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백년 전쯤을 헤매다니느라 바쁘다. 원래 관심이 가는 시대이기도 하고 연달아 그 속의 이야기들을 만난 이유이기도 하다.
아놀드 하우저는 19세기가 1830년경에 그리고 이십세기가 1920년경에 시작되었다고 말하니 내가 관심을 갖는 시기는 19세기 후반에서 이십세기 초반이라 할 수 있겠다.
올해들어 감격적인 백권째 책으로 골랐던 스티브 컨의 시간과 공간의 문화사(1880-1918)를 읽다가 내가 현재 인지하고 있는 공간이나 시간개념과 당시 사람들의 그 개념이 얼마나 달랐을까에 생각에 미쳐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그러니까 나는 과거속을 내 기준으로 이해할려고 했던 오류에 대한 자각이랄까.
그러니까 다시 봐야겠다는, 내가 바라보는 기차와 그들이 바라본 기차가 같은 기차일 수가 없다는 그런 암담한 자각말이다.
뭐 그렇다고 내가 체계젹으로 공부할 계획을 세워놓았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그러기엔 미천한 지식, 타고난 게으름 쓸데없이 관심가는 분야가 너무 많은 악조건이기에..ㅜㅜ
어쨌든 이런 거창한 이야기를 할 생각은 아니었고..ㅎㅎ 드디어 클림트를 봤다.
지난 번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를 본 그 극장이었는데 기억하시는 분 있으신지 모르겠지만 그때도 얼결에 레이디데이라는 여성영화의 날이라 반값에 봤다. 그때 방석깔고 바닥에서 본 그 기억때문에 다시는 레이디데이에 안간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이번에도 또 우연히 레이디데이라 반값에 자리도 차지해서 감동..^^ (수요일이었는데 금요일로 이사왔더라..ㅎㅎ)
(사진출처 다음영화정보)
영화가 내가 생각했던 클림트의 일대기가 아니라 조금 실망스러웠는데 돌아와 읽어보니 감독의 의도가 애초에 전기영화가 아니었다니 불만은 없다..물론 에밀리플뤠겔을 클림트에게 목매는 여자로 만들어놓은 건 좀 마음에 안든다만..ㅎㅎ
클림트가 초현실주의 화가는 아니지만 영화는 초현실적이고 환상적이고 아름답다.
예전에 성적욕망이 들끓던 도시이야기를 쓰며 잠시 언급했지만 퇴폐적이라면 둘째가랄 세기말의 도시 빈. 자식을 뿌려놓은 걸로 말하자면 중국황제가 부럽지 않을 화가 클림트.
안그래도 이번에 독일가서 예전에 아버님께 선물했던 훈데르트바서 책을 어머님께 강탈(!)해온 데다 프로이트에 관심도 많은 시점인데 빈이 미치도록 그리웠다. 아니 빈이 그리웠다기보다 당시의 그들이야기가 그리고 제국이 무너져내리는 때 헤매이던 그 사람들 이야기가..결국 현대를 형성하는 뿌리가 될 그 이야기를 찾아야하는데 하는 조바심
(사진출처 일본야후 )
그냥 집에 왔어야 하는데 그래 빈에 좀 빠졌어야 하는데 유감스럽게도 나는 이 디브이디를 사고 말았다. 지난 번 카페뤼미에르 영화 찾으러 갔다가 감독이 대만감독인 관계로 아시아영화쪽에서 우연히 발견했던 이 영화.
마침 영화관 바로 앞이 그 가게이기도 해서 당장 구입. 사실 저런 영화가 있다는 것도 몰랐지만 내가 좋아하는 장만옥이 나오는데다 저 세 자매에 대해서야 관심이 있다뿐이냐.
역시나 내가 생각했던 역사와의 총체적관계 뭐 그런 영화는 아니었지만 또 감독인터뷰를 보니 세 자매의 사랑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게 감독의 의도였다니 역시 불만없다..ㅎㅎ
하나는 돈을 사랑했고 하나는 조국을 사랑했고 하나는 권력을 사랑했다는 말로 유명한 저 송씨 세 자매.
부호인 공상희와 결혼했던 애령 아버지의 친구인 손문과 결혼했던 경령. 장개석이랑 결혼한 미령.
물론 송경령여사에 대해 아는 건 많이 없지만 조국을 사랑했다기보다 손문을 사랑했다가 더 맞는 게 아닐까 하는 개인적 생각을 하고 있지만 참 대단한 여자라는 데 이의는 없다.
상해살때 손문과 송경령이 함께 살던 손중산고가와 후에 송경령여사가 혼자살던 고가를 구경한 적이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중국이 그들이 생각했던 그 조국이 된 것일까 의문을 품어보곤 하지만 답은 모르겠다.
