훼아효(이름도 어렵다..ㅎㅎ)씨네는 우리가 독일에 살때 앞집에 살았던 사람들이다.
몇 일전 남편이 독일에 출장을 다녀왔는데 와서는 나를 보고 아주 심각한 얼굴로 사실은 자기가 내가 화를 낼 일을 했다며 조심스레 말을 꺼내는 거다.
독일에 가서 나를 화나게 할 일이 뭐가 있냐니까 평소와 달리 시간이 좀 남아서 우리가 살던 곳을 갔다가 훼아효씨네 안들리고 그냥 왔다는 거다.
내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화를 내지는 않았지만 어찌나 섭섭하던지..
독일아파트는 현관 출입문에 각집의 초인종과 이름이 붙어있는데 (아파트 홋수라는게 없다) 아직도 거기 그 이름이 붙어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내 초기 독일생활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던 가족인지 모른다. 특이하게도 아저씨 아주머님과 결혼 안 한 나이든 딸 셋이 살고 있었는데 두 분은 은퇴를 하시고 딸만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
얘기했지만 나 공부한다고 계단청소를 혼자 다 하신건 말할 것도 없지만 금요일이면 어김없이 벨을 눌러 돈을 받아서는 토요일마다 독일빵을 사다가 우리 문앞에 놔주었었다.
느즈막이 일어나 문을 열어보면 늘 놓여있는 맛있는 빵을 가지고 먹던 아침은 얼마나 여유로왔는지.. 더블린 이사갔을때 주말에 남편이 빵있나 현관문 열어보라고 농담을 할만큼 한 번도 빼지 않고 그 일을 해주셨다. 아무리 자기들이 사러가는 길이라고 해도 4년간을 그렇게 하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거기다 집주인과 특별히 친해서 당신 혼자 빨래 너는데 쓰시던 다락방을 청소는 다 당신이 하시면서 우리에게도 쓰게 해주셨고 그 딸내미가 다니던 회사에서 받아오는 물건들을 또 바리 바리 싸다 나르셨을뿐 아니라 나 한국갔을때 울 신랑 식사까지 해오셨다는 그 분이다.
물론 좋은 점만 있었던 건 아니고 울 시어머님이 혹 젊은 사람 귀찮게 하는거 아닐까 걱정을 하셨을 정도로 우리에게 관심이 너무 많으셨는데 (하긴 뭐 심심하셨을테니) 어느 날은 날더러 어제 당신이 입었던 옷이 너무 이뻤다는데 기절하는 줄 알았다.
그 날 그 아주머님을 부딪힌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문소리가 나면 잽싸게 현관문안쪽에서 보시는거다..ㅎㅎ
내가 만 서른 살 파티를 했을때 무지 시끄러웠음에도 불구하고 다음 날 일부러 초인종까지 눌러서는 어제 하나도 안 들렸다고 어쩜 그렇게 파티도 조용하게 하느냐고 미리 말씀하시는 마음 따뜻하신 분..-_-;;
오빠네 식구들이 왔을때도 조카들에게 그 없는 살림에 십마르크씩 쥐어 주셨는데 당시 그게 한국돈으로 오천원. 그 분은 정말 50원을 아끼기 위해 가게를 돌아가며 물건을 사시던 분이었는데 말이다.
거기다 공장에서 엄지손가락하나가 잘리신 아저씨는 지하실에 물이 좀 스민다고 (우리는 알지도 못했는데 )우리 지하창고까지 일일히 다 받침대를 해주시고 5층아파트라 에레베이터가 없던 계단에서 장보고 오는 나를 만나기라도 하면 짐을 꼭 들어주신다고 우기셨더랬다.
길거리에서 나를 만나면 큰소리로 '젊은 00부인'을 외치시며 어찌나 반가와 하시는지.
젊은이 붙는 이유는 우리 시어머님도 00부인이다보니..^^;;
난 실제로 남편성을 따르지 않았는데 그때 신랑왈 그래도 사람들이 너를 00부인이라고 부를테니 걱정(?)말라고 했었는데 사실이다..ㅎㅎ
우리가 떠날때 어찌나 섭섭해하시던지. 딱 한 번 떠난 후 나혼자 찾아뵌 적이 있었는데 정말 장롤깊숙히 넣어놓았던 비싼 인형을 선물로 주시고 바깥까지 따라나오셔서는 오랫동안 손을 잡고는 눈물을 글썽이셨었다
찾아 뵙고 싶은 마음은 있었으나 내가 독일을 가게되면 뒤셀도르프가 아니라 시댁에 가니까 왠만해선 시간이 나질 않았다. 하긴 그 친했던 기젤라(그 내 학교친구 할머니를 기억하시는 분 있을지 모르겠다)도 못 만나고 오니 말이다.
처음엔 엽서라도 가끔 썼지만 이젠 그것도 하지 않았는데 남편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지금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아저씨가 몸이 안 좋으셨었는데 살아는 계시는지 요 며칠간 자꾸 생각이 난다. ( 이름은 있었다지만 그 결혼안한 딸 성도 같으니까 모르는 일이다.-_-)
혹 올해 말 우리가 독일로 돌아가게 되면 꼭 찾아뵈야겠다 생각하고 있지만 따져보면 뭐 거기 한 번 가는게 그렇게 대단한거였다고 그 오랫동안 이러고 있으니 나이가 들어갈 수록 참 사람노릇하고 산다는게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2006.04.20 Tokyo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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