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에 한국어는 아주 특이하다.
이 나라 저 나라 돌아다니면서 언어를 배우다보면 선생들이 제일 발음 못하는 이름이 한국이름이다. 그러니까 거꾸로 보자면 우리가 다른 나라 언어들을 잘 못한다는 말이 되겠다.(아 물론 일본인이 한국어 발음을 못하지만 한국인은 일본어 발음을 잘하는 그런 것도 있다만)
왜냐. 발음체계가 아주 다르니 말이다.
한국사람들은 일본사람들이 영어 못한다고 하지만 무슨 말씀, 내가 일본인이건 한국인이건 영어를 쓰는 자리에 있어봐서 아는데 잘하는 사람들 발음은 우리나라 사람들 보다 훨씬 좋다.
이게 내 나름대로 분석(?)을 해보니 한국인의 영어엔 각이 있고 일본인들의 영어는 훨씬 부드럽다.
우리가 끼리 듣기에는 너무 괜찮은 발음도 막상 외국인들은 못 알아먹을 때가 있는데 우리는 못 알아듣는 이상한 외국애들 발음을 차라리 더 잘 알아듣는 기현상(?)도 발생한다.
th나 f 발음처럼 우리나라에 아예 없는 발음이 사실 가장 어려울 것 같지만 내가 보기엔 i, y, w 이런 발음들이 훨씬 어렵다.
th나 f는 왠만큼해도 잘 알아듣는데(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아일랜드 사람들도 th 발음 못한다..ㅎㅎ) 저 발음들은 왠만큼 해도 잘 못 알아 듣는다는 것.
특히 i 발음 정말 어렵다. y는 또 어떻고. year, yeast 이런 발음들은 정말 날 잡아잡수 하고 싶다. 내가 넘 괴로와하니까 신랑이 나를 도와준답시고 한국말로 써줬는데 '이ㅣ' 란다 자기야 우리나라에 그런 발음 없거든? ㅎㅎ
더블린살 때 우리 집 주소가 Milltown road 에 Woodhaven 이었는데 택시라도 부르려면 머리에서 쥐났다. 그 놈의 미일타운 우드헤이븐 왜그렇게 안되던지 이사가고 싶었다니까..-_-
사실 아예 없는 발음보다 좀 비슷하게 느껴지는 발음이 더 어렵기도 하다. 그냥 우리 식으로 하면 되는 줄 알고 전혀 엉뚱하게 해버리니 말이다.
한국인들이 안되는 발음중에 see 같은 것들. 백이면 구십은 다 그냥 한국발음으로 씨라고 한다. 씨가 있긴 있지 그게 순이씨 어쩌고 하는 거랑 전혀 다른 발음이니 문제지.
하긴 그렇게 따지면 v 도 j도 r도 잘 안되긴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아 그럼 도대체 되는 발음이 뭐냔 말이냐..^^;;
예전에 더블린에서 함께 놀던 애들끼리 Carlsberg 맥주가 가장 맛있어서 그걸 마셨는데 한 여자애가 그 발음을 바텐더들이 절대 못 알아들어서 괴로와 죽을려고 한 적이 있다. '언니 맥주 종류를 바꿔야하나요 도대체 어쩌란 말이냐구요'하면서..ㅎㅎ
실제로 혀는 굉장히 어려서 굳어버리기때문에 독일에서 태어났어도 한국어를 쓰는 가정에서 자란 애들중에 독일어 발음이 좀 이상한 애들도 있다. 당근 한국어 발음도 좀 이상하고 말이다. 그게 또 언어 체계가 아주 다르다는 걸 알겠는게 독일어나 불어를 함께 쓰는 애들은 조금 다르다.
나같은 경우 다 늦게 독일에 간데다가 겨우 사년 좀 넘게 살았던 거에 비하면 그나마 독일어 발음이 괜찮은 편이긴 해도 당장 신랑의 성에 들어가는 S 발음같은 거 r 발음같은 거 W 등 여전히 무지 어려워 신경쓰고 말하지 않으면 그냥 습관적으로 한국식 발음을 하게 된다.
독일어의 r은 영어의 r이랑 또 무지 다른데 이게 사람죽이는 발음이다. 저 목청에서 굴러져 나와야해서 나도 애를 먹고 배웠다. 역시나 내가 좋아하는 roggenbrot (호밀빵) 이걸 살려면 저 발음을 잘해야하는데 이마에 땀난다..^^;;
지난 번에 왔던 친구의 남편이 빵집에 가서 Kornbrot 를 달라고 했는데 못 알아듣더라는 거다. 그래 아 r 발음때문에 그러나보다 싶어서 온 몸을 비비꽈가면서까지 (이건 그 남편이 하는 걸 봐야 진짜 웃긴데..ㅎㅎ) '코오온브로트'를 열심히 외쳤는데 결론은 도대체 무슨 콘빵이냐고 그 종류를 말해달라는 거였다나..ㅎㅎ
독일어로 Bein 과 Wein. 한국어로 하면 바인과 봐인 정도 되는데 이거 한국사람들 또 잘 못한다. 하나는 다리란 뜻이고 하나는 포도주란 뜻이라 울 신랑 맨날 한국애들은 왜 맨날 다리를 마신다고 하냐고 그냥 와인이라고 하는 게 낫겠다고..^^;;
우리가 듣기엔 그게 그거인거 같은 발음들, 비디오라던지 쥬스라던지 내 남자는 들으면 뒤로 넘어간다.
