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올거라고는 했지만 진짜 올 줄은 몰랐다.
서울 소나기 부산 소나기 심지어 여기도 소나기가 온다고 날씨앱은 보여도 다른 지방이야 사야가 본 적도 없고 여긴 안왔거든
햇살 찬란하고 더워 미칠 것 같은 데 앱에 소나기라던 지 비온후 갬 이러면 막 열받았다..ㅎㅎ
근데 이 새벽에 진짜 온다
얼마만이니
사실 오늘 하루종일 흐렸던 지라 하필 여름이라 쌓아뒀던 보 종류를 네 개나 한꺼번에 빨아놓고는 조마조마했다
워낙 얇은 것들이니 뭐 대충 마르긴 했지만 저녁부터 비가 왔다리 갔다리 하긴 했는 데 정말 약 올리는 수준
운없게도 딱 일분 정도 몸에 느껴질 정도로 내리는 순간 비 싫어하는 새끼들 화장실 데려가려다가 실패하고
그친비에 역시 날씨만 원망하고 있었는 데 드디어 내린다
빗소리를 듣는 거 정말 얼마만이냐고..ㅜㅜ
이 비로 이 지독한 여름이 결국 가긴 가는 구나
여긴 겨울이 너무 견디기 힘들어서 여름은 늘 고마왔는 데 올 여름은 에어컨없이 재난 수준이었다
오죽하면 사야가 이 여름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심각하게 집안 이 곳 저 곳을 돌아다니며 아직 오지도 않는 내년 여름을 걱정하며 최소한 한 곳은 인간답게 살아야할 공간을 마련해야겠다고 고민하겠냐고
우짜든둥
이번 여름이 넘 더워서 1994년이란 비교하는 기사도 많이 뜨던 데 그 끔찍했다는 여름 사야는 이태리 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때 그 곳도 너무나 더워서 사야가 기대했던 해바라기밭이 정말 까맣게 타있었고 꼭 더위때문은 아니었지만 계획했던 시칠리아섬은 가보지도 못했다
나폴리랑 폼페이 베수비오스산까지만 갔다가 지금 지진이 나서 난리인 그 비슷한 동네를 가로질러 그러니까 서동을 가로질러 딱 이맘때 아드리아해로 가서 나머지 휴가날짜를 채웠더랬다
당시 사야가 본 그 바다의 이태리 사람들은 성모승천일인 8월 15일 즈음에 이주정도 휴가를 가는 것 같던 데 넘 신기하게도 캠핑장에 집에서 쓰는 오븐들을 다 들고 왔더라는 것. 거기다 물론 대가족들이기도 했고 말이다
설마 두 사람이 오며 그 대형 오븐을 들고 왔겠냐고
여러가지로 그게 당시 사야로서는 대단한 문화충격이었는 데 지금 그걸 쓰자는 게 아니라 이번 지진이 나니 그 기억들이 너무 적나라하게 다가온다는 거다
지금 지진이 났다는 그 지형
그때는 사야가 운전은 못했지만 한국에서 하도 돌아다녀서 설악산이며 정선이며 지형자체는 익숙했지만 운전병출신이던 베테랑 신랑은 그런 구불구불한 산길이 익숙치 않았던 지라 여행다녀와 차를 바꿔야했을 정도였다
근데 결론은 사야가 지나갔던 그 아름다운 길에 지진이 났고 딱 지금 사야가 기억하는 그 이태리 사람들의 신나고 행복한 휴가기간에 이 엄청난 재난이 일어난 것 같다고
여기도 재난이긴 하다만 비가 내려서일까 이 재난 보다는 어쨌든 그 재난이 훨 커보이고
지진도 일어나고 수많은 사람들은 지구상 어디가에서 죽기도 한다만 이 지진은 또 새삼스레 더 아프다
그래 이 것도 인연이라면 그 끔찍한 더위때문에 사야가 22년 전 그 뜨거웠던 여름의 이태리 여행을 떠올렸고 거기다 또 우연히 파스타라는 드라마를 보며 더 생각했던 그 나라.
제발 그래서라도 이 상관없는 한사람의 기도도 먹히면 좋겠다
그래서 한사람이라도 더 살아난다면..
와 근데 대박
사야는 아까 글을 시작할 때 술도 취했고 비가 온다고 쓰다가 비가 안오면 관둘 생각이었는 데
지금 놀랍게도 글 쓸때보다 더 세차게 비가 내린다
참 놀랍게도 바로 위까지는 이태리의 누군가의 생명을 간절히 원하며 쓰고 있었는 데
빗줄기가 굵어지고 제대로 비가 내리자 사야는 이제 이태리의 죽어가는 누군가가 아니라 사야마당의 나무들때문에 기쁘다
기대를 안했기에 거의 포기하고 있었는 데 나무들도 흡족할 것 같네
아 된장
어딘가의 죽음보다 내 손가락이 아프다고 한게 흄이었나
사야가 딱 지금 그렇다
그냥 비가 오는 것만으로도 좋다고 생각했는 데 이 글을 쓰는 내내 내리고 있는 비..
사야는 이태리를 생각하다가 내 마당의 메마른 나무들이 중요해졌다
사야삶이 절박해서 인위적으로 급수도 못하고 매일 바라볼 때마다 어찌보면 안쓰러웠는 데 지금 내리는 비 정도면 일단 이 마당에 사는 생명들은 해갈은 하겠다
아 미안
예상치 못했던 비가 시원하게 내리니까 저 멀리 인간을 걱정하던 사야는 갑자기 행복해졌다
늘 바라보면서 물을 안줘도 살아있는 게 신기했지만 물이 얼마나 필요할까 절박했거든,,
너무 감동하고 기뻐서 남의 불행을 이야기할 수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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