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흔적

떠돌이 인생의 요즘 근황

史野 2006. 9. 1. 08:49

여행은 끝나고 다시 일상이 시작되었다. 아니 신랑이 또 출장 다녀오고 어쩌고 회사는 뒤집어 질 상황이 생기고 어쩌고 아버님은 아프시고 나는 나대로 제 정신이 아니고..그냥 일상이라고 하기엔 좀 벅찬 상황이다만 어쨌든 그래도 날은 가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인데 계약기간을 겨우 두 달 남겨놓았는데도 아직 결정된 건 아무것도 없다.

 

우선 몇 달전부터 이야기가 나왔던 프랑크푸르트에 생긴 자리는 우리가 거절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고 지금 신랑이 관심을 보이는 건 상해에 일자리를 찾는 것. 이것도 그 쪽에서 원하는 건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인지라 어찌 될지 모르겠다. 또 하나의 가능성이자 가장 높은 가능성은 이 곳에서 이 년을 연장하는 것.

 

그리고 그게 제일 가능성이 많다.

 

몇일 전에 신랑이랑 심각하게 이야기를 했는데 만약 이년을 연장하게 되면 이사를 하고 싶다. 정말 스쳐가는 기분으로 얻은 이 아파트에서 5년이나 산다는 건 생각만으로 끔찍하다. 물론 이사를 한다는 건 더 끔찍하긴 하지만..

 

거기다 결혼생활도 이제 곧 만으로 13년이 되다보니 집에 있는 가구들도 다 낡을데로 낡아서 과장하자면 무슨 쓰레기장에서 사는 거 같다. 작년인가 우리 엄마에게 무슨 말을 하다가 가구들도 바꿔야하고 어쩌고 그러니까 당장 돌아오는 말이 떠도는데 그냥 살지 였다. 그런 말들을 때마다 진짜 열받는데 맨날 떠도는 삶인데 그럼 맨날 그렇게 살아야하나.

 

무슨 목적을 가지고 유학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고 벌써 나이가 마흔인데 나도 좀 사람답게 살고 싶다.

 

그리고 또 문제가 되는 것 일본어다. 만약 이년을 연장하면 일본어를 배워야할 거 같다. 총 오년이나 동경에 살았으면서 일본어를 못한다는 것도 내 인생의 가치관에 이백프로 위배되는 것이므로 이것도 무진장 답답한 일.

 

물론 지난 번에 언급했듯이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건 독일어고 이를 악물고 해도 나아질까 말까인 상황인데 이것도 한 부담이다. 어쨌든 다른 건 다 양보해도 이번만은 독일어를 양보할 수는 없다는 결심이 그나마 위로랄까.

 

거기다 시아버님이 무진장 아프셨다. 여행다녀오자 마자 그래서 또 한참 신경쓰고 당장 독일로 날아갈 생각까지 했더랬는데 어머님 말씀이 지금은 괜찮다고 진짜 도움이 필요하면 말씀하시겠다니 말하자면 이 것도 대기중이다.

 

그리고 내 이 곳 삶을 생각해보니 정말 너무나 인간관계가 없이 살고 있다. 그나마 가끔 만나던 불독커플까지 떠나버리니 보고 사는 거라곤 신랑이 전부. 아 물론 운동가면 트레이너도 본다만..

 

그렇다고 내 인생이 불행하다거나 심심하다거나 그런 건 절대 아닌데 나같이 사람좋아하고 잘 웃는 애가 혼자 앉아 웃을 수는 없으니 얼굴이 굳어가는 건 아닌가 하는 역시 심각한 상황. 신랑은 여행다녀온 이후론 얼굴 보기도 힘들게 바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23층 애는 만나고 싶지 않으니 참 이 놈의 승질은 변하지도 않는다.

 

어쨌든 독일어를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것도 앞으로 무진장 힘들고 짜증스럽고 그럴텐데 뭔가 활력을 주는 일을 찾아야한다.

 

그림을 다시 그리거나 사진을 찍으러 다니거나 뭔가 기분이 좋아질 건덕지를 찾아야한다는 이야기. 영화라도 좀 보러다니고 이러면 좋은데 볼 수 있는 영화가 영어권 영화밖에 없으니 이것도 한심한 상황.

 

술은 전보다 훨씬 덜 마시긴 하지만 담배는 전보다 훨씬 늘었으니 이 것도 좀 걱정이고 말이다.

 

한국인터넷이 이런 내 삶에 많은 도움이 되긴 하지만 온라인에서만 살 수는 없는 일이니 이것도 좀 조절을 해야할 것 같고 또 무엇보다 실생활에 별 도움이 안되는 한국어를 너무 쓰고 산다는 것도 위기의식중 하나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어쨌든 9월을 맞았고 지금으로선 독일어에 올인하고 있는 상황. 물론 전만큼 열심히 하는 건 아니지만 운동도 다시 시작했다.

 

이렇게 막막하기만 한 근황보고 끝

 

그래도 삶은 계속 된다...

 

 

 

 

 

 

2006.09.01 Tokyo에서 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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