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점심 약속이 있었던 지라 호박이 돌보고 어제 저녁때 정도 올라올 생각이었는데 썼듯이 그 동생놈이 오는 바람에 그 동생놈 차를 얻어타고 나오게 되었다지.
근데 그 동생놈 집은 분당이라 거기 들리고 어쩌고 저쩌고 여주집 떠난 지 오백년만에..ㅎㅎ 서울집에 도착.
어제 술도 덜깬 상태로 장터로 가는 길에 갑자기 걸려온 전화 한통. 댓글은 잘 안 남기시지만 (남겨도 주로 비공개로 남기시는..^^) 아주 오래된 블로그 지인인 '나의 또 다른'님께서 금요일에 남편분과 함께 서울에 오셨는데 토요일 시간 괜찮으면 함 만나자는 거다.
독일에서 나오시기전에 전화를 하셔서 만나기로는 했지만 이렇게 빨리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다 갑자기 독일어를 하시며 남편분까지 바꿔주셔서 순간 어찌나 당황스럽던지..ㅎㅎ
다행히도 친정이 여기서 별로 안 멀어서 사야의 아지트인 비어플러스에서 만나기로 했다. 집에 다섯시반에 도착했는데 여섯시쯤 택시를 타고 출발하신다고해서 잽싸게 짐풀고 눈썹을 휘날리며(?) 비어플러스로 달려갔다지. 멀리서 오시는 분들인데 먼저 가서 기다리는 게 예의 아니겠냐고..ㅎㅎ
두 분의 사진을 당근 함께 찍었는데 본인의 사진은 거부를 하셔서 남편분만 올리기로 합의봤다..^^ 사실 그 분 블로그에서 남편분 사진을 여러번 봤는데 사진보다 훨씬 미남이시고 성격 엄청 좋으시고 무엇보다 맥주도 좋아하시고.ㅎㅎ 즐거운 시간이었다.
특히나 사야가 자랑해 마지않는 골뱅이를 어찌나 맛있게 드시던 지 사야가 육년 가까이 비어플러스 들락거리면서 그렇게 접시를 싹 비운게 처음이라 정말 감사했다.
재밌는 건 우리가 알긴 오래 알았고 예전에 사야가 시댁에 갔을 때 통화한 적도 있고 얼마전에는 한시간이나 통화를 했지만 사실 얼굴을 보는 건 처음이다
근데 이 재밌는 '나의 또 다른 님'이 사야를 보자마자' 오랫만'이란다 하하 서로 하도 사진을 봐서 그런 느낌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시어머니랑도 전화통화를 거의 안하니 몇 시간동안 독일어로 떠든게 도대체 얼마만인 건지. 작년에 독일친구 왔을 때도 이틀내내 고기공놈이랑 같이 만나느라 독일어보단 영어를 많이 썼었으니 사년만에 그리 떠든건가.
언어라는건 안쓰면 잊게 되어있는 것. 독일어야 사야에게 잊혀질만큼의 언어는 아니다만 그래도 적당한 때 적절한 표현이 생각나지 않는 특별하면서도 묘한 경험을 했다. 독일어는 그 오랫동안 내가 쓰던 일상언어였는데 그 유창하고 유려하던(확인불가니 내 맘대로 쓴다..ㅎㅎ) 사야의 독일어가 버벅거리는 수준이 되어있더라.
우짜든둥 이십년이 넘었어도 여전히 행복한 부부와 오랫만에 독일어 실컷쓰며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물론 그런 시간들은 사야에게 개인 사정상 여러 생각을 하게하는 특별한 시간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나중에 '나의 또 다른'님의 역시나 유쾌한 친구놈(욕이 아니라 남자란 이야기다..ㅎㅎ)이 합류하셔서 맥주 한 잔 더하고 그 분들은 이차를 가고, 나는 집으로 왔다.
그 전날도 술 죽어라 마셨는데 사야는 가끔 사야가 여전히 멀쩡히 살아있는 게 신기하다..-_-;;
지난 번 전화하셨을 때 책을 사다주신다고 했는데 정말 꼭 갖고 싶었던 이 독일어책들을 잊지않고 들고 오셔서 얼마나 감사했는 지 모른다. 책 욕심많은 사야라 독일아마존에 책을 가끔 시키기도 한다만 저 책들은 약간 의미가 다르다.
