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아늑한 모래실

몸이 기억하는 상처

史野 2011. 11. 2. 00:50

참 오랫만에 글을 올립니다. 거의 두 달만인가요? 예전에 몇주씩 여행을 다닐때도 이런 적은 없었던 것 같으니 이 두 달 가까운 시간이 제게 무난한 시간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하하

 

(제가 살았던 장성 그 노란 대문집입니다)

 

 

(그리고 이 사진옆의 검은 선이 제가 살던 그 집의 선이고 앞의 저 멋진 공간이 공사중 늘어난 곳입니다)

 

일부러 이렇게 오래 비울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글을 올린 시점이 추석전이었고 오늘같이 심각한(!) 제목으로 글 한번 올리려 했는데 이런 저런 일로 그게 차일피일 미뤄졌네요.

 

아니 어쩌면 이제야 이런 저런 이야기가 뭔 소용이냐 뭐 그런 생각도 있었던 듯 합니다. 사실 한국에 돌아와서부터는 제 일을 전보다 솔직히 털어놓을 수 없는 면도 있구요. 사람일이라는 게 어차피 관계에서 비롯되니 주관적인 느낌을 올리는 게 옆 사람들에겐 피해가 가지 않을까 고민하게 되거든요

 

그런면에선 정말 제가 이런 저런 이야길 털어놓을때 주변사람들이 한국말을 못 읽는게 좋았습니다..ㅎㅎ ( 아 뭐 제 가족이나 친구들은 그것도 아니었겠지만요..^^;;)

 

각설하고..

 

9월 22일 장성에 다녀왔습니다. 제가 장성을 떠난 지 2년 2개월만이었습니다. 적지않은 세월이었죠. 제 스스로도 참 뒷끝있고 독한 인간이다 생각했으니까요

 

그래도 나름은 그동안 남친을 꾸준히 어머님께 보내고 이런 저런 드실 것도 챙겨보내고 전화통화도 하고 그랬습니다. 남친에게 어머님이나 스님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 줄 알고 있었고 저는 사리판별을 못할만큼의 인간은 아니니까요.

 

절에서 오십년가까이 사신 남친의 어머님은 전에도 썼지만 참 멋진 분입니다. 제가 안가도 섭섭해하시지도 않고 제 그런 노력을 다 알아주시고 늘 고맙다고 말씀해주시고 그랬는데 올해 스님생신에는 갑자기 저를 꼭 보고싶어하시더라는 거죠.

 

그 분들을 이해하고 용서도 했는데 갑자기 그 곳에 가려니까 저 제목처럼 몸이 아프기 시작하더라는 겁니다. 신경줄이 대단히 쇠약하고 드럽게 까다로운 인간인 줄은 스스로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 정도인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또 각설하고..ㅎㅎ

 

다녀와서 내내 정말 스님이나 어머님을 미워하는 것도 아닌데 ( 정말 반가왔고 못 찾아뵌게 죄송했고 뭐 그랬습니다) 왜그렇게 이게 나를 힘들게 했을까를 고민했습니다.

 

그랬더니 장성이 내게 가졌던 특별한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18년 전, 유학중에 남편을 만난 것도 아니었던 제가 한국에서의 삶을 다 포기하고 독일로 가는 걸 선택했을 땐 나름 피나는 고민과 또 나름 제 삶에 대한 어떤 절박성이 있었습니다.

 

4년 전, 제가 갑자기 한국에 돌아와 장성을 선택했을 때도 그만큼의 고민과 절박함이 있었구요. 장성으로 내려갔을 때 저는 이혼한 상황도 아니었으니까요. 지금 이렇게 말하면 좀 웃긴 모양새가 되지만 꼭 이혼을 해야하는 절박함 그리고 나름 제가 가졌던 모든 걸 내려놓고 아주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절절하면서도 야무진 각오랄까.

 

스물일곱살에 그동안 살았던 삶의 패턴을 모두 버리고 독일을 선택했던 그때처럼 마흔살이 넘어 보장된(?) 편안함을 버리고 갑자기 산골로 들어가려던 결심도 쉬운 건 아니었으니까요.

 

소중한 사람들에게 상처주고 시작한 삶이니까 나름 고민하고 내린 내 인생의 새로운 막이니까 뭐 아시다시피 정말 열심히 집도 가꾸고 적응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었지요.

 

제가 생각했던 대로 아님 노력했던 대로 삶이 이어졌다면 저는 어쩌면 지금은 그 곳에서 약초나 벌을 키우며 이런 글 같은 건 안쓰고 있었겠죠? 그때 집에서 쫓겨나며 그런 아픔을 겪지 않았다면 지금은 다른 삶을 살고 있겠죠?

 

거의 폐허가 된 장성집을 보고나니 너무 힘들었습니다. 내가 어떤 결심으로 내려간 집인데 어떻게 가꾼 곳인데 뭐 이런 분한 마음보다는 위에 쓴 것처럼 제 삶의 어떤 결정의 순간들을 더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그리고 그 스산하기 이를 때 없는 집을 보고난 후부턴 여러 복잡한 생각에 마음을 추스르기가 어려웠습니다.

 

스님이나 어머님은 아니 특히 스님은 저희가 다시 그 곳에 돌아오길 원하십니다. 스님은 그러시면서 농담도 하시더군요. 지금도 이년만에 왔는데 말 잘못했다 다음엔 더 오래걸리면 어쩌냐구요..^^;;;

 

아 정말 저 스님 안 밉습니다. 스님은 장성이 제게 그때 어떤 의미였는 지를 모르시는 거니까요. 어찌보면 오히려 당신 인생에 그리 개판치고 나가는 인간을 처음 봤을텐데도 여전히 인정해주시는 게 고맙죠.

 

이 모든 건 이성이고 저는 특히나 이성이 지배하는 인간이라 철저히 믿고 있었는데요 이번에 아주 절실히 저는 아니라고 하는 데 몸은 기억하더리 뭐 그런 이야기입니다. 역시나 횡설수설이 되어버렸지만 그래서 사야가 참 멍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는 것.

 

그렇다고 잘못지낸 거는 아니었는데 이런 식의 자판마저 두드릴 수 있게 정리되지 않았다는 것, 꼭 그것뿐만은 아니고 그 사이 개도 잃어버리고 손님들도 많이오고 햇살은 드럽게 맑았고 책도 많이 읽었고 또 또 또 뭐가 있을까? ^^;;

 

아니 어쩌면 인터넷을 하지않고도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웹에서의 소통은 내게 어떤 의미를 갖는 가 뭐 이런 걸 고민하는 기간일 수도 있겠습니다.

 

아니 어찌보면 또 이젠 사람보다 개와의 소통에 더 집중하는 시간이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꼭 글을 올려야겠단 생각으로 글을 쓰다보니 아니 술을 마시면서 쓰다보니 제가 말하려던 걸 다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전엔 미칠것같은 외로움에 술이 취해 이런 횡설수설글도 아무 거리낌없이 썼었는데 이젠 제가 변했다는 증표인 지도 모르겠습니다.

 

생각이 많아진 건 지 아님 생각이 없어져 가는 건 지 요즘은 그 게 구분이 안갑니다..

 

 

 

 

 

2011.11.01. 여주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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