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다녀왔다.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고향이랄 수 있는 곳
만 두살정도부터 결혼하기 전까지 살았으니 서울은 내게 고향이 맞다. 그 고향을 다녀오며 여행이라고 말하기엔 조금 복잡한 마음을 숨길 수는 없다만 그냥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하자.
인터넷에서 여러 조건을 고려해 고른 숙소는 최고였다. 너무나 마음에 들어 당장 그 곳을 우리집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을 정도.
그 곳에서 손님도 맞았고 커피를 내리곤 도시를 내려다보며 라디오를 보자마자 당장 떠오른 방송 93.1 MHz 를 들었다.
티비 한 번 켜지 않고 인터넷접속도 하지 않은 그 곳에서의 아침시간은 편안했다.
어느 구석 익숙하지 않은 곳이 없는 도시. 그 도시를 걸으며, 혹은 이 끝에서 저 끝으로 택시를 타고 다니며 예전의 내가 얼마나 발발이였는지를 새삼 확인하며 웃었다.
겨우 이십사년이지만 여섯살때부터 이태원에서 미아리까지 혼자 버스를 타고 다녔던 걸 생각하면 그 도시가 너무나 익숙한건 당연한 거겠지만 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미아리에 사시는, 내게 부모만큼 소중하신 외삼촌은 다리를 다치쳐서 병원에 누워계셨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사랑이 가득담긴 눈빛을 가지고 계셨다. 그리고 옆에는 사십년가까이 늘 한결같이 환히 웃으시며 나를 반가와해주시는 외숙모. 결코 쉽지 않은 삶이셨는데 그 웃음은 바래지도 않는다.
돌아오는 길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 외숙모야 말로 내가 아는 사람중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아닐까 하는..(물론 그녀는 외모도 출중하다..^^)
집과 술집만을 왕복하던 이전 방문과 달리 이번엔 시내에 묵으며 그 서울을 사진기에 담으려던 야심찬 계획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신랑의 강요(?)에 의해 예약한 병원에서 나는 양쪽 가슴 모두에 혹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고 결국 수술도 받았다. 강북에서 강남까지 그 먼길을 삼일이나 왔다갔다 하다가 또 매봉터널이 익숙한데 놀랬다. 압구정동이나 서초동도 아니고 왜 나는 이 구석의 이 장소가 익숙한걸까.
그 근처엔 내가 일주일에 두 번이나 정신과상담을 받았던 영동세브란스병원이 있더라는 것. 기억이란 참 믿을게 못되는게 어떤 박사님께 얼마나 자주 갔었는지까진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 병원에 대해선 까맣게 잊고 있었다.
도저히 수면제로도 잠을 이룰 수 없자 그 분은 주사로 잠을 재워줄테니 그 병원에서 출퇴근을 하라는 황당한 제안을 하셨더랬는데..
그 병원옆엔 친한 친구가 근무하던 피아노학원이 있었는데 그 학원은 여전히 같은 이름으로 그 자리에 있더라. 남자친구랑 찾아가기도 했었는데 역시 잊고 있던 기억.
서울은 십년이 넘는 동안 참 많이 변했지만 또 변하지 않았다.
그래 그 도시에 다녀왔다. 엄마가 가족이 그리고 친구들이 있는 도시니 여행이라 부르기엔 무리가 있으나 그래도 여행일 수 밖에 없는 외부자의 시선으로..
청계천을 따라 혼자 한참을 걸으며 난 더이상 이 도시에 속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건 서러움도 해방감도 아닌 그저 편안하고 무난한 감정이었다.
엄마이야기는 짧게 하기로 하자. 잠옷이랑 칫솔이랑 심지어 재떨이까지 찾아놓았는데 어디를 가서 잔다는거냐고 하는 엄마를 보며 나같은 인간이 가슴이 아프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겨우 두 번을 만나면서도 불편하고 힘들었다는 것만 적자
병원에 다닌 덕에 언니들을 평소보다 더 자주 만났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진 않았지만 내 속은 충분히 풀어놓고 왔다.
전혀 쓸데없는 이야기들로 웃기도 하면서 한달에 두 번 정도만이라도 이렇게 누군가를 만날 수 있는 삶이라면 참 좋겠단, 새삼 떠도는 이의 외로움을 확인받긴 했지만 말이다.
가슴수술은 내가 나름 내 신체부분중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보니 조금 놀랐다. 아니 더 정확히는 이제 그런 수술을 받는 나이에 접어든 건가 하는 생각에 더 놀랐다. 아직 조직검사결과는 나오지 않았으니 확신할 수는 없지만 나쁜 건 아니라던데 혹 사십초반에 가슴을 절단해내야하는 일이라도 생긴다면 참 견디기 힘든 일이겠단 생각도 했고 말이다.
한의사도 만났는데 내가 정신적으로 너무 많은 힘을 소진해서 육체가 약한 케이스란다. 나름 체력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오빠 표현대로 어쩌면 깡으로 버텨내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이번엔 전반적으로 편하고 좋았다. 심지어는 서울에 가면 늘 얼굴을 보던 조카놈들이랑 올케언니를 만나러 꽃단장을 하고 설레는 기분으로 레스토랑을 찾아가던 그 낯섬도 좋았다.
내 삶에서 어떤 전기를 마련한 기분.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과 더불어 변해갈 여지가 생겼다는 희망이랄까. 만났던 한 놈은 누나도 나이가 들어가니 감정적으로 변하는 구나 하더만 그 감정이 여지껏 내가 억압했던 것들이라면 분출하며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다.
이렇게 2007년 1월 서울에 잘 다녀왔고 다시 집이다.
2007.01.22. Tokyo에서 사야
사진을 전혀 찍지 않았는 줄 알았는데 사진기에 담겨있던 몇 장이다. 술마시고 이차로 우리집(?)에 두 번이나 왔던 그녀와 그놈이다..^^ 저런 삭막한 술파티라니..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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