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아늑한 모래실

내 딸 서영이

史野 2013. 2. 4. 22:09

요즘 주말에 KBS에서하는 드라마. 그 시간대엔 어떤 막장을 써도 시청률이 기본으로 40프로는 나온다는 그 드라마.

사야가 그 드라마에 열광하고 있다.

열광이라는 말은 웃기지만 본 걸 또 보고 또 보고 하고 있으니 뭐 열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서영이라는 인물은 사야랑 백팔십도 다른 인물이고 쳐다보고 있으면 답답해 미칠 때도 있다만 그래도 그 드라마를 그렇게 열심히 보는 이유는 ' 자존심' 이라는 키워드때문이다.

 

어제도 그 아버지가 사위에게 그런 말을 하더라. 지도 사람인데 그런 자존심이라도 없었으면 어떻게 버텼겠냐고. 그래 사야도 그랬다

자존심이 없었으면 사야는 결코 이 삶을 버텨내지 못했을 거다.

사야는 상황이 달랐으므로 서영이처럼 열심히 산게 아니라 술, 남자, 여행, 공연 그리고 그림 뭐 이런 쪽으로 풀고다니 긴 했지만 어쨌든 사야를 지금까지 지켜주는 건 그 질릴 정도인 서영이의  '자존심'이다

 

물론 사야는 자존심때문에 남편과 헤어진 건 아니다만 그 서영이란 애가 남편을 사랑하면서도 독하게 포기할 수 밖에 없었던 것처럼 사야도 일단 결심하면 가차없는 그런 독한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서영이처럼 똑똑한 애가 못되어 헤어지는 데도 남친도움을 받은 것도 모자라  남편이 불행해진다면 나는 가야하니까 그땐 나를 보내달라고 술만 마시면 남친을 괴롭혔었다.

 

찌질한 X, 모지란 X. ㅎㅎㅎ

남편과도 그랬고 남친과도 그랬고 헤어지는 데 일년이 넘게 걸릴만큼 그 모진 시간을 견뎌내고 그 오랜시간동안 그 힘듦을 겪으면서도 결국은 마음을 돌리지 않는 인간이 사야다.

누군가 남친의 미련을 끊어주는 게 맞는 것 같다던데 여전히 날이면 날마다 남친을 괴롭히며 지내고 있다. 남친 말대로 사야가 결혼이라도 해야 끊날 관계인 지도 모르겠다만 남편과는 자식이라도 없었지 남친과는 개.자.식이 넷이나 있는 관계로 그것도 쉽지가 않다.

 

어쨌든 사야는 이렇게 무서운 인간인데 사야가 무서운 인간인 지를 모르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친절하고 배려심많고 이해력이 뛰어난게 사야에게 맘대로 해도 된다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니다.

비교가 웃기긴 하다만 감옥에서도 사형수는 안 건드린다는 데, 남편도 버리고 남친도 버리고 새깽이들까지 버리고나서 술마시다 토하고 또 술마시는 사야, 진짜 건드리지마라...ㅎㅎ

 

사야는 창문깨는 건 기본이고 쌍욕도 할 수 있고 칼로는 못하겠지만 말로는 사람도 죽일 수 있는 그런 인간이다. 이 나이가 되어보니 ' 아 인간이란 상황에 따라 못할 게 없는 거구나' 를 몸소 체험하다 못해 뼈져리게 느끼고 있는 사람이다. 좋게 이야기해 인생을 좀 더 폭넓게 이해했다는 이야기고 나쁘게 이야기하면 내 속에 내재된 폭력성과 잔인성 그리고 사야가 얼마나 뼈솟깊이 이기적인 인간인 지를 절절히 느낀다는 이야기다. 

 

 

각설하고

서울집을 그대로 옮겼다.

 

 

 

그 수묵화가 뭉개진 날, 창문으로 비춰진 풍경이고 사야가 좋아하는 풍경이기도 하다.

 

 

 

그런 저 곳에 오늘 이렇게 서울에서 가져온 커튼을 달았다. 저 커튼이 사야가 서울오자마자 산거니까 벌써 오년이 넘었네. 서울가기전엔 저기 왜 안달았는 지는 묻지말고..ㅎㅎ

첫 경험은 늘 행복하듯이 오른쪽 난로뒤로는 뭘 받치기 힘들어 백프로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구십프로 정도. 어쨌든 사야가 생전 처음으로 전동드라이버를 이용해 저 서울 집에 있던 커튼을 여기 모래실에 달았다..^^

 

 

 

서울처럼 야경은 없지만 그래도 대신 따뜻한 난로옆에 저리 자리를 잡았다. 유지할 능력이 없어 빼긴 했지만 서울집이 없어지고 여주에 갇혔다는 것 때문에 좀 많이 우울했었다.

그런데 오늘 조금이라도 일을 하고 나니 조금은 기분이 나아졌다.

 

 

 

결국 그제 도끼질에 또 실패하긴 했다만 그래도 저리 절단기로 나무도 좀 잘라놨더니 다행이고 말이다.

의지가 없어서가 아니라 안되는 건 안되는 거더라. 저 절단기도 너무 무거워서 도저히 사야가 들 수가 없다. 그래서 가지고 나가고 어쩔 수가 없어 그냥 부엌에서 자르고 있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선물같았던 이 풍경, 도시에 사는 누군가에겐 귀찮을 지 모르겠지만 사야에겐 정말 선물이다. 물론 하루종일 날씨도 따뜻해서 즐길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녹기 전 소나무 그림자도 다행히 찍고..^^

 

 

 

이리 커튼달아놓고 그림자 놀이도 했다.

 

 

 

누군가와 함께 살 때는 몰랐는 데 혼자 살다보니 들여다 보이는 것도 무진장 신경쓰이더라. 커튼을 쳤으니 어찌 보이나 궁금해 길까지 나가보고 싶었지만 그것도 귀찮고 그냥 데크에서 한 장.

 

 

 

실제로 보면 너무 정신없고 또 거실과 침실을 빼면 난리도 아니다만 그래도 이렇게 조금씩 사야의 집이 자리잡아가고 있다.

 

 

 

사진으론 안보이지만 오른쪽에 있던 등이 나가 답답했었는데 서울에서 가져온 등으로 임시로라도 저리 해놓으니 기분도 좋고 말이다.

 

누군가 요즘 사야글을 보면 정글의 법칙이란 방송을 보진 않지만 읽는 느낌이라던데..ㅎㅎ

그래 사야가 이게 정글의 법칙이건 아님 삶의 법칙이건 살아남길 빌어주길 바란다.

오늘 고기공놈 퇴근길 전화해서 이런 저런 이야길 하다 ' 언니 좀 간단하게 생각하면 안되요?' 묻던데

그게 가능했으면 사야가 이러고 살겠냐

 

어쨌든 오늘로 음악듣기 좋아하는 사야에게 세 개의 시스템이 완성되었다.

연결안된 스피커가 하나 더 있는 데 그것까지 되면 정말 음향시스탬에선 완벽할 것 같다.

아 우짜든둥, 이렇게 하루가 또 간다.

경험하지 못하면 절대 이해 못할 무언가, 그리고 인간은 딱 자기가 가진 폭만큼만 인생을 이해할 수 있다는 슬픈 경험을 한 날,

사야는 과연 어떤 인간으로 늙어갈 것인 가, 생각이 아주 많은 밤이다...

 

 

 

2013. 02.04..여주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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