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흔적

우리 부부의 오징어젓 사랑

史野 2007. 3. 6. 11:35

나는 오징어를 좋아한다. 물오징어 마른 오징어 오징어회 오징어젓 오징어포 오징어채무침 오징어볶음 오징어가 들어간거라면 시쳇말로 환장한다.

 

독일의 한국식당 아줌마가 내가 가서 오징어볶음을 안 시키면 주문이 안끝났다고 생각하고 안가고 기다렸다...ㅎㅎ

 

오징어만 좋아하는 게 아니다 오징어친구들 문어 낙지 한치 꼴두기까지 모두 좋아한다. 독일에서 독일친구들 초대해서는 통문어구이를 했었는데 한 여자애 소리지르고 난리났었다..-_-

 

어렸을 때 꼴두기가 비쌌으니 꼴두기만 먹지는 못하고 멸치봉지에서 꼴두기 골라먹는게 취미였다.

 

가난한 우리 집을 가장 한탄한 건 이쁜 옷을 못 샀을 때나 피아노를 못 배웠을 때가 아닌 친구가 아주 큰 꼴두기조림반찬을 싸왔을 때..^^;;

 

내가 멸치봉지에서 하나씩 골라먹던 그 귀한 꼴두기를 저렇게 큰걸로 모아 그것도 반찬으로 싸오다니 어찌 충격을 받지 않았겠는가..ㅎㅎ

 

신랑도 오징어를 좋아한다. 외국인들 가장 싫어하는 한국음식이 마른 오징어라는데 울 신랑 가장 좋아하는 게 마른오징어다.

예전에 인사동에서 고등학생들이 외국인 앙케이드조사를 하는데 울 신랑 가장 좋아하는 음식에 그것도 한국어로 당당히 '오 징 어' 적었더니 놀린다고 생각하더라..-_-

 

처음 한국에 왔다가 갈때도 오징어와 고추장을 싸갖는데 울 아버님은 질색을 하시고 어머님은 신기하다고 좀 드셨다나..ㅎㅎ

 

이건 좀 다른 이야기다만 우리 어머님 참 열린 분이신데 개고기만 해도 울 신랑에게 '그게 그 문화라는데 내가 너라면 먹어보겠다'고 하셔서 울 신랑이 개고기를 먹는데 큰 역할을 하셨다..^^

울 신랑이 처음으로 개고기를 먹었을 때는 아일랜드 살때였는데(물론 한국에 왔다가) 회사가서 자랑(?)했더니 니가 인간이냐란 표정으로 쳐다보는 부류가 반 너무나 존경스럽다고 한 부류가 반 이랬단다..하하하

 

어쨌든 내가 내 남자에게 반한 것에 오징어도 한 몫을 했다. 대한극장에서 둘이 영화를 보며 훈제오징어를 먹고 있었는데 마지막 남은 걸 신랑이 먹었다. 나는 그냥 없네 그러고 말았는데 화장실에 다녀온다고 나간 이 남자 들어오다가 내 발을 툭 치는거다, 쳐다보니까 씩 웃으며 '앗 발을 쳐서 미안합니다. 대신 이걸 드세요' 하면서 잠바속에 숨겨온 훈제오징어를 내밀더라는 것. ㅎㅎ

 

그거야 연애할 때 이야기고 지금이야 어림도 없지만 어쨌든 그때 감동했다..^^ (이야기했듯이 나가기 싫어하는 이 남자 그래도 이번에 친구들 와서 술마시다가 술이 떨어져서 고기공놈이 사온다니까 자기가 나가더라.우리 둘만 있었다면 어림없다.ㅎㅎ)

 

오징어를 좋아하다보니 에피소드도 많은데 울 오빠네 식구들이 독일에 왔을 때 시댁정원에서 바베큐를 해먹고는 안 꺼진 불에 오징어를 구어먹으면 좋겠다 싶어서 아버님께 오징어 어디두셨냐니까 울 아버님' 나한테 물어볼 필요없이 냄새만 따라가면 된다' 하시더라는 것..하하하

 

우리가 상해살 때 학교의 한국학생들이 소주가 마시고 싶다길래 그럼 우리 집에서 소주파티를 하자고 하고 한국식품점에 갔다.

 

거기서 발견한 오징어젓, 그때 나야 유럽에 살다 막 동양에 왔을 때니까 오징어젓까지 판다는 데 너무 감동을 해서는 '어머 아저씨 이거 진짜 오징어젓이예요?' 물었다. 내 진짜를 정말 뭐 그런 말이 아니라 진짜 가짜로 알아들은 아저씨 왈' 아 그럼 진짜지 오징어가 뭐 비싸다고 가짜로 만들겠어요? ' ㅎㅎㅎ

 

그 아저씨 진짜 재밌었는데 여자 둘이 소주를 왕창 사니까 너무나 진지한 얼굴로 '아무리 생각을 해도 두 분이 드시기엔 너무 많은데요? ' 하하하

 

그때 오징어젓을 당장 사가지고 와서 퇴근한 신랑에게도 먹였는데, 그때가 신랑이 오징어젓을 처음 먹어본 것. 문제는 이 남자도 오징어젓에 반했다는 거다.

 

생전가야 마른 오징어나 구운 김외에는 음식을 싸들고 오는 법이 없는 나도 한국에 갈때마다 사오고 가끔 손님들이 올때도 오징어젓을 가져오는데 그때마다 우리부부사이에 오징어젓 전쟁이 일어난다.

 

마른 오징어는 신랑이 하도 좋아하고 또 맛있는 거 구하기도 어려우니까 나는 점차 안먹게 되었다. 예전 하루키에세이에도 나오는데 집에 있다보면 나가서 일하고 온 사람에게 뭔가 더 좋은 것을 주고 싶은 거고 신랑이 그렇게 좋아하는 오징어다 싶으니까 나는 아끼게 되더라는 것. 그래 내가 오징어 한마리를 통째로 구워먹는 건 상상도 못하고 신랑이 구우면 몇 개 얻어먹게 되었으니 눈물나는 남편사랑이다..ㅎㅎ

 

그런데 아무리 신랑이 좋아하고 역시 구하기 어렵다고 해도(여기도 판다만 그 맛이 안난다) 오징어 젓은 양보가 잘 안된다.

 

아 참 올케언니가 오빠랑 나줄려고 오징어젓을 사러갔더니 오빠가 왜 그렇게 싸구려만 사냐고 명란젓도 사고 창란젓도 사라고 하더라나? 울 언니 비싸고 싼 거의 문제가 아니야 오징어젓만 먹는다잖아..^^

 

이번에 한국에 갔을 때 나와 묵었으니까 그녀가 오징어젓을 그것도 큰 통으로 두 통이나 사다줬는데 (아 마른오징어도 주로 그녀 담당인데 요즘은 신랑이 다이어트한다고 잘 안먹는다..^^) 한 통을 다 먹었을 때까진 괜찮았지만 두 통째에 들어가니까 서로 견제를 하게 되더라는 것

 

신랑이 집에 와서 오징어젓을 달라고해서 주면 또 달라고 하는데 그때 너무 밉더라는 거다. 그리고 신랑은 신랑대로 나 회사가면 너 다 먹을거지? ