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흔적

사야의 웃기고 바쁜 어느 하루

史野 2006. 11. 22. 18:41

 

 

직업이 백수다보니 나는 하루에 한가지만 해도(예를 들어 다림질. 하는데 삼십분 걸린다..ㅎㅎ) 그 날이 뿌듯한 인간. 두 가지만 하면 머리에서 쥐난다..-_-

 

그런 내가 오늘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를 좀 줄줄히 읊어야겠다. 이건 내 사전의 기네스기록감이다..ㅎㅎ

 

도쿄에 와서 처음으로 병원갈 일이 생겼다. (아 치과야 문턱이 닳도록 드나든다만). 신랑에게 좀 이상이 생겼는데 이 비싸디 비싼 아파트는 서비스가 얼마나 좋은지 41층에 건강체크룸같은게 있어 거기 간호사가 24시간을 상주한다. 아닌 한댄다 나는 가본적이 없으므로..^^

 

신랑이 지난 토요일에 들렸더니 거기서 예약까지 잡아주었고 그게 오늘 아홉시반. 바로 앞인 자혜대학병원인데다 의사가 영어도 한다기에 그러려니 했더니만 이 남자 그럼 접수하는데는 어떻하느냐고 놀란 토끼눈을 하고 쳐다본다..-_-

 

그것도 9시부터 난리여서 대충 고양이세수만 하고는 의사진료실까지만 해결을 해주기로 하고 따라갔다. 아니 애도 아니고 병원까지 따라가야하는 내 팔자라니..ㅜㅜ

 

어쨌든 나도 처음이니 신기했는데 우리가 접수처앞에 줄을 서자마자 안내하는 듯한 남자가 예약했냐고 묻기에 시간을 알려줬더니 당장 누구씬가요? 한다. 외국인이 많이 없어서 금방 알아보긴 했겠지만 안내하는 남자까지 예약환자 명단을 들고 있는 그 시스템은 너무나 마음에 든다.

 

접수를 하고 갈 층을 찾아갔더니 뭔가 써야할 것을 잔뜩 주는데 또 이 남자 무슨 시험보냐? 어찌나 정성스럽게 고민해가면서 쓰던지. 난 일분이면 끝냈을 걸 한 십오분은 들고 있다

 

쳐다보는데 어찌나 열불이 나던지..예전에 리즈가 웃으면서 '탐의 보스가 탐보러 백이십퍼센트 철저한 남자라고 했다는데 탐이 니 남편도 그렇다더라'하던 생각이. 뭐든지 넘치면 좋은게 아니다..ㅜㅜ

 

정말 우리부부는 민족적 차이도 대단하지만 개인적 차이도 어마어마한데 신랑은 독일인치고도 꼼꼼하고 철저하고 나쁘게 말하면 소심하고 나는 한국인치고도 대충주의에 대범하고 빠르기로 말하면 번개가 따로 없다는 것.

 

나는 고딩때 시험보면 십분만에 나왔다. 어느 날 시험감독 들어왔던 담임이 놀래 따라나오더니 시험문제는 제대로 읽었냐고 자기같으면 OMR카드 작성하는데만도 십분이 걸리겠다고.

 

아니 모르는 문제 붙들고 있으면 뭐하냐. 차라리 빨리 나가 다음 시간 준비하는게 낫지..ㅎㅎ

 

내 남자는 시험문제 다 풀고 다시 다 훓어보고 그러고 나서야 정성스럽게 OMR카드 작성하고 OMR카드가 아주 잘 작성되었는지 확인까지 하고 나올 남자다.^^;;

 

 

 

각설하고 의사에게 들어가면 나는 갈려고 진료실앞에서 수다를 떠는데 불리는 이름. 근데 또 이 웃기는 남자가 자기 서류가방을 두고 들어가는거다. 그래 '서류가방'하고 외쳤더니만 괜찮다며 들어가버린다. 아니 지갑이며 핸드폰이며 다 들어있는 걸 복도에 두고가며 뭐가 괜찮댠 말이냐고???

 

부아가 치밀어 가방을 들고 나와 담배를 한대핀후 어쩌겠냐 도로가서 기다렸지. 우리가 생각했던거랑 같이 심각한 일은 아니었고 의사가 독일어를 잘하더라며 히히낙락하며 나오는 이 남자.

 

그래 이왕기다린거 돈내는 곳까지 갔다가 내가 알아서 할테니 자긴 그냥 출근하라고 했더니 엄청 미안한 척하며 신나게 발걸음을 옮긴다..ㅎㅎ

 

재밌는건 병원에 돈을 내는게 아니라  도장만 받고 나중에 아파트에서 청구서가 날라온다나.

 

옆에 있는 약국에 약을 사러 갔더니 이 웃기는 약방은 또 주소며 몸무게부터 울 신랑이 적느라 머리 깼던 일들을 다 적으란다..-_-

 

 

 

어쨌든 약을 타서 서둘러 돌아와서는 평소같으면 지쳐 퍼졌겠지만 운동을 하러 갔다.(이 얘긴 다음기회에..ㅎㅎ)  땀을 뻘뻘 흘리며 운동을 하는데 마침 내 트레이너가 다른 여자와(!) 트레이닝을 시작한다.

 

아니 또 이 웃기는 내 남자가 아닌 다른 남자는 어찌나 히히낙락거리며 운동을 하던지. 듣자니 여자애는 어머 아파요 어째요 난리가 아니다..ㅜㅜ

 

무뚝뚝한게 아니었다!!! 그럼 내가 열 받을줄 알겠지만 그럼 사야가 아니다..ㅎㅎ 나는 아 역시 저 남자는 나를 좋아하는구나. 좋아하는 사람앞에서는 쑥쓰러워한다는데! 이렇게 생각하는 편리한 머리를 갖고 있다..^^

 

내 인생이 괜히 행복한게 아니다..흐흐

 

 

 

사우나라도 하고 싶은 맘이 굴뚝같았지만 오늘은 또 치과에 가야하는 날. 그것도 잇몸수술을 받아야 하는 날. 홍콩에서 벌써 몇 차례를 한데다 내가 몇 년 동안 치과의사에게 갖다바친 돈이 얼만데 또 잇몸수술을 하자니. 아무리 생각해도 매번 의사들에게 이용을 당하는 기분이지만 막상 하자고 하면 싫어요 소리가 안나온다..ㅜㅜ

 

그래 샤워하고 점심먹고 또 치과로..

 

원래 좀 웃기는 남자기도 하지만 이 치과의사 마취도 했고 입을 벌리고 수술을 하는 중에 다이조부?(괜찮냐고) 하더니 금방 아유오케이?(나랑 평소에 영어를 쓴다) 갑가지 일본어를 쓴게 민망했는지 어쨌는지 괜찮아요를 한국말로 가르쳐달란다.

 

아니 내가 지금 그 상태로 말이 나오냐? 아무대답을 안하니 이번엔 '한국어를 안쓰니 잊었군요?' 하고 웃는다. 아 오늘은 왜 남자들이 하나같이 이 모양이냐..ㅜㅜ

 

생난리를 친 후 수술은 의사말에 의하면 아주 괜찮게 되었고 실밥은 다음 주에 뽑기로..그 자리에서 항생제와 진통제를 복용하고는 속으론 욕을 마구 하며 빳빳한 지폐를 건네고는 그저 보험회사에서 60프로를 대주기만 빌었다.

 

이게 그 처음에 스케일링을 여섯번에 걸쳐 했고 삼개월마다 한번씩 전화까지 하며 불러대는 그 웃기는 치과인데 다행히도 독일의료보험회사에서 스케일링은 백프로 대준다만 '나는 치과의사를 먹여살려야할 역사적 사명을 띄고 이 땅에 태어났다'도 아니고 속상하다..ㅜㅜ

 

 

 

그리고 집에 왔느냐? 아니다.

