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흔적

비행기와 내 딜레마

史野 2006. 2. 2. 10:33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알프스산맥)

 

 

 

비행기만큼 계급과 자본의 현장을 확인할만한 게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세상엔 물론 개인비행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비행기를 탈 재력이 되는 사람과 아닌 사람들도 있지만 오늘은 일반 비행기를 타는 사람만 가지고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아시다시피 비행기에는 클래스가 셋이고 그 가격차이는 어마어마하다. 사실 세상사람들이 돈이 얼마나 많은지 적은지 뭐 그런걸 실생활에서 느낄 기회는 별로 없지 않은가.

 

레스토랑이나 가게나 뭐 이런 것들은 나름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이 드나들고 말이다. 그런데 비행기는 그 자그마한 공간안에서 다 이루어진다. 일단 표를 구입하면 그 계급안에서는 아주 평등하다. 이코노미석에서건 비지니스석에서건 주는 밥 주는 술 다 똑같이 먹고 마셔야하니까.

 

어쨌든 장시간 여행을 할 경우 이 이코노미석은 정말 살인적인데 몸을 움직이기도 힘들고 밥먹기도 힘들고 잠자기는 더 힘들고 내릴때 되면 퉁퉁 부은 발에는 신발도 잘 안들어간다. 옆에 좀 냄새나는 사람이라도 앉으면 열시간 넘게 그 고통은 말할 수가 없다. 실제로 난 그런 경험을 했는데 비행기는 만석이라 어디 옮길 자리도 없고 토하고 생난리를 쳤더랬다.

주는 밥 간신히 먹고 보여주는 시간에 영화보고 뭐 그러다보면 꼭 양계장에 앉아있는 닭같은 생각이 든다.

 

그에 비하면 비지니스석은 일단 처음부터 라운지에 들어가서 먹고 마시며 편안히 기다릴 수가 있다. 이 라운지는 공항마다 그 규모나 시설이 천차만별이긴 하지만 왠만하면 샤워도 할 수 있다. 거기다 식사는 식탁보도 깔아주고 술도 진짜 유리잔에 주고 식사도 애피타어저부터 치즈 과일 아이스크림 코냑까지 식사 한 번 끝나면 몇 시간이 흘러갈 정도다. 사람대접을 받는 느낌이라고 할까. 케세이퍼시픽같은 경우는 승무원들이 이름까지 외워서 매번 이름을 불러주며 서빙을 한다.

 

물론 영화도 개인비디오로 보고 싶은 시간에 볼 수 있고 양말이며 간단한 세면도구 크림까지 제공하고 말이다. 어떤 비행기는 간단하게나마 등쪽으로 안마가 되는 좌석도 있다

 

체크인할때부터 창구도 틀리니 많이 기다릴 필요도 없고 비행기에도 먼저 타지만 먼저 내려 나와보면 벌써 가방도 나와있으니 정말 이코노미석으로 여행을 하는 거와는 몸의 피곤상태도 그렇고 하늘과 땅차이다.

 

그럼 퍼스트석은? 나야 타본 적이 없지만 남편이 그 비슷한(?) 석을 타고 영국출장을 간적이 있는데 아예 출발부터 집으로 리무진이 데리러 오고 심지어 타고 가는 도중 안마도 해주며 식사도 본인이 먹고 싶을때 먹을 수가 있단다. 제일 기가막혔던건 공항에서도 차에서 내리지 않고 여권검사를 했다나.. 퍼스트석 사람들이 내릴때까지 승무원이 비지니스석 사람들 못나가게 막고 서있는 걸 본 적이 있다..

 

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건 돈이다. 체크인카운터부터 시작해서 왜 불평등하냐고 불평하는 사람들 아직까지 한번도 못 봤다. 비행기를 탈때도 한 쪽은 길다랗게 줄서서 기다리는데 한 쪽은 텅비어 있어도 다들 그러려니 한다. 경로우대 그런 것도 없다. 완전히 자본이 지배를 한다.

