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흔적

나의 딜레마.

史野 2005. 4. 11. 10:05

 

 


 

여러가지 상황으로 내가 암담한 건 맞지만 특히나 나를 암담하게 하는 것들을 오늘은 얘기해보고싶다.

 

내가 아무리 마음을 편하게 먹으려고 했다고 해도 무식하다는 건 나를 괴롭힌다.

 

나도 원래부터 무식했던건 아니다..ㅎㅎ
변명을 하자면 하도 잘 읽히지않는 외국어책으로 씨름을 하며 살다보니 한국어책은 그냥 술술 읽히는 사랑소설만 읽게 되었고 또 좀 그럴듯한 독일어책은 진도가 안나가다보니 몇 권 읽지 못한 곳에서 그 비극의 씨앗이 싹텃다고 봐야할거다..ㅜㅜ

 

거기다 여러언어들을 배우다보니 아무리 슬렁슬렁한다고 해도 말이 그렇지 거기 뺏기는 시간도 만만치않다.

 

어쨋든 중국까지는 그렇게 또 중국어배우느라 여념이 없었고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독일어를 절대 포기한게 아니었기때문에 감히 무식탈출 뭐 이런 고상한 목표까지는 생각해볼 겨를이 없었다.

 

그러다가 홍콩부터 학원을 안다니게되고 한국책구하기가 손쉬워지는 바람에 저 바닥에 깔려있던 잠재된 욕망이 꿈틀거리며 올라오기 시작한거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이건 전적으로 내 뿌리에 대한 건데 뭐 그렇다고 내 아버지가 누구인가하는 사적인 것도 아니고 알렉스헤일리가 찾아떠난 뿌리처럼 거창한 것도 아니다.

 

한국인으로서의 나의 정체성에 대한 끊임없는 혼란함인데 이건 또 입양이 되었거나 외국에서 성장해서 외국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과는 또 다르다.

 

그럼 뭐가 그렇게 복잡하느냐고 묻겠지만 나 역시 정리가 되지 않는다..ㅜㅜ

 

나는 우리나라가 근대화에 박차를 가하던 60년대 후반에 태어나 대학을 마칠때까지 군부정권, 결국 파시스트적인 환경에서 자랐다.

 

내가 외국으로 떠난다고 할때 맞다 당신은 한국에  절대 맞는 인간이 아니라던 사람들.
울 신랑도 한국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너같이 웃기는 애가 나왔느냐 신기해할 정도로 좀 개판인 인간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받은 교육과 그 정신의 토양에서 크게 자유로운건  아니다.

 

나는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라는 소설이 있는지도 전혀 몰랐으며 무서록을 읽으며 이태준이라는 사람을 듣도 보지 못했던 거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이건 이념문제와 관련된 우리의 슬픈 현대사이니 사실 딜레마와 별 상관은 없지만 말이다.)

 


 

독일에 처음가서 외국인들과 얘기를 하다보면 그들은 우리에 대해 너무 모르는데 아니 심지어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디 붙어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독일이 언제 통일이 되었고 프랑스혁명이 어느 해 심지어 몇 일에 일어났는지, 어느 왕의 애첩이름까지 외우고 있더란 말이다.

 

그들과 대화가 되고 그들사이에서조차 유식한척하는 거야 나쁠것 없지만 그럼 난 왜 이 모양인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는 거다.

 

거기다 가만히 따져보니 2백년전의 독일소설가의 책은 물론이고 더 오래된 영국극작가의 소설도 주르르 꿰고 있으면서 내 나라의 그 당시 소설은 거의 접해보지 못하고 자랐다.

 

또 다른 딜레마는 종교인데 모태신앙은 아니어도 어린시절부터 교회에 다녔던 나는 남의 민족역사는 줄줄히 꿰고 있었지만 천 년이 넘는 불교에 대해 거의 무지했다.

 

물론 내가 기독교미술 도상학을 조금이라도 배운게 상관이 있긴 하지만 유럽도시의 교회들에가면  잘난척을 해도 우리나라 어느 산천을 가나 있는 절에 가서는 입도 뻥긋 할 수가 없다.

 

결국 전통과 단절된 상태에서 서양식으로 학습받고  자란 나의 뿌리는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중국과 일본에 살다보니 정작 알았어야 하는 내 주변국가들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자각. 그리고 내가 배웠던 것들이 사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처참한 직감.

 

막상 한국관련책을 읽다보니 저자들이 인용하는 모든 이론들은 또 미국 독일 프랑스등에 전적으로 바탕을 두고 있으니 산넘어 산.

 

심지어 불교학조차 서양학문에 기대고 있다는데 충격먹었다.

 

그러다보니 읽어야할 책들은 어마어마해서 읽는다고 읽는데도 지금 쌓여있는 한국책만 구십권가까이되고..ㅜㅜ 읽는 책들도 중구난방이 되어 뭐가 뭔지 모르겠다.

 

이건 결론을 내자고 쓰는 글이 아니다.

 

똥싼놈이 성낸다고  내가 더 젊었을때 열심히 책을 읽지 않았던 탓도 크지만  

그래도 마흔이 다되어 모르는거, 잘못 알았던게 이렇게 많다는 것에 대해 이 책 저 책 뒤적이다가 화병이 생길 것 같아 내뱉는 넋두리다.

 

무식한 것 자체는 죄가 아닐지 모르지만 무식한줄 모르면서 떠들어대는건 죄라고 생각한다.

 

언제쯤 균형잡힌 역사의식과 판단력을 가지게 될까.

 

 

 

 

 

2005.04.11 東京에서...사야


 

 



 

동경은 아침부터 온집안이 흔들리는 지진으로 하루가 시작되었답니다..ㅜㅜ
거기다 어제는 낮에 에어컨을 켰어야했는데 오늘아침엔 다시 히터를 틀었네요
그래도 월요일이고 다시 희망찬(?) 한 주가 시작되었습니다
모두 싱싱한 시간되시길 바라며 혹 사야가 잘 안보이면 딜레마 극복에 매진하고 있구나 생각해 주시길 바랍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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