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나만의 공간

사람과 사람사이

史野 2012. 4. 25. 01:25

사실은 또 '주정'이란 제목으로 글을 쓸려고 했는데 너무나 상상력의 부족이자 창피한 일인 것 같고 또 사실은 그런 제목을 쓸만큼 지금 술이 취하지도 않았기에 저런 멋진(?) 제목 한번 뽑아봤다..ㅎㅎ

 

사람과 사람사이, 그게 인간이라던데 맞나?

어차피 관계를 맺어야 살아가는 세상. 무인도에 살거나 도닦는다고 동굴에 칩거한다고 해서 인간이 아닌건 아니겠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사회적 관계를 이해한 후에 들어간 이야기지 가끔 기사에 나는 늑대소년이나 소녀처럼 애초부터 그냥 자연에만 산다면 인간이라고 부르긴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

 

그러니까 인간은 자꾸 인간답게 산다는 게 뭔지 끊임없이 고민하게 되는 건 지도 모르겠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했다, 라는 시인이 있는 가 하면 연탄재 함부러 차지마라 너는 한번이라도 누군가에게 뜨거운 인간이었던 적이 있냐고 묻는 시인도 있는 게 인생.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없기를 바라는 건 내 보기엔 지나친 결벽증이자 이 현실적인 거친 삶에 대한 용기없슴이고 (윤동주 추종자들이 들으면 기절할 말이겠다만) 연탄재를 함부로 차지말라는 건 역시 뜨겁게 용기있게 살아보지 못한 자신의 삶에 대한 자학이다.

 

결국 다른 방식이긴 하지만 각자의 삶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란 표현이 맞을까?

 

오늘 사야는 지난 번에 언급했던 정선생님을 다시 만났다. 그 분 논문이야 선물로 받고 그 메일을 보냈다는 노교수의 책을 하나 주문했는데 어찌 이야기가 한다리 건너다보니 내가 그 논문을 독일에서 주문했다는 걸로 오해가 되어( 논문은 소량 출판이다보니 구입할려면 무진장 비싸다) 통화를 하게 되고 오늘 그 분을 뵙게 되었던 것.

 

사야로선 경이적인(?) 시간인 12시 반에 만나 같이 점심먹고, 커피 한 잔 놓고 이야기하다 다섯시 가까이 헤어졌으니 참 놀라운 일이다..^^

지난 번 메일을 저도 갖고 싶다고 했더니 오늘 감사하게도 잊지않고 아날로그 세대인 선생님께선 카피를 해서 가져오셨는데 한 쪽이 짤리는 참담한^^ 결과가 있긴 했다만 다시 한 번 읽으며 정선생님이 하셨던 이야기와 연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던 날.

 

그 분 메일에 쓰였던, 숭산스님이 하셨다는 말. 'Don't think so much; just look'  내가 정말 번역을 할 수 없는 이유인데 저게 무슨 말인 지를 도통 모르겠더라는 거지. 뭐 말하자면 너무 많은 생각을 하지 말고 그냥 관조하라?

내가 송현님께도 명확하게 말씀드리지 못하고 정선생님의 논문 제목이 뭔지 올리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논문을 읽고 이해하지 않는 한, 그 단어가 담고 있는 독일어의 가장 가까운 한국적 단어를 찾는 건 어찌보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문화나 언어의 백프로 전달은 불가능하다. 매트릭스, 나이가 들어갈 수록 너무 비관적인 생각이긴 해도 우리는 어쩌면 정말 진정한 언어나 환경에 통제받는 그런 존재들은 아닌가를 자꾸 되묻게 된다.

내 흔적이 남는 걸 싫어해서 일부러 현금을 쓰기도 하지만 휴대전화의 위치추적도 가능한 마당에 카드하나 쓰지 않는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허탈하게 웃으면서 말이다.

 

모두가 싫어하는 이야기, 인간은 어차피 유한한 존재라는 것.

누구보다 사야가 정신과 치료까지 받아가며 가장 못 견뎌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내가 오늘 만났던 그 분은 그 연세에 예전 일이 뭐가 중요하냐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하나 그게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니냐고 말씀하시더라지.

그리고 내가 카피로 받아 (뭐 끝이 짤리긴 해서 이해하는데 상상력이 약간 동원되긴 한다만) 다시 읽은 그 노교수의 메일에선 장자인 지 노자인 지는 모르겠다만 인생은 어차피 한바탕 꿈이 아닌가 그런 느낌이 읽혀지더라는 거다.

 

어차피 인문학이건 종교건 삶을 이해하려는 노력인데 물론 책을 읽어보지 못해 쉽게 말할 수는 없지만,들은 바로는 팔십평생을 프로이트 추종자였다는 그 교수나,  본인이 주장하는 바나 연구를 납득시키기위해 거의 반평생을 바친 정선생님이나 그냥 사야 눈엔 아름다와보이긴 마찬가지더라는 거다.

이 선생님 지난 번엔 독일대사가 하는 아프카니스탄에 있는 고고학적 가치 어쩌고 하는 독일어강의를 들으러 가자고 하시더니 이번엔 탄허스님 사상을 어쩌고 하는 곳에 가자신다. 참 대단한 열정이시다.