 

몇일 전에 또 이 웃기는 남자가 밤에 스모방송을 보고난 후 보통은 혼자 뉴스를 좀 더 보는데 난 씻고 잔다고 인사하러 갔더니 갑자기 음악회 녹화방송을 틀어놓고 앉아있는거다. 그래 '자기야 어디 아프냐? 아님 약먹었냐 왜 그래?' 물었더니 (우리부부가 아무리 음악회에서 만났어도 내 남자가 집에서 클래식음악을 듣는건 0.1%에 해당된다고 보면 된다.-_-)

 

세상에나 너무나 불쌍한 얼굴로 '니가 요즘은 날 음악회에 안데려가니까 이렇게라도 봐야지', 하더라는 것!!!

 

나원 뭐한 놈이 성낸다고 어찌나 황당하던지 실소를 금할 수가 없어 그냥 웃었다. 아니 내가 누구때문에 음악회를 못가는데 지금 뭔 소리를 하고 있는거냐?????

 

그래도 또 나는 착하니까 아니 이 기회를 놓치면 안되니까..ㅎㅎ 마취도 안 풀려 부은 입을 한 채로 검색해 놓은 음악회표를 사러 산토리홀로 걸어갔다.

 

나야 사정상 하도 급하게 표를 사니 매진일 때가 많은데 이번엔 좀 일찍이라 그런지 표가 있다. 그래 표 두장을 구입하고 또 바쁘다고만 해봐랐! 신랑사무실방향으로 한 번 째려봐주고..ㅎㅎ

 

그래도 나는 음악회건 전시회건 가면 너무 좋아해주는 신랑이 고맙다.

 

위에 리즈이야기를 썼으니 말이지만 더블린에서 리즈랑 아스트리드랑 셋이 '모짜르트의 일생'이란 모던댄스를 보러간 적이 있다.

 

나는 보는 내내 내 남자랑 같이 왔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무지 좋아했을텐데 하며 안타까왔더랬다. 그런데 쉬는 시간에 리즈왈 '남자들을 안 데리고 온게 얼마나 다행이냐. 저런 댄스를 보러가자고 했다고 욕먹을 뻔했다' 하고 아스트리드는 '그러게 말이야'를 외치는게 아닌가.

 

탐이며 기도며 내 남자보다 괜찮으면 괜찮았지 절대 딸리는 남자들이 아닌데 그때 그들중 하나가 내 남편이 아닌게 얼마나 행복하던지..ㅎㅎ  

 

표를 사고 돌아오는 길 입에선 아직도 피가 흐르는데..ㅜㅜ 또 생각해보니 내일은 휴일이다. 그럼 황제폐하(!)께서 집에서 점심을 드셔야하는 날. 그래 또 대충이나마 시장을 봐서는 터덜터덜.

 

아 살다보니 이런 날도 있구나하는 심정. 이왕 설쳐대는 김에 내 옷장에 오일 째 숨겨져 있는 신랑의 셔츠도 다려버려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집에 왔다는 것..ㅎㅎ

 

그런데 또 와보니 아직 스모가 안 끝나 스모까지 봤다

 

오늘은 또 파트릭의 마흔살 생일. 원래는 이 대단한(!) 실력으로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며 동영상이라도 찍어보낼 생각이었지만 오늘 이 모양이니 그냥 메일이라도 써야겠다. (걔는 파티하러 독일갔다..ㅎㅎ)

 

그래도 오늘도 그렇고 내일은 휴일 금요일은 신랑이 치과에 가는 날이라 또 늦잠을 자도 되고 곧 주말이니 오일을 연달아 늦잠자고 침대에서 커피를 얻어마실 수 있는 날..^^

 

정신없어도 이만하면 살만한거지? 이러며 항생제도 먹은 주제에 포도주 마시는 중..ㅎㅎㅎ

 

 

 

 

 

 

 

 

2006.11.22. Tokyo에서..사야

 

 

19711

 

 

 그런 와중에 오늘 길에서 찍은 사진들. 도쿄의 가을은 아직 딱 저 만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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