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흔적

인터넷, 13년 그리고 동경생활 보너스.

史野 2005. 2. 22. 00:01


 

 

 

내 깜찍한(?) 계획대로라면 난 내일 아침 한국가는 비행기를 타야한다.

 

갑자기 한국을 가기로 한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카페번개였다..^^

 

내가 인터넷을 한지는 훨씬 오래되었지만 우리 집 컴으로 한국어를 읽고 쓸 수 있게된건 만 오년이다.
 
이건 프랑스혁명이나 산업혁
명에 버금가는 내 떠돌이 삶에선 정말 획기적인 일이었다

 

그 전엔 인터넷으로 뭘 했는지 나? 기억도 나지 않는다..ㅎㅎ.

 

당장 가입한 곳이 6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의 모임이었는데 혹 기억나시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홍콩살때 독자란에서 까불까불하던..ㅎㅎ 무명씨님이 그 카페주인장이고 엠티라는 이름으로 남기던 분 역시 내게 소중한 그 카페인연이다..^^

 

재밌는 건 내가 카페를 처음 찾아보기 시작한 날 그 카페가 생겼구 그때 우르르 한 스물 몇 명이 동시에 가입을 했는데 그 카페가 내일로 오주년이 되는거다.

 

그래봤자 워낙 조용한 (요즘은 한달동안도 한페이지가 잘 안넘어가는 곳이다..흑흑) 지라 나까지 모여도 서 너명이 전부지만 그래도  오주년이 되는 딱 내일 그 몇 명이랑 함께 술잔을 기울이고 싶었다.

 

그 카페는 내 떠돌이 생활에서  얼마나 위로가 되는 곳이었는지 모른다.

 

떠돌이인생중 가장 힘든걸 말하라면 뭐니 뭐니 해도 친구다. 
 

아는 사람이야 수 도없이 만들 수 있다고 해도 말 잘 통하는 친구, 오랜 친구들을 만날 수 없는 건 정말 나와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느낄 수 없는 가슴아리도록 서러운 일이다.

 

거기다 나는 처음 만나도 한 십년은 아는 것같이 말은 잘해도 막상 사람들에게 마음을 여는데는 오래걸리는 못난 성격이라 기껏 친해놓으면 떠나야하는 상황은 아무리 양보한다고해도 눈물나게 어려웠다.

 

내가 그 카페를 가입했을때가 더블린 살때였으니 그 곳의 몇 사람들은 내가 상해 홍콩을 거쳐 이 곳에 올때까지 늘 같은 자리 같은 곳에서 날 위로해주는 변함없는 사람들이다.

 

윗 사진 속 내 옆에서 브이자를 그리고 있는 이쁜 사람이 가시님이다.

(가시님아 미안하다 한국가면 초상권료지급하마..ㅎㅎ) 


2천년 저 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번개라는 걸 했다

난 그러니까 저렇게 사진에선 엄청 친해보여도..ㅎㅎ 실제로는 가시님을 그 날 처음 만났다.
그 후엔 내가 한국만 가면 버선발(?)로 뛰어나와 이 술꾼이랑 끝까지 버텨주는 고마운 사람..^^

 

이 카페를 시작으로 국제커플 카페에도 가입해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또 상해에서 시작했던 독일어칼럼이나 홍콩에서 시작한 궁시렁 그리고 지금 이 사랑방에 이르기까지..

 

나도 부족하기 이를데없는 사람인데 그동안 왜 내가 실망시킨 사람들이 없고 내가 실망한 사람들이 없겠는가.

 

그래도 이렇게 화면앞에 앉아 생각해보면 가슴 따뜻하고 고마운 사람들이 훨씬 많은 인터넷인연들.

 

누군지 말 안해도 그냥 알아서들 들으라며 우러나는 고마운 마음을 새삼스럽게 전한다..^^

 

 

 


 

 

사실 카페자체라기보다 내 한국인터넷 5주년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는데도 불구하고 어제나 오늘 표는 알아보지 못하고 내일 표만 따졌던 이유는

오늘이 또 내 남자랑 내가 만난  기념일이라 함께 있어야했기 때문이다.

