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산토리홀 사이트에 들어가는 건 아니지만 우연히 보게 되었고 이 유명한 남자의 음악회에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다.
문제는 혹 친구가 올지도 모른다고 해서 그녀가 오면 같이 갈려고 날짜가 맞나 기다리는데 친구는 연락도 없고 기다리다 에고 표가 없겠다싶었지만 그래도 하는 마음으로 갔더니 왠일이니? 표가 있는거다..그러니까 나는 이 남자 음악회를 꼭 갈 운명이었어..ㅎㅎ
아 혹 모르시는 분을 위해서 말씀을 드리자면 쇼팽콩쿠르에서 이 남자가 우승을 못했다고 심사위원이었던 아르헤리치가 열받아 가버렸다는 에피소드로 일단 유명한 남자다.
내가 무슨 클래식매니아도 아니고 음악성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그저 음악회를 즐기는 수준이긴 하지만 이 남자는 워낙 악보를 맘대로 치기로 유명한지라 평소와 달리 어제는 한 곡을 골라 몇 번을 듣고 갔다. 혹 얼마나 다르게 치나 알아들을 수 있을까하는 마음에..^^
음악회라고 말은 했지만 신랑은 전화도 안하고 연락도 안되고 평소처럼 음악회장 앞에서 기다리는데 7시가 다되어도 안나타난다. 약속은 칼같이 지키는 남자인지라 거의 포기상태로 혼자라도 들어가야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죽어라 달려오는 내 남자. 보스랑 비디오회의를 했다나 어쨌다나. 그 긴다리로 걸어도 이십분은 걸릴 길을 8분만에 뛰어 왔다는데 양복까지 다 젖었다..ㅜㅜ
어쨌든 왔으니 다행이다.
드디어 포고렐리치가 나오는데 악보 넘겨주는 사람까지 데리고 나온다. 이런 유명한 사람들 독주회에서 악보넘겨주는 사람데리고 나오는 거 처음 본다.
어쨌든 기인이다 미쳤다 천재다 뭐 이런 저런 말이 하도 많아 궁금했는데 보기엔 멀쩡하고 인사하는 것도 아주 신사적이다...ㅎㅎ
베토벤소나타 32번을 치는데 (이게 내가 여러 번 듣고 간 곡이다) 도저히 그 오후에 내가 들은 음악인지 거의 기억할 수 없을 정도. 어찌나 늘려치는지 숨이 다 막힐뻔했다. 음악이 끝나자 울 신랑 저게 도대체 누구 곡이냐? 말해줬더니 아 베토벤이라곤 상상도 못했어..ㅎㅎㅎ
우리같이 문외한들이 있을 거란 걸 알아서였는지 갑자기 엘리제를 위하여를 연주한다. 그 곡이 울신랑이 유일하게 외워치는 곡이다. 나는 뭐 그런대로 괜찮았는데 신랑은 마음에 안들었다나..^^
만약 내가 이렇게 치는 걸 씨디나 라디오에서 들었다면 그냥 돌려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무대를 아니 그에게 집중했던 이유는 그가 피아노를 치는 모습이 너무나 진지했기 때문이다.
자기맘대로 치는데 치는 모습은 꼭 악보를 하나라도 틀릴까봐 얼어있는 콩쿠르 참가자같은 모습으로 치니 어찌 신기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쉬는 시간에 신랑이랑 술한잔 하며 그런 의견들을 나누다 담배도 못 피고 서둘러 들어왔는데 이번엔 안나온다..ㅎㅎ 이야기했듯이 아쉬케나쥐가 피아노치다 벌떡 일어나서 나가버린 경험을 했던 우리는 포고렐리치도 혹 그냥 집에 간다는 거 아니냐는 농담이나 하고..^^
십분이나 우리를 그냥 앉혀놓고 나타난 이 남자 아무일 없었단 듯이 편하게 인사하고 다시 피아노연주 그라나도스의 스페인무곡중 몇 곡이었는데 멜로디가 하도 익숙해서 그런지 듣기는 편하다. 물론 마디마다 여전히 맘대로 쉬더라만..^^
리스트의 초절정 기교 연습곡은 엉덩이가 들썩거릴 정도로 하도 열정적으로 쳐대서 저런 걸 보고 신들렸다고 하는 거 아닐까하는 생각까지 들더라. 나는 멍했는데 부라보를 외쳐대는 사람이 몇 있었다.
그냥 그렇게 음악회가 끝났으면 좋았으련만 앵콜곡으로 무슨 곡인지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는 긴 곡을 또 느리게 느리게 쳐서 저 곡 언제 끝나나 하는 생각까지..ㅎㅎ
물론 전반적인 연주는 극적인 반전이 많은 연주였다.
보통은 연주자가 더 이상 앵콜곡을 안 친다고 할 경우에 홀에서 알아서 불을 켜주는데 이 남자는 피아노 건반뚜껑을 넘어 그랜드 피아노 날개까지 직접 닫고 들어갔다.하하하
그래도 우리가 예의상(?) 또 열심히 박수를 쳤더니 그 땐 나와서 피아노 의자를 정리하고 들어가고..-_-
곡들도 끌다 쉬다했고 쉬는 시간도 안나와서 커튼 콜 시간이 짧았음에도 음악회는 더 늦게 끝났는데 신기한건 그때까지 일어나서 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
내가 일본에서 음악회가며 짜증나는 것중에 하나가 집들이 멀어서인가 9시쯤 되면 일어서는 사람들이 꼭 있다. 그런데 어제는 볼로도스보다 훨 비쌌는데도 홀도 꽉차고 내가 볼 수 있는 범위에서는 일어서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
나와보니 그의 씨디를 파는데 한 장 사고 싶었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포기.
신랑이랑 걸어오면서 말만 많이 들었는데 직접 연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니 좋은 경험이었다고 이야기했는데 그가 또 온다면 다시 갈 것 같지는 않다..ㅎㅎ
어쨌든 이런 특이한 음악회를 다녀오면 음악도 열심히 공부하고 싶다는 열정만 생긴다는 것..-_-
2007.01.13 Tokyo에서...사야
포고렐리치 음악을 찾아봤는데 다음에는 없습니다. 제가 요즘 음악은 다른 곳에서 링크거는 걸 전혀 안하는지라 다음에 있는 것중 리히터것 베토벤 소나타 32 op.111 중 일악장입니다
야후에서 사진을 검색해보니 이 모습이 어제와 가장 흡사한 이미지..^^
'떠도는 흔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난 독일여행의 기내음식 그리고.. (0) | 2007.01.23 |
---|---|
서울로의 여행? (0) | 2007.01.22 |
몇 가지 자잘한 일들 (0) | 2007.01.08 |
뒤셀도르프, 그 도시에 다시 갔다 (0) | 2006.12.29 |
개판치고 왔습니다..ㅎㅎ (0) | 2006.1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