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언니딸, 그러니까 조카가 지금 뮌스터에 있다.
육개월간 런던으로 교환학생이 되어갔는데 지금 삼박사일 시어머니를 만나고 암스테르담이랑 브뤼셀이랑 좀 여행을 할 모양이다.
내가 결혼할 때 그 애가 다섯 살, 결혼식때문에 한국에 나오셨던 시부모님이 삼주 간 작은 언니집에 머무셨으니 18년만에 조카랑 시어머님과의 상봉이다.
내가 독일에 오래살았더라면 당연히 와봤을 그 곳. 다시 뵐 거라 마음에 담아두고 살았기때문일까 조카는 시댁에 가니 눈물이 나올것 같았다더라.
일년 반전에 프랑스 디종에 같은 형식으로 교환학생을 갔던 큰언니 딸내미는 또 시누이가 한국에 여행와 삼주묵었던 곳이 큰언니네 집이었던 관계로 뮌헨에 사는 시누이를 방문했더랬다
한국식으로 따지면 불가능한 일이지만 다행히(?) 꼭 유럽인들이어서만은 아니고 우리가 그런 복잡한 가족사가 아닌 관계로 두 놈다 내 전 가족들과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데 감사한 마음.
문제는 시누이야 한다리 건너인데다가 뮌헨 시누이집은 나도 방문정도 했던 곳이라 시누이가 내 조카랑 같이 있다며 메시지를 보내도 그저 좋은 시간 보내는 듯해 뿌듯하기만 했는데(아니 나를 그리워하는 시누이가 안쓰럽지 않은 건 아니었다만..ㅜㅜ)
내가 제2의 고향이라 생각했고 수도 없이 드나들었던 아니 어쩌면 내가 물려받아 여생을 보냈을 지도 모를 뮌스터에 지금 한 놈이 가 있으니 기분이 참 묘하다.
내가 십오년을 넘게 들락거렸던 그 집, 가구가 바뀌거나 배치가 바뀌는 일도 거의 없을 집이니 어디에 뭐가 있는 지 아니 그릇하나도 어디 있는 지 지금도 다 그려낼 수 있는 그 집.
조카가 혼자도 아니고 런던에서 사귄 홍콩친구와 같이 갔으니 당연히 그 집에서 두 사람이 묵을 곳이라곤 내가 늘 사용했던 지하방(여기 사진도 참 여러번 올린 그 방)밖에 없으니까.
중요한 건 조카가 간다고 진작 시어머님께도 말씀드리고 둘다 영어를 하니 서로 알아서 하라며 별 걱정을 안하고 있었는데 얼마전 시어머님께 전화가 온거다
그 깔끔하고 남에게 폐를 끼치는 일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그런 사람, 예전 뒤셀도르프 우리집에 처음 방문할때도 겨우 십분 먼저 도착했다고 주위를 빙빙돌다 시간맞춰 벨을 눌렀다던 그 분이 한국시간 새벽 세시
역으로 픽업을 나가야하는데 오는 시간을 잊었노라고 어떻게해야 좋겠냐고 아주 당황한 목소리로, 도착할 날은 사오일도 더 넘게 남았는데 그렇게 그 시간에 전화를 해서 묻더라지.
그래 남의 시간 열시넘어서는 아주 특별한 일이 없으면 절대 전화를 하지 않던 그녀가 내 시간 새벽 세시에..
더 충격적인 건 막상 조카가 도착하니 내게 전화하라며 당신은 내 번호를 모른다고 하셨다나? 어떤 번호를 알려드려야하냐고 조카가 묻는데 멍하더라.
물론 다행스럽게도 조카는(아 조카는 새벽에 전화하고 어쩌고 한 일을 모른다) 시어머니가 아주 건강해보이신단다.
한국나이 올해로 팔순이니 어찌보면 크게 놀랄 일도 아니지만 왜이리 가슴이 서늘한 지 모르겠다
남편을 버렸다는 죄책감. 더불어 시어머니까지 버렸다는 죄책감.
엄밀히 따지면 남편을 버리려고 한 건 내가 먼저지만 남편이 한국에 따라오지 않았으니(그래 그 나이에 그걸 조건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겠다만) 우리는 어차피 피차 포기한건데, 거기다 남편은 새로 와이프도 맞이하고 잘 살고 있는데 나는 왜 아직 이 죄책감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 지 모르겠다
예전에도 쓴 적이 있는데 울 시어머니는 내가 아닌 다른 여자였더라도 당신 아들의 선택을 믿고 무조건 잘해주셨으리란 이야기, 지금도 시어머니는 아끼꼬에게( 남편 새부인이름이다..ㅎㅎ) 최선을 다하고 계시는 걸 아는데 또 왜 나는 아직도 시어머니를 내팽겨쳤다는 죄책감에서 못 벗어나는 걸까
어린왕자의 말처럼 내가 길들였던 것에대한 책임감일까
연애기간까지 따지면 십칠년이 넘는 세월, 그 긴 시간을 교감했던 우리의 그 시간때문일거다.
