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흔적

뒤셀도르프, 그 도시에 다시 갔다

史野 2006. 12. 29. 15:32

뒤셀도르프는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주의 주도이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은 우리에게 루르공업지대로 유명한 곳이 있어 당시 독일에 갔던 한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 공업지대의 사무를 맡아본다는 의미에서 뒤셀도르프를 '루르공업지대의 책상'이란 별명으로도 부르고 프랑크프루트에 버금가는 금융업이 발달된 도시이기도 하다.

 

뒤셀도르프는 인구 육십만도 안되는데(그때 그랬지만 지금도 별 변한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국제도시의 면모를 갖추고 있는 대도시로 통한다.

 

인상적인 것이라면 일본회사가 많이 진출되어 있고 일본인이 많이 살아 '일본의 식민지'란 별명도 가지고 있을 정도. 그 덕에 동양인들은 모두 돈 많은 일본인으로 간주되어 대접이 좋은 곳이다.

 

가장 이쁜 별명이자 내 마음에 드는 별명은 '독일의 파리'라고 불린다는 건데 주변 섬유공업지대로 인한 패션의 중심이며 라인강이며 꽤나 낭만적인 도시이기도 하다.

 

하인리히 하이네가 태어났고 슈만이 살았던 적이 있으며 클레, 보이즈, 백남준등이 뒤셀도르프 미술대학에 근무했던 경력도 있다. 

 

뒤셀도르프에도 그렇지만 가까운 쾰른, 부퍼탈, 에센, 묀헨글라트바흐 등에 꽤 괜찮은 미술관들이 있어 나들이하기도 좋고 차로 두 세시간이면 암스테르담이나 브뤼셀등에 전시회를 보러 갈 수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내가 뒤셀도르프를 처음 갔던건 92년 여름.

쾰른관광을 한후 그 곳에 살고 있던 신랑친구들과 술을 마실 목적이었다. 그때는 그저 알트슈타트(옛도시지역)가 멋지고 갈색의 맥주가 맛있었고 도시를 지나는 전차가 신기하기만 했던 곳이었지 살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신랑이 졸업을 해서 역시 그 친구들과 같은 회사에 취직을 한후 회사에서 제공하는 아파트에서 잠시 머물며 일을 시작했을때인 93년 여름 다시 가서 한달정도 묵은게 두 번째 방문.

 

물론 이때야 이 도시에 살 생각으로 학교를 알아보고 신랑이 구해놓은 아파트를 함께 페인트칠을 하고 시어머님과 싱크대를 보러다니기도 하고 그랬더랬다.

 

방문이 아닌 아주 뒤셀도르프로 이주를 하게 된건 93년 10월 31일. 결혼식후 일주일만이다. 이미 신청을 해놓은 어학원은 이주전부터 시작한 상태였고 어쨌든 낯선 도시에서 낯선 생활을 시작했을때의 그 설레임과 막막함이란.

 

일년후 간신히 어학시험에 붙어 대학에 들어갔지만 도저히 강의를 알아들을 수 없던 날들

 

보통 유학생들은 공부만(?)하면 되었지만 나는 그 곳에서 생활이란 걸 해야 했는데다 가족이나 친구가 없는 것도 모자라 언어 풍습이 모두 다른 곳에서 새로운 가족 새로운 친구들과의 신혼은 또 얼마나 벅찼던지.

 

거기다 학교에서 필요한 독일어와 내 생활속에서 필요한 독일어가 달라 전공을 쫓아만가도 모자란 판에 소설책들을 읽으며 생활표현들까지 익히느라 진이 빠졌더랬다.

 

원래 독일에 갈때부터도 수면제를 달고 살았지만 아무리 털어넣어도 잠을 잘 수 없었던 시간들.

 

끊임없이 내가 한 선택이 바른 선택이었는지 묻고 또 묻고.

 

전공을 바꿨으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했던 지라 학위를 딸 수 있을까도 걱정이었지만 과연 학위를 따더라도 외국인인 내가 독일사회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을 수 있을까 불안하기만 하던 날들.

 

결국은 병원신세를 지고 퇴원한 후엔 몇 달을 짐승처럼 누워 먹기만 하며 꼼짝도 안하고 그 좋아하는 술한모금조차 안 마시며 삶을 갉아먹던 기억.

 

이대로 가만히 있다간 까미유 클로델처럼 평생을 정신병원에 갇혀 보내야할 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벌떡 일어나 날이면 날마다 전차를 타고 라인강으로 산책을 나가 정말 미친년처럼 정신없이 한바퀴를 돌고 돌아오곤 했더랬다

 

그 사이 이십킬로도 넘게 불어버려 주체가 안되는 몸을 끌고 다시 강의를 들으러 가고 이를 악물고 일주일짜리 이주일짜리 현장세미나에 참석을 하고.

 

담배는 그때 시작을 했다. 담배때문에 이겨낸건 물론 아니지만 그때 담배가 내게 큰 위로가 되었던 건 사실이다. 내가 담배를 끊을 생각이 없는 건 어려울때 지켜준 친구를 버리면 안된다는 의리..^^

 

어쨌든 그 날 2006년 12월 20일 수요일.

