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흔적

잔치는 끝났지만.

史野 2006. 6. 25. 11:58

 

 

 

신랑도 그렇게 믿었고 나도 이상하게 스위스를 꼭 이길거란 믿음이 있었는데 16강 진출이 좌절되었다.

 

그래도 우리선수들 너무 잘 싸웠다. 물론 2002년만 생각하면 다른 의견도 가능하겠지만 그전 우리나라 축구를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정말 우리나라 축구가 장족의 발전을 했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을거다.

 

예전에는 정말 어떻게 일승만이라도를 외치며 다른 나라에 질질 끌려다니는 모습을 무슨 종교의식이라도 되는 듯 간절하고 절실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더랬는데 이번엔 승리도 승리였지만 보는 내내 그렇게 마음 졸이지 않아도 되는 좋은 플레이. 그리고 선수들의 멋진 골.

 

 

 

내가 보기엔 일승도 올리지 못했지만 일본도 참 잘했다. 이제 아시아축구도 조금씩 어떤 수준에 다가간다는 느낌. 일본대 브라질전을 보진 못했지만 내 트레이너는 안타깝긴 해도 좋은 시합이었다고 얘기했다.

 

어쩌겠냐 우리가 못하는게 아니라 유럽이나 남미애들이 너무 잘하는 걸..

 

이번엔 어떻게 하루에 하나씩은 축구게임을 보았다. 그러다보니 생활리듬이 엉망이 되긴 했지만 어쨌든 새삼 축구의 매력에 눈을 떴다고 할까.

 

야구를 좋아하던 나는 축구는 90내내 이리 저리 뛰어다니기만 하다 골도 하나 안 들어가는 한심한 운동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보다보니 그 넘치는 생명력과 원시성에 새삼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어느 독일철학자가 축구는 멀고도 먼 옛날 사냥을 하던 그 인자가 여태 인간의 유전자속에 살아있다는 행위라는 말을 했는데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내 눈엔 너무 넓어보이는 운동장을 볼하나는 놓고 죽어라 뛰는 선수들을 보면서 축구야말로 가장 원시적이고 자연에 가까운 스포츠가 아닐까 하는..

 

 

 

내가 응원하던 한국과 일본이 실패했고 하나 남은 게 독일인데 독일이 잘하니 제발 우승까지 갔으면 좋겠다. 아 물론 황당한 시간대때문에 잘한다고 해도 볼 일이 난감하지만 말이다.

 

프랑스전도 못 본 나는 어제는 꼭 깨워달라고 했는데 막상 네 시에 신랑이 깨우니 도저히 일어나질 못하겠는 거다. 그냥 계속 자겠다고 했더니 자긴 한국응원한다며 벌떡 일어나 나가는 신랑. 어쩌겠냐 신랑이 저러는데 내가 빠지면 안되지..

 

스포츠는 스포츠일뿐이라고 생각하는 나지만 막상 한국이 지니까 눈물이 날 것 같았고 신랑은 이번 월드컵은 이변이 없더니만 한국대신 스위스가 16강에 진출한게 이변이라고 하더라.

한국이 지니까 울 신랑. 저건 다 유니폼때문이라고 왜 붉은 악마가 지원하는 한국팀이 하얀색을 입었냐고 유니폼 탓을 하는 엉뚱한 주장을 내놓기 까지..ㅎㅎ

 

물론 내가 보기엔 오심어쩌고를 떠나서도 전반적으로 스위스가 더 잘했다. Frei는 정말 이름그래도 자유롭게 날라 다니더라.

 

 

 

 

그렇게 네시부터 축구로 시작한 하루는 다음 날 새벽 두시에 축구로 마감되었고 나야 중간에 조금씩이라도 잤지만 신랑은 22시간을 깨어있는 기염을 토했다.

 

무엇보다 월드컵이 독일에서 열리고 있는데 독일이 잘해서 너무 다행이다. 스웨덴전을 보면서 신랑에게 우승하면 좋겠지만 최소한 어떤 게임에서 지더라도 못해서 졌다는 이야기는 안 나올거고 최선을 다하고도 졌으면 그걸로 되는 거 아니냐는 말을 했다.

 

독일은 축구가 무진장 중요한 나라. 지금은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독일살때 조기축구회원만 오백만이라고 했었다. 그러고보니 스웨덴은 인구가 독일의 십분의 일밖에 안되는데 어떻게 그렇게 축구를 잘하는지..

 

2002년에 중국인구를 생각해보라고 중국이 한국보다 축구를 못하는건 정말 창피한 일이라고 열을 내던 어떤 중국인 선생님이 떠오른다.

 

중요한 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축구를 좋아하고 하느냐지 실제로 인구가 얼마냐인가는 아니겠지만 아예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닌거 같다.

 

어쨌든 너무 열심히 싸워준 우리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다음 월드컵에선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음 월드컵에선 차두리도 뛸 수 있기를...^^

 

 

 

 

 

2006.06.25 Tokyo에서 사야

 

 

 

 

 

요즘 동경은 수국이 한창이다

 

7주 가까이 해를 보기가 힘든데.

 

그래도 꽃은 피고 또 지고 새 꽃이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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