 

아 그땐 잠시 대충 읽어서 몰랐는데 이 노교수는 지금 전립선암에 걸려 삶을 관조하는 게 아니라 치료가 되는 과정에서 삶에 대해 아니 적확히는 산다는 것에 대해 관조하기 시작한 거 같더라.

 

숭산스님을 만나고 '공' 혹은 ' 참된 자아' 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이 노교수는 동양인들은 이런 것들을 다 이해하는 것처럼 오해하던데 그건 물론 아니지.

나도 오랜 기간 서양인이랑 살아봐서 아는데(?) 사실 삶에 대한 고민은 누구나 비슷하다.

단지 그 고민을 할 여유와 시간이 주워지냐는 차이일 뿐. 아니 그 고민을 하게 만드는 교육적인 토양도 필요하겠다만.

그래서 예전에도 내가 잠시 언급한 적이 있다만 그리스에서 철학이 발달한 건 그 때 그 인간들이 생. 각. 밖에는 할 시간들이 없었기 때문이라니까..^^

 

거창한 철학이야길 하려는 건 아니었고 그냥 사람 사는 이야기가 하고싶었다

주말에 비도 오고 그것도 돌풍이 몰아치고 새깽이들도 걱정되고 마당도 신경쓰고 싶고 갑자기 내려간 여주. 시골생활하며 겨우 배운 건 비오는 데 일하면 쉽다는 거라  비맞으며 왔다리 갔다리 좀 했더니 금방 몸살.

그렇다고 뭐 앓아누워있을 인간도 아니라 다음 날도 일하고 좀 신경이 날카로운 상태에서 남친과 오랫만에 한판했다

 

아주 얼굴을 안 보이는 사이는 아니지만 헤어진 마당에 그리고 요즘은 얼굴 붉힐 일도 없었기에 잘 지내다 왔는데 다시 또 남친을 열받게 하고 막말을 들어야하는 처지에 놓이고 보니 인생이 뭔가 싶더라.

 

그냥 웃기는 사야의 결론, 아니 울 정신과 선생님의 결론인데

유한하거야 당연한거고 위에 두 시인의 예를 들었듯이 견뎌내는 것도 각자의 몫이긴 하다만 상처가 덜하고 나름 기댈 곳이 있는 인간들은 그래도 잘 견뎌내는 거고 사야처럼 상처가 많고 그런 인간들은 천년만년 살 지 못할 인생을 자꾸 되새기어되어 늘 불안했다는 그 차이?

 

사야는 그래서 섹스가 좋았다

모두 잘난 척을 하지만 어찌보면 다 연약한 인간들. 요즘처럼 명품까지도 삶을 좌우하는 그런 사회적 시스템에서 모든 것을 벗고 동물적으로, 그러니까 어찌보면 가장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만날 수 있는 게 남녀의, 촌스런 말로 교합

모든 걸 다 벗고 나면 남는 건 (이렇게 이야기 할렸더니 요즘은 복근이나 근육 뭐 이런 게 남는다만..ㅜㅜ) 그냥 초라한 한 인간.

지위건 멋이건 다 벗어버린 상태 , 어찌보면 섹스는 동물적인데 사야는 그 동물적인 행위를 통해 참 많이 위로 받았다.

 

그리고 지금도 그 동물적인 행위를 통해, 물론 그게 나를 이해하는 사람이라는 전제를 하지만 그렇게 간절히 위로받고 싶다

남친이 늘 하는 말중에 사람위에 사람없고 사람아래 사람없다, 인데 그게 내가 남친을 좋아했던 이유다.

그 말이 맞긴 하지만 사람은 또 간절히 타인에게 무엇보다 이해받고 위로받고 싶어 하는 법

다 같은 사람이이긴 하지만 또 다 같은 사람들은 아니라는 이 이율배반적인 이야기..

 

사야는 지금 무진장 싸움중이다

어떻게해야 이런 모든 것들을 이겨낼 수 있는 지

아니 어떻게해야 이 남은 내 삶을 잘 아우를 수 있는 건 지

그걸 아주 심각하게 고민중이었는데 저 노교수가 성공은 사실 아무 것도 아니었다고 내가 믿었던 건 어쩌보면 당신 말이 맞았다고 그러고 있는데다, 저 정선생님은 저 연세에 과거가 무슨 소용이냐고 앞으로의 삶이 중요한 게 아니냐고 묻고 있다지

 

 

백만번 고민해도 기정사실

우짜든둥 사야는 이제 남들처럼 스스로 사야를 벌어먹이거나 아님 누군가에게 빌붙거나 (그건 당근 남자고) 해야한다는 것

애정결핍증이라는 심각한 증상을 앓고 있는 한 다시 누군가를 만나게 되겠지만 사야의 성향상 타협은 못할테니 걱정되고 기대(?)되는 파란만장한 인생이다.

 

이제야 술취했슴

그래서 그만함..ㅎㅎ

 

 

2012.04.24. 서울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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