18세기까지는 동서양이 전혀 다른 길을 걸었는지 모르겠지만 19세기에 오면 빈이나 상해나 큰 차이점이 없어 보인다.
일찍이 개화한 아버지 송찰리가(이름을 봐라..ㅎㅎ) 세 딸들을 미국으로 유학보내는데 반대하는 어머니에게 하는 말이 인상적이다. 새 중국에 맞는 신여성으로 만들거라는 거다.
그의 아버지뜻대로 된지도 역시 모르겠지만 어쨌든 저 세 자매가 중국근대에 미친 영향은 대단하달 수 밖에. 물론 그 친했던 자매들이 정치적으로 갈리며 얼굴도 못보고 살아야 했다는 면에서 개인적으로 불행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나중에 양자경이 인터뷰를 하는 걸 들으니 자기가 연기한, 남편과 자식과 부를 모두 갖고 있던 큰 딸 애령이 가장 행복한 여인이 아니었을까 하더라만..
또 인상적이었던 대사
경령이 미령과 장개석과의 결혼을 반대하며 좋은 남자라면 반대가 아니라 누구보다 기뻐할 거란 장면이 있다.
그때 애령이 그런다. 틀렸다고 남자는 강하고 약하고가 있을 뿐이라고..
그 말이 인상적이었던 건 백년 전의 신여성이었던 그들과 지금의 우리들과 과연 다른가 하는 생각때문이었다.
너무나 현실적인 말이긴 하지만 저 말은 지금도 마찬가지니까. 우리는 결코 좋은 남자란 이유만으로 결혼을 하진 않는다. 물론 그 강함이 직업과 학벌과 외모와 집안등등 아니 더 구체적으론 내가 아이를 낳을경우 나와 내 아이를 먹여사려줄 수 있느냐의 축소된 의미로서의 강함일지라도 말이다.
물론 요즘은 그 강함이 여성에게도 요구된다는 데에 그 차이를 보이는데 그러니까 결국 우리는 진보한건가.
공교롭게도 난 그 영화들을 보던 시점에 수유너머 어쩌고 에서 나온 '신여성'을 읽고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출판되었다던 여성잡지 '신여성'에 대한 연구보고서다 하우저의 구분대로 라면 한반도에서 19세기말과 이십세기 초를 살아가던 조선여성들의 이야기.
이런 종류의 책이 처음은 아니지만 일제강점기 보통의 여성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상상해보는 일은 나와 내나라 근대의 간극을 조금은 좁혀주는 흥미로운 작업이다.
지금은 거의 이 세상사람들이 아닐 그 여성들이 새로운 시대에 적응해가는 이야기 역시 우리와 많이 다르지 않다는 것.
책을 덮었더니 또 궁금증이 모락모락 피어올라와서 박태원의 소설집과 채만식소설집을 읽고 있는 중이다.
채만식은 신여성지 편집자의 위치로 몇 줄이나마 신여성에 등장하기도 한다.
식자가 없었던 나라는 아니었지만 갑자기 밀려든 신학문의 파도에 휩쓸려 모두 인테리가 되어버린 사람들. 직업을 구할 수 없어 책을 팔아 끼니를 때우는 사람들의 이야기 역시 고급 인력들이 실업자가 되어 그저 배우고 또 배우는 우리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내가 보수주의자도 진보주의자도 아닌 그저 자유주의자 혹은 허무주의자여서 그런지 나는 아직도 역사가 되풀이되는 건지 진보하는 건지 모르겠다.(도대체 아는 게 뭐냐..ㅜㅜ)
어쨌든 강점기시대건 식민지시대건 그 시대에 대해 더 활발한 연구와 친일에 대한 문제도 더 현실적으로 접근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빈에서 상해로 상해에서 서울로 또 소설속의 동경으로 헤매고 다니다보니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흑백인지 백년가까운 세월 속의 그들이 흑백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이럴땐 누가 내게 아리아드네의 실이라도 쥐어줬으면 좋겠다. 멘토가 절실하달까
왜 뜬금없이 이 글에 시어머니사진이냐하면 장례식에 시어머님이 입으신 저 투피스가 시어머님의 할머니가 입으셨던 투피스다. 시어머님이 32년생이시니까 그 할머니라면 도대체 언제적 분인가.
가죽옷도 아니고 저 옷을 버리지 않고 물려입으신 분들도 대단하지만 결국 역사라는 건 어머님의 할머니이야기라는 단순한 깨달음.
20년대엔가 입으셨단 옷인데 요즘 복고풍의상이 유행을 하다보니 당장 사셨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만큼 디자인이 이뻤더랬다. 그래 패션도 돌고 도는데 인간사야 말해 무엇하겠냐.
2006.11.21. Tokyo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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