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흔적

일본에서 독일로 가면

史野 2006. 10. 17. 12:02

참 기분이 묘하다.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 사람들의 옷차림이라던지 거리라던지 혹은 친절이라던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지만 무엇보다 절절한건 내가 독일에선 정말 이방인이라는 자각이다.

 

세상 곳곳에서 그렇게도 독일을 들락날락했는데 이런 기분이 도쿄에 산 이후에 드니...

 

우선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내리며 내가 떠나왔던 나리타공항과 비교를 하게 되는데 프랑크푸르트 공항이 아무리 후졌다고 해도(나리타도 만만치 않다..ㅎㅎ) 어수선함이며 후즐근한 사람들에 인상이 찌푸려지기 일쑤다.

 

거기다 도쿄는 독일보다 깨끗하다. 뭐 독일도 워낙 다양하니 단칼 자르듯 이렇게 이야기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만 프랑크푸르트공항에 내려 기차를 타고 북쪽으로 가다보면 넓게 펼쳐지는 녹지야 보기 좋긴 하지만 간간히 도시를 스칠때 보이는 낙서며 단정하지 못한 모습들이 다른 도시에서 갔을땐 정말 전혀 눈에 띄지 않았는데 도쿄에서 독일을 갈때면 확 눈에 들어온다.

 

친절도 그렇다. 독일인들이라고 아주 불친절한 건 아니고 친절한 사람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식 친절에 익숙해 있다보면 눈에 거슬리는 일들이 참 많다

 

전에도 이야기했던 거 같은데 나는 이 곳의 적당한 친절이 좋다. 내가 물건하나 사면서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혹은 그날 남편이랑 싸웠는지 어쨌든지까지 경험해야할 필요가 어디 있단 말인가. 프로페셔널한 거리감을 둔 친절은 늘 안정감을 준다.

 

그리고 유럽에 칠년을 넘게 살면서 단 한 번도 나를 불편하게 한 적이 없는 내가 이방인이라는 사실, 그리고 눈에 띈다는 사실이 요즘은 아주 불편하다.

 

내가 동양인이라서 특별히 인종차별을 받은 기억도 없고 (아니 그래서 더 친절을 받았으면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전혀 눈에 띄지 않는 도시 아무도 상대가 뭘하는지 상관을 안하는 이 도시에 살아서인지 요즘은 독일에 갈때마다 그 곳에서의 시간이 불편하고 어지럽다.

 

물론 시댁이 있는 뮌스터가 내가 살았던 뒤셀도르프보다 외국인이 훨씬 적고 보수적인 곳이라서 그런 경향도 있겠지만 그래도 예전에도 그 곳에서 머물렀던 적이 있고 또 대학이 워낙 커서 유학생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예전처럼 집같은 편안한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런다고 뭐 기죽을 나는 아니다만 그래도 요즘 혼자 시내에 나가 뮌스터거리를 돌아다니다보면 이제 골목을 외울 지경인데도 자꾸 낯설다.

 

그래 돌아오는 길 나리타공항에 내리면 괜시리 안도감이 드는 게 그리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 어느 나라에 가나 중요한건 그 나라 언어고 내 독일어가 일본어보다 훨씬 나은데도 이런 생각이 드니 신기할 지경이다.

 

얼마전이던가 기러기아빠 기사에 일본과 비교하는 이야기가 나왔었다. 일본은 기러기 아빠가 거의 없고 미국에서 근무를 마쳐도 애들을 다 데리고 들어간다는 이야기였다 (그렇다고 조기유학이 아예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만)

 

외국인인 나도 이 곳이 이렇게 편한데 모국인들이야 오죽하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자기 태어난 곳이 살기 좋고 편하면 어느 정신 나간 사람이 외국나가 살 생각을 하겠는가

 

물론 그렇게 따지면 그 정신나간 사람의 대표격이 내 남자다만..ㅎㅎ 뮌스터를 갈 때마다 감격에 겨워 생난리를 치면서도 안 돌아가니 말이다. (뭐 우리야 이민을 나온건 아니긴 하지만서도.)

 

어쨌거나 참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고보니 벌써 내가 이 곳에서 네번 째 맞는 가을이구나.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세월 정말 빠르다.

 

또 이 언제 끝날지 모를 길고도 지겨운 가을이 시작되고 있다

 

 

 

 

 

 

 

2006.10.17. Tokyo에서 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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