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이 고기공놈 생일이었다
마침 주말이니 서프라이즈여행을 하기로 결정.
토요일 식구들과 밥먹고 온다기에 가까운 곳으로 대충 생각해놨는데 사정이(?)이 생겨 금요일 밤 11시반에 나타났다.
사진은 없지만 그때부터 12시 들어가는 파티를 시작으로 밤을 꼬박 새우는 사태 발생.
그리고 비몽사몽간에 차려진 저 화려한 생일상. 우하하하. 처음엔 생일아침을 우리집에서 먹을 계획이 없었기에 더 대단한 아침상이다.
하루 일찍와 시간을 벌었으니 행선지를 안동으로 수정. 그러니까 이 여행은 내가 고기공놈에게 주는 생일선물이다...ㅎㅎ
갑자기 행선지 변경을 한데다 원래 뭘 미리 마구 계획하고 다니는 성격은 아니라 무작정 원주역에서 기차를 타고 안동역으로 출발.
한번은 가보고 싶었던 병산서원에서의 고기공놈. 요즘 이 놈이 운동을 무진장 열심히 해서 몸매가 장난이 아니다..ㅎㅎ 늘 강조하지만 내가 저 놈 만스무살 생일파티를 해주었는데 만 삼땡생일이 되어 함께 생일빵여행을 떠나다니
안동역에서 덜컥 택시는 타고 찾아간 병산서원. 택시기사를 잘못만나는 바람에 옴팡 바가지쓰고 기분도 나쁘고 또 생각보다 실망이었고 등등. 초반부터 꼬이기시작했다지.
하회마을은 애초에 계획에 없었는데 병산서원에서 가깝기도 한데다 묵을 곳이 마땅치않아 그리로 데려달랬더니 이 웃긴 아저씨 또 입구에 우리를 덜렁 내려놓고는 가버렸다.
우선 배가고파 장터에서 아주 실망스런 안동찜닭으로 요기를 했더니 벌써 깜깜. 하회마을 들어가는 길이 정말 칠흙처럼 어두워 엄두가 나지 않더라는 거다. 아니 그 유명한 관광지에서 어찌 그리 가로등 세울 생각을 못하는 건지.
밤을 꼬박 샌 상태라 엄청 피곤한데다 그냥 돌아갈까도 생각했지만 기차는 새벽두시에 떠나고 서울가는 고속버스를 타면 거긴 또 새벽두시에 터미널에 떨어질 상황.
아 서프라이즈여행이라고는 했지만 생일인데 고기공놈에게 어찌나 미안하던지..ㅜㅜ
그런데 그 순간 우리를 구원해준 게 있었으니 밤하늘에 반짝이던 수많은 별들. 어찌나 아름답던 지 아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이를 악물고(!) 저 길을 걸어가보기로 결정.
나도 시골에 산다만 정말 그렇게 깜깜한 길은 처음. 거기다 울퉁불퉁 1.2Km의 길을 휴대폰 불빛에 의존해 걸어가는데 어찌나 무섭던 지 온 몸이 땀으로 흠뻑.
그렇게 나는 고기공놈에게 죽어도 잊을 수 없는 멋진 생일빵을 선물..ㅎㅎ
마을로 들어서자마자 어찌 나와계시던 아주머니에게 끌려 우리가 묵었던 민박집. 방을 얻었다는 안도감에 일단은 나와 별구경 한답시고 마을 한바퀴를 도는데 현실감도 없고 하루가 참 어마어마하게 길더라.
피곤하니 잘 잤어야하는데 딱딱한 방에서 뒤척이다 아침에 깨어보니 그래도 이리 아담하고 이쁜 집. 씻기도 불편한 집이라 나와서 공공화장실에서 대충 이닦고 세수하고 돌아보니 생각보다 멋진 마을에 감탄.
하회마을 보건소다.
관광지란 생각에 안 끌리던 곳인데 막상 가보니 다시 오고싶을만큼 괜찮더라. 큰 마을이 아니기에 대충 훓어보고 버스시간이 촉박한지라 우리는 다시 도산서원으로 고고.
사진으로는 무지 자주보았던 도산서원안의 도산서당. 제법 규모가 클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보니 아기자기한게 재밌는 곳이다. 여유있게 와서 근처 고택에 묵고 퇴계오솔길이라는 곳도 산책하고 하면 참 좋을 듯.
특히나 '퇴계와 고봉,편지를 쓰다' 를 접한 고기공놈과 내겐 조금 더 특별했던 장소.
역시 이곳에서도 버스 시간때문에 충분히 여유있을 순 없었지만 날씨도 좋고 전 날 하도 실망해서인 지 모든 게 그저 감동스러웠다지..ㅎㅎ
무엇보다 이 놈과의 여행은 늘 즐겁다. (저 얼굴이 전 날도 세수안하고 아침에도 세수를 안한 얼굴이라면 믿으시겠는가..^^)
아직은 싱글이니 이런 여행이 가능하지 고기공놈 결혼하면 나로선 큰 손실이다..ㅎㅎ 그래도 좋은 짝을 만나길 간절한 마음인지라 결혼하고 열받으면 나와같이 하회마을로 떠나자고 했다..하하
생일선물이라며 떠난 여행이지만 오랫만에 나도 기분전환이 되었다.
어디 매인 것도 아닌데 개님들을 키우다보니 집을 비우기가 힘들다. 한두놈이 아니니 데리고 다니기도 그렇고. 이번에도 남친이 혼자 집보기로 하고 우리를 원주역까지 데려다주고 또 고기공놈은 안양을 직접가는 차를 탔지만 나는 여주까지 오는 차가 없었던 관계로 제천까지 마중을 나와줘 얼마나 고마왔던지
문제는 함께 가지 못해 미안하기도 하고 정말 고맙기도 한 마음으로 집에 왔더니 우리가 토요일 떠난 그 아침 그대로 먹다남은 생선뼈도 그대로 먹다남은 미역국은 상해서 냄새를 풀풀 풍기고 이번엔 두 포기나 담근 김치는 식초가 되어있더라는 슬픈 현실.
마구마구 화를 내고 생각해보니 세상엔 참 완벽한 건 없다고 뭐하나 얻으면 뭐하나는 포기하고 살아야한다는 삶의 진리를 또 한번 뼈저리게 깨달았다나 뭐라나..ㅎㅎ
우짜든둥 일박이일은 힘들더라도 가끔씩 주변여행이라도 좀 다녀야겠다는 새삼스런 각오(?)와 사진기를 구입하고 싶다는 간절한 욕망이 교차했던 시간.
(많이 찍지는 않았지만 다른 사진들은 여행방에 올려놓겠슴)
2011. 08. 30. 여주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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