 

뒤셀도르프를 처음 간게 아니었는데도 신랑하고 갔기 때문이었는지 그 도시로 차가 미끌어져 들어가는 순간부터 갑자기 파노라마처럼 이 모든 일들이 두서없이 다 떠오르더라는 것.

 

정말 힘들었더랬는데 추억이 되어버려서일까. 애뜻하고 가슴이 촉촉해지는게 만으로 서른도 되지 않았던 젊은 사야가 그 도시를 구석구석 누비고 다니던 그 모습이 꼭 어제일처럼 잡혀질듯 했다.

 

 

신랑이 전화회의를 하는 동안 내가 맥주를 마시던 곳. 뒤셀도르프에는 이런 형식의 카페가 많다.

 

 

가장 멋진 혹은 비싼 거리인 쾨닉스알레의 모습

 

 

신랑이야 출장으로 나보다 훨씬 자주 드나들었지만 그래도 기념촬영..^^

 

 

시청앞의 크리스마스 시장. 저 시청건물을 시어머님친구분의 아버님이 지으셨다던데..

 

 

알트슈타트의 아이뤼시팝. 내가 살땐 없었다만 괜히 반갑다. 저 앞의 탁자들에서 서서들 술을 마시는데 처음엔 그 모습이 어찌나 낯설고 또 불편하던지..^^;;

 

 

여러가지 이유로 참 자주도 드나들던 곳.

 

 

그리고 하인리히하이네 알레에서 친구를 기다리며..저 맥도날드가 말하자면 예전 우리나라 종로서적처럼 만남의 장소다.

 

 

뒤셀도르프까지 왔는데 마쿠스를 안 만나고 갈 수가 있나. 마쿠스의 트레이드마크는 저 나비넥타이다..ㅎㅎ 점심약속이 있었다는데도 전화받고 곧 달려와준 고마운 친구. 이렇게 기분날때 전화하면 만날 수 있는 누구라도 한 사람이 있는 그런 도시에 살고 싶다고. 이렇게 살고 싶었다고 괜히 신랑에게 투정도 하고..

 

이 식당은 우리부부가 뻔질나게 드나들던 레스토랑 신라. 주인이 바뀌었나 했는데 딸이라고 하더라. 문제라면 당시는 나름 정통한국음식을 팔았는데 그렇게 장사가 안되었는지 거의 중국식으로 바뀌었다는 것. 신랑이 먹은 돌솥비빔밥빼고는 빵점이었다.

 

 

카라밧지오전시회가 열리는 줄 알고 갔던 곳. 저 왼쪽 골목에 내가 드나들던 미술관련 서적 전문점이 있다.

 

 

길건너에 있던 미술관에서 베이컨 전시회를 보고 카라밧지오 전시회장을 찾아 가던 길에 있던 슬라이드로 장식된 벽.

 

 

인적을 찾아보기 힘들던 호프가르텐

 

 

카라밧지오 전시가 열리던 쿤스트무제움. 저 가운데 건물안에서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과친구와 오래도록 수다를 떨었더랬는데

 

 

쿤스트아카데미. 저 넓은 창안에서 열심히 작업하는 사람들이 보여 괜히 가슴엔 찬바람이 일고..

 

 

다시 알트슈타트로 걸어와 글뤼봐인을 마셨다.

 

 

그 바로 앞이 우리가 시내에서 친구들과 만나곤 집에 가려고 덜덜 떨며 전차를 기다리던 정거장. 5분후에 도착하는 엘러행 715번이 우리집(?)에 가는 전차다.

 

 

저 뒷 건물에서도 독일어를 배우고 영상실에서 영화를 본다고 참 열심히 드나들었더랬는데 정말 걸어다니다보니 어느 곳 하나 정답지 않은 곳이 없다.

 

 

 글뤼봐인만 마시고 물러날 신랑이 아니다. 아줌마 소세지주세요..ㅎㅎ

 

 

더 머물고 싶었지만 갈 길이 먼 관계로(뮌스터랑 뒤셀도르프는 서울과 청주정도의 거리다) 흔들거리며 다시 주차장으로 걸어가는 길.

 

요즘 자꾸 독일이 낯설어진다고 생각했더랬는데 뒤셀도르프에 가보니 아니었다 

 

뮌스터는 그렇게 드나들어도 내게 뒤셀도르프만큼의 감정을 불러오진 못한다. 그 곳은 내 도시가 아니었으니까.

 

처음엔 딱 일년예정으로 학교등록까지 해놓고 떠났으나 이젠 총 11년후에 돌아갈지도 확신할 수 없는 도시 뒤셀도르프.

 

내가 살았던 어느 도시인들 내게 의미없는 곳이 있으랴만 그래도 내가 두 번째 고향이라 생각하고 더 정을 붙이며 헤매고 다니던 도시.

 

내 공부에의 꿈이 아직도 그 곳에 걸려 있어 만만찮은 강도로 할켜대며, 마흔의 사야가 구년동안 얻은 건 무엇이며 잃은 건 무엇인지를 묻는 도시.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를 묻는 도시.

 

 

그 도시에 다녀왔다.

 

 

 

 

 

2006.12.29. Tokyo에서 사야

 

 

20854

 

 

 

하인리히 하이네의 시에 슈만이 곡을 붙인 '시인의 사랑' 중에서 몇 곡 골랐습니다. 다음에는 최현수(저는 누군지도 모릅니다만) 노래밖에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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