하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고 하나는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다. 상실의 시대는 한국어로도 독일어로도 읽었지만 책은 지금 남편이 가지고 있고 쿤데라 책은 오래전에 한국어로만 읽었는데 다시 한번 독일어로 읽고 싶었던 책이다.
사야야 독일에서 오래산게 아니니까 독일만 가면 역시나 책을 한보따리 사오곤 했는데 사고 싶은 책, 새로 읽고 싶은 책이 워낙 많다보니 저 책을 들었다놨다 몇 번을 했는 지 모른다지.
말하자면 지금처럼 선물로 받으면 가장 행복할 책들이란 이야기다.
책을 사다주셨는데다 이 동네까지 오셨으니 당연히 내가 대접했어야 하는데 술까지 얻어먹었으니 고맙고도 죄송한 마음. ( 아 단골이 좋은 게 울 사장님 귀한 손님들 오실거란 말에 어찌나 신경을 써주시는 지 어제 정말 감사했다.)
워낙 일정이 많으시니 떠나시기 전 다시 뵐 수 있을 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중에 사야가 독일에 혹 가게된다면 정말 꼭 한 번 그 집을 방문하고 싶은 마음이다.
어제 정말 반갑고 고마왔습니다..^^
사야가 호박이 수술에도 불구하고 그리 부랴부랴 서울로 오게 된 이유는 고기공놈의 조카 돌잔치. 고기공놈이 아무말이 없길래 그냥 선물하나 해야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고기공놈이 아닌 고기공놈 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사야친구니 안 특이하기야 하겠냐만..ㅎㅎ 역시 특이한 고기공놈, 언니에게 부담된다고 연락하지 말랬다던데 성격이 전혀 다른 고기공놈 동생은 이웃사촌..^^도 모셔야한다며 감사한 초대를 했다지.
늘 쳐다보기만 하던 종로타워 33층 탑클라우드에서 했는데 사야가 이런 기회아니면 언제 저길 가보겠냐고..ㅎㅎ
참 사진을 찍고보니 나온 저 오른쪽의 미인은 고기공놈의 사촌언니, 말하자면 고기공놈 이모딸인데 아일랜드에 어학연수를 나왔어서 나랑도 그시절부터 잠깐이지만 본 사이다.
놀라왔던 건 저분의 엄마 그러니까 고기공놈의 이모님도 사야를 알고 계시더라는 것.
더 충격적이었던 건 저 분이 사야가 고기공놈의 '정신적 지주'란 말을 했다는 것이다..-_- 내가 무슨 교주냐? 내가 고기공놈에게 받는 위로가 얼만데 우린 친구라니까 왜 안 믿어주냐고? ㅎㅎ
돌잔치를 위해 마련한 들어가는 입구도 멋지고
저 멀리 보이는 인왕산도 멋지고..
아 저 커플은 고기공놈 친한 친구인데 예전 연양리에서 고기공놈 생일파티할때 여주까지 온 적이 있는 커플이다. 그 사이에 저렇게 귀여운 아들을 낳았다네..^^
고기공놈이 내게하는 이야기는 거의 다하는 친한 친구라 참 많이 반가왔다. 하긴 고기공놈은 바빴고 저 커플마저 없었다면 무지 뻘쭘했을 자리이긴 했다..ㅎㅎ
사야도 만만찮게 멋진 곳을 가보긴 했다만 구조도 특이하고 전망도 괜찮고 좋더라. 뭐 고층건물을 별로 안 좋아하는 사야에겐 그래도 비어플러스가 더 낫다만..하하
부처님 오신 날이 가까와오니 종로타워앞에서부터 조계사쪽으론 행사한다고 난리도 아니고 청게천에도 저리 이쁘게 등이 걸렸다. 사람많은 거는 딱 질색이니 행사를 볼 생각은 애초에 없었고 저녁 약속까지 시간도 많이 남길래 그 더운데다 뽀족구두까지 신은 주제에 집에 걸어가기로 결정.
