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마말러 자서전에 보면 그녀가 남편의 일과 자신의 미래때문에 너무 힘들어하는데 그때 그 남편 구스타프 말러가 묻는다.
네가 나를 진짜 사랑하는건지 의문이라고..
나도 그게 의심스럽다고..그녀는 그렇게 써놓았다.
내 남자가 내게 같은 걸 묻는 다면 나도 알마처럼 생각하지 않을까.
우리는 위기다. 아니 내 위기라는 게 더 적확한 표현이겠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그는 내가 존경하는 사람이다. 함께 산 세월이 쌓일 수록 그의 바른 생각과 판단력등이 정말 존경스럽고 그 편견없슴엔 감탄스럽다못해 뭐 저런 인간이 다 있나 질투가 날 정도다.
근데 무슨 결혼에 존경하는 인물 어쩌고 위인전 쓸 일 있는가? 결혼은 처절한 생활이고 현실이다.
원칙과 성실하나 가지고 정말 우직하게 일하는 그
너무 안스러워 돌아서서
눈물을 삼키기도 했고 그 바닥에서 저렇게 버티는게 대견하기도 하고 왠만하면 마음편하게 해주고 무조건 자유를 주며 그렇게 살았다.
벼르던 휴가가 날라가도,쉬는 날마다 나가도, 언제 들어와도 환하게 웃었고 집에 있으면 최대한 쉬라고 식사까지 컴퓨터앞으로 배달했다.
근데 내가 아무리 혼자 잘 놀고 적응력이 뛰어나고 백번 양보해 쿨하고 마음넓은 애라고 해도 나도 사람이다.
아는 사람하나 없는 이 땅에서 300일이상 나가 하루 열서너시간씩 일하는 남편에게 늘 웃는거 힘들고 외롭다.
작년엔 태어나서 처음으로 모든 집안 일을 혼자했는데 그것도 내겐 익숙한 일이 아니라 큰 스트레스였다.
요리며 청소며 집안 일에 탁월한 재능을 보이던, 준비한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는 마누라가 그저 고맙던 남자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고..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스트레스를 내보이기는 커녕 그의 스트레스를 줄여주느라 애쓰며 사는것도 이젠 한계지 싶다.
거기다 요즘은 남편회사까지 아시아쪽 대 구조조정을 한다고 호떡집 쑤셔놓은 것처럼 난리가 아니다.
다른 도시와 달리 이 곳은 공식적으로 지사가 두 개인데 남편이 몸담고 있는 쪽이 문을 닫을 지도 모른다는 말도 떠돌고..
아무리 내가 하루살이 인생이라고 생각하고 남극에가면 펭귄언어라도 배우며 적응하고 살거라고해도 아일랜드를 떠난 지 만 4년동안 벌써 사는 곳이 세 번째다.
떠돌아다니며 사는 것까지는 뭐 그렇다고 해도 최소한 얼마동안 이 곳에 살 수 있는지나 대충 알고 살았으면 싶다.
그제는 남편이랑 주말도 아닌데 세 시간동안 앉아 술을 마시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내가 물었다.
제발 대충만이라도 그게 한 달일지 아님 육개월정도 걸리는 일일지 아님 일년일지 뭐 그렇게만이라도 말해달라고..
소문이 구체화되길래 그럼 홍콩으로 돌아가는 건가 했더니 그것도 아닌거 같구
혹 독일로 돌아가게 된다면 그건 아주 돌아간다는 얘기가 되는거다
내가
벌써 독일떠나산지 7년인데 무식하니 유식하니 타령하며 책이나 읽고 앉아 있을게 아니라 입시생이상으로 녹슨 독일어 갈고 닦아도 모자랄
판이다.
나와살며 그나마 제일 많이 쓰고 살고 더 잘했으면 좋겠는 영어 독일가면 내겐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언어다.
물론 과장된 표현이긴 하지만 영어한마디 못해도 사는데 큰 불편없다.
차라리 불어를 공부해서
독불합작방송에서 보여주는 프랑스영화라도 이해하고 사는게 내 삶을 훨씬 풍성하게 할거다
만약 이 곳에 그냥 머물게 된다면 어쭙잖은 드라마보고 이해했다고 감동할게 아니라 사람답게 살기위해서라도 이젠 일본어학원에 다녀야한다.
남편이야 어딜 가나 일을 하지만 그 외 남겨지는 생활은 모두 내 몫이므로..
그리고 이젠 지금처럼 잘 견녀내고 잘 할 수 있을지 점점 자신없어진다.
그러다보니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에 화를 버럭 버럭내는 나를 발견하고 그런 순간마다 당하는 남편이 아니라 내 스스로 불행하다.
어쨋든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어제 온 새 소식은 지난 주까지만 해도 쉬쉬하던 아시아 총 책임자가 공식적으로 지명되어 아시아순회에 나선단다
어느 도시의 지사장이 아니라 아시아 총책임자시다 보니 그 분은 젠장 사는 곳도 마음대로 정하시는지 아직 어디에 둥지를 틀지도 모른다고 하고.
지사가 있는 다섯 곳중 네 곳을 순회하신다니 어디가 물 좋은건지 현장답사를 하는 건가.
그 책임자가 어떤 결정을 하느냐에따라 잘못하면 내 남자에게 밀려나야할 사람이 생길지도 몰라 우울하고..
내 코가 석자인데 우리는 주제파악도 못하고 그런 걱정이나 하고 앉아있고 이래 저래 불확실성만 떠돌며 그런 모든 것들이 아직까지는 소문이라는 것..
한치앞을 내다볼 수 없는 이 북극의 밤같은 공기가 내겐 질식할 것처럼
숨이막히는데 오늘도 동경은 투명하다못해 깨질 것 같은 날이다.
2005.2.02 東京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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