기한 조합의 부부다. 성격이 저리 다른데 어찌 여태 저리 잘 사는 지..ㅎㅎ
민들레님이 건강이 나빠져서 다이어트를 해야한다고 언니가 술을 단 한모금도 못 마시게해서 사야만 혼자 마시는 중이다.
물론 사야가 누구냐? 지난 번 손님도 감탄하고간 '예거마이스터'라는 독일독주를 약술이라고 한잔은 드시게 하는데 성공..ㅎㅎ
농담이 아니라 진짜다. 사야가 속이 안 좋은 것 같다고하면 시어머니가 한잔 따라주시던 술이다.
부부가 와서 우리집에서 함께 묵은 건 도쿄살 때이후 처음이니 참 오랫만이다.
음식이랑 거리가 먼 울 큰언니 반찬을 잔뜩 사서 나타난 덕에 밥만해서 대충 먹고 새벽까지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누군가 우리집에 반찬을 사오다니 수십가지의 반찬을 만들어놓고 살던 사야가 어쩌다 이리 된 건지..
우짜든둥 둘 다 저 난로를 어찌나 좋아하는 지 저리 껌딱지들이 되어 감탄에 감탄을 하더라. 물론 늘 뭔가를 해야하는 민들레님은 그 사이 사야의 서재를 다 훍고나서 책한권을 독파하기 시작했지만 말이다. 거기다 틈틈히 영어성경공부를 하시는 부지런까지..ㅎㅎ
다음 날 장작패는 민들레님.
사야네 집에오는 손님의 불문율(?)은 자는 사야를 절대 깨우면 안된다는 거다.
다들 아는 사실인데 처음오는 손님이 사야를 깨운 적이 있어서 다음 손님에겐 신신당부를 한 적도 있다.
뭐 그딴 법이 있냐구? 그거야 쥔장 마음이지...ㅎㅎ
저 부부도 먼저 일어나서 나뭇가지도 주어오고 새모이주고 하면서 배고픔을 견디고 있더라지. 언니는 그냥 대충 반찬으로 먹자고 했다는데 민들레님이 꼭 사야가 끓여주는 매생이 떡국을 드시겠다고 해서 점심때까지 기다렸단다..하하하
울 언니 저 장작패는 모습보고 '당신 정말 멋지다'고 어찌나 소녀같이 난리를 치던 지 웃겨죽는 줄 알았다. 돈도 내고 하는 체험학습이라며 귀한 경험이라나 뭐라나..^^;;
거기다 손해보고라도 집팔라고 난리던 사람이 막상 묵어보니 이 집 너무 좋다를 연발, 사야가 감나무 하나 심고 싶다니 감나무 심을 자리까지 봐주고 갔다..ㅎㅎ
멋쟁이 울 큰 형부, 오늘 일어나보니 이틀동안 평안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항상 사야를 지지한다는 문자가 와 있어 살짝 울컥..^^
호기심천국인 분이라 그 짧은 시간에 책읽고 피아노치고 자전거타고 나뭇가지 줏어오고 설거지하고 장작까지 패고 간 사람은 민들레님이 유일할거다..ㅎㅎ
역시 사가지고 나타난 저 유자차. 사야가 결혼전에 너무나 좋아해서 거의 달고 살던 게 유자차인데 외국에선 구하기가 힘들었던 관계로 이십년동안 먹어본 적이 없다.
떡이며 감이며 고구마며 예전에 아무리 좋아했어도 그리 오랜 시간 안먹었던 음식은 잘 손이 안가는데 이상하게 저 유자차는 아니더라
그 뿐 아니라 그 향긋함이 입안으로 퍼지는 순간 잃어버렸던 기억들마저 떠오르는 감동.
내 이십대는 처절하기만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향과 함께 상큼하고 행복했던 기억들도 마구 생각나더라는 거다.
그래 청춘은 아픔이기도 했지만 아름다움이기도 했던거구나....
그건그렇고 저리 떡하니 남의 집에 자기 수건을 걸어놓고 간 범인을 찾는다.
서울다녀오고 어쩌고 우리 집 수건이랑 너무 비슷해서 모르고 있다가 얼결에 얼굴을 닦는데 느낌이 다른거다. 그래서 자세히 살펴보니 우리집 물건이 아니더라는 것.
민들레님 부부가 오기전이니 용의선상에서 제외. 친구놈은 세수도 안하고 가는 놈이니 또 제외, 상해사는 동생놈도 가능성 별로 없슴, 같이 온 처자 약간 있슴.
고기공놈이 수건을 들고 오는 걸 본 적이 없으므로 제외할까했는데 야외캠핑카에서 우리집으로 직접 온 관계로 가능성 높음
사야를 깨웠던 분, 우리집에서 배고팠던 분 다 역시 가능성 높음.
괘씸죄가 적용되어 포도주를 들고 직접 찾으러와야하는 벌칙에 처함. 그러니 자수하여 광명찾읍시다..ㅎㅎㅎ
2013. 01.09. 여주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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