내 중국어 발음이야 워낙 나쁘기도 하지만 이것도 넘 신기했던게 맨날 티비보고 어쩌고 난리치며 오리지널 중국어를 많이 듣던 내 발음보다 신랑의 중국어 발음이 훨씬 좋았다는 것. 그러니까 역시 우리나라 발음이 특이한 거다.
우리가 알던 어느 독일 애는 중국어로 전화 통화를 하고 사람이랑 만나기로 했는데 그 사람이 외국인인줄 전혀 몰랐다나. (아 이것도 한국인 중에도 잘하는 사람이 물론 있다. 예외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그나마 일본어는 한국인이 발음하기 좋은 언어중 하나라 나같은 경우도 발음 좋다는 이야기 가끔 듣는 편인데 g와 k 발음 절대 구별 안된다. gin은 은이고 kin은 금인데 내가 보기엔 똑같이 들리니 어찌 제대로 발음을 하겠는가.
신기한 건 외국어의 경우 나이가 들어갈 수록 발음이 나빠진다는 슬픈 이야기.
내 남자의 경우 영어를 무지 잘했는데 요즘은 예전보다 발음이 더 나빠졌다. 이젠 딱 들으면 독일어식이란 게 확연하게 느껴질 정도.
고기공놈도 나름 어린 나이에 더블린에 왔던데다 햄버거 집에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그래서 영어 발음 진짜 좋았었는데 지난 번에 영어하는 걸 들으니 요즘 태국어를 하도 쓰고 살아서인가 표가 나도록 발음이 안 좋아졌더라는 것.( 아 예전과 비교라는 말이다 넘 기죽지 마라..ㅎㅎ)
언어를 한다는 건 남이 알아들어야하는 거니까 발음 당연히 중요하다.
이건 미국발음 영국발음 그런게 중요하단게 아니다. 세상에 영어를 쓰는 나라는 너무나 많고 그 발음들도 다 각양각색이다. 그러니까 각 나라의 발음 체계나 악센트에 너무 기죽을 필요는 없다.
예전 내 영어선생님왈, 영국에 갔더니 외국인이 자기보다 훨씬 정확한 브리티쉬 영어발음을 구사해서 기죽었다긴 했지만도..ㅎㅎ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혀가 다르니까 외국어를 쓰고 살려면 그 혀를 훈련하는 연습은 필요한데 단어를 외우는 것보다 발음교정을 하는 게 더 어렵다.
지난 번에 썼듯이 영어를 좀 멋지게 잘해보고 싶단 생각을 하며 다시 BBC뉴스도 더 성의있게 듣고 하다보니 새삼스레 발음이 걸려서 투정 좀 해봤다.
요즘 내 트레이너도 영어에 열을 올리고 있어서 운동은 안하고 맨날 영어 공부 어떻게 해야하나 뭐 그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도 있고..^^;;
정말 나같이 늘 외국어를 쓰고 살아야 하는 인간은 이 놈의 특이한 한국 혀 아주 부담스럽다.
이야기가 또 삼천포로 흐른다만 한국적 상황 한국인의 특질 한국어 뭐하나 특별하지 않은 게 없다니.
아 그렇다고 뭐 내가 내 영어나 독일어에서 한국적인 악센트를 지우고 싶다는 이야긴 아니다.
그냥 외국어 발음과 한국어 발음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멀리 있다는 그런 이야기다.
정말 그나마 잘하는 한국어야 여기 자판두드리는 데나 쓰는 인생이고(그래서 내가 요즘 더 열심히 자판을 두드린다 나도 잘하는 언어 하나 있단 의미로..ㅎㅎ) 영어나 독일어 중 하나 끝내주고 잘하는 언어가 하나 있으면 좋겠는데 그게 왜이렇게 어려운지.
영어에 필받은 김에 요 몇 일 영어공부 좀 해볼까 했더니 지난하고 지난하다.
지난 번에 고기공놈와 이리스 만났을 때 이리스가 내게 너는 독일어도 완벽한데 영어는 왜그렇게 잘하는 거냐고 했다니까 내 남자왈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고 둘 다 전혀 아니라고..
저렇게 상황파악이 정확하고 그걸 말로 옮기는 남자라서 내가 내 남자를 좋아하는 거다..ㅎㅎ
이번 달엔 이를 악물고(나는 늘 이만 악물어서 치과를 자주 가는 거다..-_-) 영어를 해볼 생각인데 발음이 어쩌고 저쩌고 간에 좀 늘을까나..
언어때문에 더이상 괴롭고 싶지는 않았는데 도대체 이것도 안되고 저 것도 안되는 내 인생을 어쩌면 좋단 말이냐.
내 앞으로의 인생에서 그게 영어건 독일어건 한국어만큼 편해지는 언어가 생기긴 할까 아니 그러기 위해선 도대체 얼마나 더 노력을 해야하는 건가.
2007.04.03. Tokyo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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