그녀보다 훨씬 어린 나도 한국에 돌아와보니 내가 잃어버린(?) 그동안의 한국사회때문에 힘이 드는데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그녀는 그 세월을 함께하고 뭐든지 들어주던 누군가를 잃은게 참으로 어이없고 힘이 들겠지
요즘 신개셩뎐이란 조금 황당하기도 한 드라마를 보는데 (원작은 두 말이 필요없는 소설이다 혹 안 읽어보신 분들 요즘 세일도 하니 꼭 읽어보시도록! 한국어의 아름다움에 감동하실거다) 거기 지금 같은 장면이 나온다
갑자기 영감은 죽고 아들내외가 이혼을 하게 되는 이야기
말하자면 꼭 같지는 않지만 울 시어머니에게 닥친 비슷한 상황
꼭 조카가 가있지 않아도 마음이 복잡했을텐데 마침 조카까지 거기 가있으니 복잡한 마음을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시어머니가 더 망가지시기전에 당장이라도 가봐야한단 강박관념도 들고, 또 먹고사는 문제도 해결안된 마당에 오바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 솔직히는 벌써 삼년 반이나 되었다만 얼마나 질렸는 지 아직도 비행기타는 것이 싫고 무섭다.
이렇게 치유가 힘든 일이었는데 도대체 어떻게 그 긴 세월을 그것도 그리 날이면 날마다 비행기를 타고 돌아다녔는 지 실소가 나올 지경.
우짜든둥 조카는 집에서 멀지도 않으니 아마 아버님 산소에 다녀왔을거다
생전에 한국에 꼭 한 번 다시 오시길 원하셨더랬는데, 그리고 내가 당신가족들을 잘 보살펴줄 거라 믿으셨던 게 내게 한 마지막 유언이셨는데 혹 지금 저리 당신이 평생 사랑했던 아내를 혼자 늙어가게 내버려둔다고 나를 원망하시진 않을 지
이리 모질게 떠나올거 였으면 차라리 잘해드리지나 말았을 걸
왜 나는 오지랖넓게도 자식들에게도 심지어 여동생들에게도 못하던 이야기를 들어주던 그런 친구같은 며느리였던 건지
이런게 정말 그 몹쓸 정이라는 걸까
그래 나는 남편과 이혼하지 않았더라도 언제 독일로 돌아갈 지 알 수 없었던 상황
그리고 독일로 돌아갔더라도 시어머니랑 같이 살 수도 없었을테고 설사 그녀가 치매에 걸렸다한들 결국 그녀를 요양원에밖에 모시지 못했겠지만
왜 자꾸 내가 큰 몫을 한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드는 건지 모르겠다
정말 내가 누구보다 그녀를 잘 아는데 그 누구엔 당신 아들이나 딸도 다 포함되는데..
일년에 한번은 꼭 혼자 찾아가 보냈던 이주일.
밤마다 술잔을 부딪히며 나누던 그 이야기들을 그녀는 지금 누구랑 하고 있는 건지.
아 정말 그녀를 생각하면 순 정말 진짜 참기름을 강조하는 것처럼 아주 많이 아프다.
2011.04.03. 여주에서..사야
그냥 심정상 거기다 술을 또 마셨으니까 이런 글을 쓰는거고
또 그렇게 걱정할만큼은 아닙니다
사야는 요즘 가장 고통스러운게 치통이고..ㅜㅜ
그러다보니 삶이 좀 고단하고..ㅜㅜ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란 모토아래 봄맞이는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드디어 땅에 꽃을 심기 시작했습니다.
좀 격한 표현으로 빵꾸뚫린 팬티는 입을 지언정 꽃을 포기할 순 없습니다..ㅎㅎ
원래 있던 소나무 밑에 패랭이도 심었구요 저 뒷쪽으론 노랑 빨강 칸나구근들도 심었습니다
아시잖아요
사야가 독일로 돌아가 정원에 꽃가꾸며 소박하게 사는 게 소원이었던거
소원 살풀이가 너무 과했나 장성에서 연양리에서 남의 땅에 병적으로 집착했던 거 이제야 뿌듯하게 내 땅에 해볼려구요
욕심에 땅이 조금만 넓었으면 했는데 다행히 오늘 다녀간 뒷산주인이 좋으셔서 울타리주변도 나름 가꿀 수 있을 거 같구요
첫 내 땅에 가꾸는 기분.
아마 이 봄이 제게 가장 찬란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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