 

13년..  짧은 세월은 아니다

 

2월 21일은 우리부부에게 음악회 가는 날.

 

지난 주에도 음악회를 다녀와서  괜찮은 식사를 할까도 생각했지만 마침 듣고 싶은 음악이기도 해서 그냥  표를 샀다.

 

이 날 늘 좋은 음악회가 있는 건 아니라서 그냥 식사를 할때도 있지만 우린 이렇게 죽는 날까지 대충 이런식으로 이 날을 기념하지 싶다.
 
라이프찌히에서 온 오케스트라단은  만족스러운 연주를 했고 오랫만에 교향악을 들은 우리 부부는 행복했다. 

 

술한잔 하며 난 13년 전 탱탱했던 우리 모습을 얘기하고 그는 13년후 아니 그 보다 더 26년후까지 변할 우리를 얘기했던게 차이라면 차이일까.

 

 

 

 


 

 

 

 

 

 

 

 

 

 

 

 

 

 

 

 

 

 

(이건 북경여행기에 올렸던 사진이긴해도 늦게 올려 못 보신 분들이 많죠? 마유미랑 접니다..ㅎㅎ)

 

 

한국에 가고 싶었던 날에 돈이 없으면 없었지 표가 없어서 못 간 적은 없어 암담했던 나

나를 위로할려고 그랬는지 아님 마유미를 만나라고 표가 안 생긴건지 마유미가 동경에 왔다고 전화가 왔다
 

혹 기억이 안나실분을 위해 복습하자면..ㅎㅎ 마유미는 상해살때 함께 중국어를 배우던 일본인 친구다.

 

마유미가 없었던  내 상해생활이 상상이 안 갈 정도로 내게 의미가 큰 아이  (실제로 아이는 아니고 60년생 아줌마다..^^)

 

내일 만나면 한 삼십분은 중국어가 나오지 않아  헤매겠지만 그래도 오랫만에 마유미를 만나 술주정을 할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벅차오른다.

 

안그래도 올때가 되지 않았나 싶기는 했지만 요즘 이래저래 바빠 잘 따져보지 못했는데 아마 재 작년 내가 홍콩있을때 돌아가신 마유미 아버님 기일인것 같다.

 

그 애는 일년에 두 번 정도 동경에 오고 올때마다 꼭 나를 챙겨주어 넘 고맙다

 

나도 짧게 한국에 다녀보니 아무리 좋아한다고 해도 그 시간을 내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에..

 

그 애 남편은 딱 비서하나데리고 대충 육년계획으로 중국시장을 개척하고 있어서 우리가 여기 살동안 돌아올 확율은 별로 없다는게 안타깝지만

그래도 동경에서 어쩌다가라도 얼굴을 볼 수가 있는게 어디냐.

 

마유미는 내 동경생활의 가장 기분좋은 보너스다..

 

 

오늘 기분좋게 돌아와 기념일이라고 스파클링와인을 짠하고 부딪히며 독일에서 도착해있는 고지서(?)를 뜯어보니 일년에 딱 한번 나오는 남편 보너스가 작년비교 오십프로만 이미 통장에 들어와있다..

 

보너스나 연봉, 매년 협상인 회사에서 한마디 상의도 없이 이거 뭐하자는 건가 잠시 머리 복잡했던 우리 부부

 

내일은 마유미가 내게 보너스고

3월말에 동경에 올 인도네시아 사는 남편의 30년도 넘은 친구가 그에겐 보너스고

뭐 삶이란 그런거 아니겠는가..

 

자기야 그래서 행복하잖아 안그러냐

 

그런 마누라가 한심한건지 웃기는 건지 그래도 웃는 남편을 향해 단순한 내가 내리는 유일한 결론이다..ㅎㅎ


 

 

 

 

 

2005.02.21 東京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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