 

나같이 건강한 여자가 비지니스티켓을 사면 울엄마같이 몸이 불편한 사람이 아무리 그 좁은 좌석에서 고생을 하고 있어도 열 시간동안 그 상황이 변하지 않는다. 혹 버스나 기차라면 모를까. 비행기를 탔을때 다른 사람을 위해서 날더러 양보하라면 나 못한다.

 

물론 이건 세상살이가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위에도 언급했듯이 비행기는 그 모든게 좁은 공간안에서 일어나니 더 눈에 띄는거 같다. 물론 배에도 클래스가 있지만 배는 그래도 일어나서 걸어다닐 수도 있고 장거리여행은 아무리 싼 티겟이라도 침대가 있지 않은가.

 

몇 번 얘기했듯이 난 비행기 타는 걸 너무 싫어한다.

 

어쨌든 평생에 몇 번 유럽이나 미국으로 여행을 간다면 잠시 그 열시간을 여행에 대한 기대로 참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나처럼 일년에 몇 번은 비행기를 가족방문이라는 명목으로 타야하는 사람은 안그래도 비행기가 끔찍한데 이코노미석을 타면 너무 괴롭다. 그렇게 싫으면 여행은 안 가버리면 그만이지만 가족방문이나 이런 건 안 가버릴 수가 없으니 더 괴롭다.

 

이번 크리스마스때 이코노미석으로 갔다가 올때는 업그레이드를 해서 비지니스석을 타고 왔는데 기종은 까먹었지만 자리도 어찌나 넓게 펴지던지 이 쪽으로 올때가 독일로 갈때보다 시차상 훨씬 더 피곤한데도 여행이 편안하니 오히려 덜 피곤했다

 

물론 독일로 돌아가게 되면 지금처럼 장거리여행을 여러번 하게 되지는 않을거지만 그래도 한국을 왔다갔다 해야하는데 간절히 아주 간절히 비지니스석을 탈 수 있으면 좋겠다. 문제는 이코노미석과 비지니스석의 가격차이가 너무 난다는 것.

 

그래서 다른 건 안 바라는데 딱 비지니스석을 타는데 문제가 없을만큼만 부자가 되면 좋겠다.

 

딜레마는 또 있는데 얼마나 부자가 되야 그 돈이 안 아까울 수가 있느냐는 거다.

 

지금으로선 우리가 그렇게 부자가 될 확율도 없지만  설사 내가 부자가 된다고 해도 나같은 소시민이 그 가격을 내 돈주고 산다는 것도 생각하면 끔찍하다는 것. 솔직히 눈먼 돈이라면 모를까 내 남자가 저렇게 고생해서 버는 돈으로 몇 백만원이나 더 내고 비지니스석을 탈만큼 난 간이 크지도 않다.

 

그래서 비행기표만을 위해서라도 로또를 사볼까 하는 엄한 생각까지 해봤다. 당첨될 확율도 믿지 않으니 차라리 로또사는 돈이 아까운데 뭐 다른 방법이 없을까.

 

양쪽 가족들을 한 장소에 모아놓고 사는 방법이 있긴한데 그 방법은 로또당첨 확율보다도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다. 거기다 가족만 중요하냐? 친구도 만나야 하는데..

 

어제 시어머님이 손님을 초대하는데 샤부샤부를 하시고 싶다고 전화를 하셨다. 옆에 살았다면 아니 예전처럼 뒤셀도르프에만 살았더라도 당장 가서 내가 준비해드린다고 했을거다. 우리의 이 거리는 얼마나 어마어마한지.

 

거기다 민들레님부부가(기억하시는 분들 있으시려나..ㅎㅎ) 뭐 직접 우리집으로 오는 건 아니더라도 지금 동경행 비행기에 앉아 있는데 그래서그런가 아침부터 할 일도 많은데 비행기에 대한 생각이나 하고 있다.

 

 

 

 

 

2006.02.02 Tokyo에서 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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