날씨는 더워도 물소리며 저리 아름다운 노랑붓꽃(맞나? ^^;;)이며 청계천이라도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냐 싶었지만 일요일이다보니 쌍쌍이나 가족단위 나들이객이 많아서였는 지 왜 그렇게 혼자라는 것, 빈집에 들어가야한다는 그 사실이 어찌나 서글프게 느껴지던지..아 사야 정말 이 문제를 어찌 극복해내야할 지 모르겠다..ㅜㅜ
어쨌든 저런 꽃벽도 있고 여러가지 문제점이야 있지만 청계천을 복원한 건 정말 잘한 일이란 생각이다. 뭐 결국 발도 아프고 덥고 걷다 지쳐 동대문쯤에선 포기했다만 그래도 기분좋은 산책길이었다.
집 가까이 아주 근사한 카페가 하나있다. 지금은 사진처럼 더 근사한 곳으로 이전을 했지만 예전에 남친이 커피를 배우던 곳이기도 하고 그 사장님이랑 같이 배우던 사람들이 여주로 하루 놀러오기도 했었다.
사야가 아침마다 갈아마시는 원두를 사는 곳이기도 하다.
집에와서 글하나 올려놓자마자 저녁엔 그때 언급했던 독일에 오래 계셨단 정박사님과 (물론 난 선생님이라고 부르지만 그녀와 헷갈려서 고기공놈이랑 그냥 정박사님이라고 칭하기로 합의를 봤다..ㅎㅎ) 이 근처 맛있는 냉면집에서 저녁을 먹고 저 카페에 앉아 오래 이야길 했다. 그때 인사동에서 뵌 이후로 가끔씩 만나 식사도 하고 커피도 마시고 술도 마시고 그런다. 심지어(?) 대학캠퍼스에서 만나 커피한 잔 놓고 몇 시간씩 이야기하는 일도 있고 말이다..ㅎㅎ
한번의 경험으로 충분하긴 하다만..ㅎㅎ 덕분에 '괴테를 사랑하는 모임' 뭐 이런 곳도 참석하게 되어 이것 저것 생각할 기회도 가졌고, 불교니 역사철학이니 정신분석학이니 귀동냥도 하고, 조만간 불경을 공부할 곳도 소개해주신다고 하니 사야로선 정말 고마울 따름.
오늘도 역사의식과 객관성과의 상관관계에 대한 이야길 조금 나눴는데 사야에게 참 많은 도움이 되었다.
빠른 시일내에 선생님의 논문을 읽고 그 이야길 좀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요즘 사야가 뭔가에 집중할 상태가 아니라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지난 목요일 정신과에 갔다가 정신과 선생님께 참 고마운 말씀을 들었다. 중간 일년 넘게 안다니긴 했지만 연양리시절부터 그 정신과를 갔으니 선생님과 나도 이제 몇 년의 세월.
그런데 사야가 변해가고 있다는 거다. '좋은 쪽으로요?' 순진하게 물었더니 그렇다고 '나이가 들어가기 때문이 아닐까요?' 했더니 나이가 들어간다고 다 그런건 아니라며 좋은 말씀을 해주시더라지
정신과 선생님을 만나고 오면 늘 기분이 좋긴 하지만 그리고 우리야 뭐 의사와 환자의 관계지 개인적인 관계는 아니지만 '아 나의 단점과 약점을 모두 알면서 나를 믿어주는 인간이 또 하나 있구나' 란 느낌이었달까.
여주집을 떠나 온 지 벌써 사개월이 다 되어간다. 시간이 지나면 많은 것들이 해결될 줄 알았는데 머리는 더 복잡해져만 간다.
그래도 혼자이지만 또 혼자가 아니어서 그게 정신과선생님이건 정박사님이건 고기공놈이건 누군가가 내 이야길 귀기울여 들어줘서 어쩌면 사야는 이 시간을 버텨내고 있는 중인 지도 모르겠다
2012.05.20. 서울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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