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이런 문학적(?)인 제목으로 글하나 쓰자
얼마전 옛 제자에게 이메일이 하나 왔었다.
나는 이제 내가 선생이었다는 것도 잊고 사는데 나를 선생님으로 기억하는 누군가로부터..
조만간 독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난다던데( 독일도 그런게 있다니 신기하다만) 아마 그래서 내가 생각났었나보다.
'반년의 만남 17년간의 기억' 그 놈 메일에 있던 글귀다.
당시 겨우 초등학교 사학년 육학년 담임도 아니고 중간에 그만두기까지 했는데..
생각이 났어도 놈의 저 표현처럼 그 긴 세월, 메일을 쓰기 쉽지않았을텐데 너무 신기하다.
어쨌든 그래 나는 내가 선생이었던 걸 잊었지만 어느 누군가에겐 아직도 기억속의 선생이구나하는 놀라운 느낌
그리고 내가 당시 학교를 그만둘땐 지금 그 놈들보다도 어린 나이였는데 하는 새삼스런 세월의 자각
가장 중요한 건 정말 잊고 있었는데 아니 잊고싶었는 지도 모르는데 가장 치열하고 힘들었던 내 삶의 한 자락
결혼하기 전 내가 서울 어느 구석 한 초등학교의 선생이었던 그 이년.
사람의 기억이란게 너무 신기하더라. 그 놈과 메일을 주고받고 한 몇 일동안 정말 어제 일을 보듯 아니 무슨 녹화한 테이프라도 보듯 내가 잊고 싶었던 당시 학교생활이 줄줄히 기억나더라.
이젠 한국에 돌아와서일까 만약 내가 그때 학교를 그만두지 않고 계속 학교에 남아 지금의 이 나이가 되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더라지.
그랬다면 지금처럼 이런 모습이 아닌 애 둘 쯤 키우며 아주 평범하고 무난하게 이 한국사회에서 미래걱정은 별로 안하며 소박하나마 자리매김하고 살고 있었을 지도.
엉뚱한 제자덕분에 생각해보니 그냥 오만잡일 다 겪고 여전히 불안한 지금의 내 위치가 나는 더 마음에 든다.
어차피 같은 시간안에 살았어야할 인생이라면 피터지게 힘들긴 했어도 아마 같은 선택을 했을 거란 생각.
나이 마흔 다섯이나되어 자식도 없고 벌이도 없는 마당에 하는 생각이라 어찌보면 더 다행이다.
그래 뭐 산다는 게 괜히 힘들고 어렵고 그런건 아닐테니까. 내가 나가 떠돌다 한국에 다시 돌아오기까지 나도 괜한 시간을 보낸건 아닐거란 믿음.
과거란 절대 없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저 각자의 그 느낌으로 기억하는 역사가 아닌 어떤 소설같은 간가보다.
내겐 그저 나름 똑똑하고 까불까불한 놈이기만 했는데 그 놈은 자기가 나를 무진장 힘들게 했다고 기억하고 있더라는 것.
우짜든둥
그래 조만간 예기된 '반년의 만남과 17년의 기억'후 다시 만나게 될 그 놈과 나의 해후는 어떨까? ㅎㅎ
여기에 또 오랫만에 글을 쓴다
뭐 그 전에도 제정신은 아니었다만 일본지진후 사야는 특히 더 제 정신이 아니다
지진에 살아남고 쓰나미에 살아남은 사람들이 이젠 무능력한 정부덕에 방사능공포까지 시달려야한다니 물론 내가 일본에 살았기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자꾸 감정이입을 하게되고 삶이 뭔지 돌아보게 된다
내가 지금 그 자리에 있는 피해자라면 과연 나는 어떤 어떤 반응을 하고 그 어려움을 어떤 방식으로 극복하게 될까.
산다는 건 늘 쉽지 않았지만 나이가 들어갈 수록 더 어렵고 막막하기만 하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삶은 막막한 것이라고 누군가 내게 말해줬다면 좀 나았을까.
조금 과장하자면 지금 내 삶에서 지진이나 쓰나미 방사능처럼 내 삶을 공포스럽게하는 것들은 뭘까.
멀지도 않은 저 옆나라에서 이 난리도 아닌데 그리고 그게 어찌보면 내 문제가 될 수도 있는 건데 우린 참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 건지
그래, 사야 또 오랫만에 나타나서 뜬구름잡는 이야기하고 간다.
아 물론 제자랑 만나게 되면 후기는 꼭 올릴거다..^^
2011.03. 27. 여주에서...사야
'4. 아늑한 모래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야의 아름다운 집..ㅎㅎ (0) | 2011.04.07 |
---|---|
묘한 죄책감 (0) | 2011.04.04 |
공포스러운 날들..ㅜㅜ (0) | 2011.03.14 |
옛 인연 그리고 새 인연 (0) | 2011.02.27 |
또 돌아왔습니다 내 새끼들 (0) | 2011.0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