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흔적

개념은 안드로메다에?

史野 2006. 11. 8. 11:16

 

'시아버님께서 유명을 달리하셨다고해서 너까지 슬픔에 허우적거리진 말아라.
마틴은 편안히 친구들과 함께 좋은 곳에 가셨다고 생각하렴.
누구나 겪게될 그런 날이 마틴에게도 온 것 일뿐...'

 

누군가 위로랍시고 이런 글을 남겨놨다. 기가막혀서 말이 안나온다.

 

아니 누구나 겪게될 그런 날이 마.틴.에.게.도. 온. 것. 일.뿐.이라니..

 

우리 시아버님이 자기 친구인가? 아님 우리 아버님이 자길 만나서 마틴이라고 불러도 된다고 허락했나?

 

내가 시아버님을 마틴이라고 부르는 건 내 시아버지이기때문이다. 그때도 썼지만 독일에서도 시부모님을 엄마아빠라고 부르는 아이들도 있지만 나는 결혼전에 그냥 이름을 불렀기에 그렇게 부르고 또 그런 사람들도 많고 말이다.

 

신랑도 아버님을 이름으로 안 부르고 신랑친구들도 아무도 아버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없다. 거기다 신랑은 가족이라 아니지만 신랑친구들은 아버님께 다 존대말을 쓴다.

 

심지어 신랑은 그 쌍둥이고모님께도 이름앞에 아주머니를 붙여서 누구아주머니라고 부른다.

 

어머님 친구분들은 주로 나를 누구부인이라고 하지 않고 이름을 부르며 존댓말을 쓰시는데 울 시어머님은 그것도 못마땅해 하신다. 왜 니 이름을 함부로 부르냐고 말이다. (물론 이건 우리 어머님이 연세가 있으신 분이라 그렇고 현대독일어에선 성이 아닌 이름을 부르며 존댓말을 쓰는 경우가 꽤 많긴하다.)

 

이번 장례식때 옆집아주머님이 무슨 말을 하다가 내게 반말을 하시곤 깜짝 놀라시며 미안하다고 하시는 거다. 울 신랑에게 그렇게 말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나왔다고.

 

그래 내가 괜찮다고 편하신대로 하라니까 울 신랑이야 아이때부터 반말을 했으니까 그런거지만 난 아이도 아니고 나도 당신에게 반말을 해야 공평한거라고 그럼 당신도 내게 말을 놓겠다고 하셨다.

 

내가 나이 많으신 분들에게 말을 놓는 경우도 많지만 그건 가족이나 친지 혹은 학교에서 만났던 친구들이고 우리 신랑도 존댓말을 쓰는 분에게 어색해서 그게 잘 안된다.

 

영어야 일원화되어있으니 높임말(독일어에선 이게 높임말겸 먼관계의 말로 이해되기도 한다) 낮춤말(역시 가까운 사이를 표시하는 뜻으로 쓰인다) 이런게 없긴 하지만 최소한 누구씨를 불렀을때 지위나 연배가 높은 사람이 그냥 우리 이름으로 부르자고 제안을 해야 가능하다..이것도 요즘이야 공식석상이 아니면 전부 이름을 부르는 분위기로 가고 있긴 하다만.

 

그리고 독일어에선 말을 놓자란 말이 이름도 부르자 뭐 이런 뜻이고 말이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선 그냥 편하게 쓰긴 하지만 보통은 위에 쓴 것처럼 나이가 많거나 지위가 높거나 뭐 그런 사람들이 먼저 제안을 해야 가능하다

 

그러니까 예의라는 건 동방예의지국이라고 난리인 한국에만 있는 게 아니라 어디에나 있는 거란 말이다.

 

한국인들중 우리식구들은 사돈이니까 아버님 이름을 불러도 되지만 그건 영어를 쓸때 이야기고 그런 우리 식구들도 나한테 마틴건강은 어떠냐가 아니라 아버님 건강은 어떠시냐고 묻는다.

 

국제결혼을 해서 서양문화를 잘 알고 막상 우리 신랑을 만났을때 이름을 부르는 한국여자애들도 내게는 형부라고 이야기한다. 독일에서 유학을 해서 우리 신랑을 자주 만났던 애 하나도 만나면 늘 이름을 부르긴 해도 어제 멜에 누구 형 이라 쓰고 말이다. 물론 우리신랑을 아는 사람들이 이름을 부르는 거야 전혀 상관없지만 그건 아마 한국인으로서 그 쪽에서 역시 한국인인 내게 대한 예의일거다

 

예전 독일에서 내가 다니던 한국교회 목사님이 신랑을 아무것도 안붙이고 그냥 성으로 불러서 신랑이 엄청 기분 나빠한 적이 있다. 한국에서도 그냥 김 윤 이 이렇게 부르냐고 어떻게 그렇게 예의가 없을 수 있냐고 말이다.

 

남의 문화까지 존중해주면 좋겠지만 무지해서 그게 안된다면 최소한 내 문화에서 갖추는 예의는 갖춰야 인간이다.

 

마틴에게도 왔다니 

 

독일인들도 그렇게 이야기 안하는데 우리나라가 원래 남의 아버님께 그렇게 이야기하나? 

 

내가 여기다 마틴 너 어쩌고 썼다고 해서 저런식으로 이야기한다면 내가 친정엄마에게 엄마 밥먹었어? 라고 물었다고 해서 상대도 나한테 뭐래 니 엄마 밥먹었데? 라고 묻는거와 뭐가 다른가

 

어떤 한국인이 내 아버님이 독일인이라서 저렇게 함부로 글을 쓴다면 우리 아버님 며느리 잘못만나서 한국땅에서 고생하시는거다.

 

안그래도 머리복잡해 죽겠는데 저런 인간들때문에 아침부터 열이 확 뻗친다

 

 

 

 

 

2006.11.08 Tokyo에서 사야

 

 

완전 구겨진 얼굴. 장례식날 오후 찍힌 사진이다.

 

어제 저 사진을 바라보며 아무리 일주일내내 괴로운 시간이었고 많이 운 장례식날이었다고 해도 어찌 표정이 저모양인가 싶어 가슴이 서늘했다  

 

강박적이기까진 않아도 마흔의 얼굴을 책임져야한다는 말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잘 웃는 나라고 생각하는데 저 굳어진 얼굴은 나로선 낯섬이자 충격이다.

 

그만 열받고 뭔가 행복한 일을 찾아 나가봐야겠단 생각..

 

 

 

 

 

 

 

 

 

 

 


'떠도는 흔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야의 웃기고 바쁜 어느 하루  (0) 2006.11.22
과거속을 헤매고 있다  (0) 2006.11.21
문화차이 그리고 상처  (0) 2006.11.07
일본에서 독일로 가면  (0) 2006.10.17
떠돌이 인생의 요즘 근황  (0) 2006.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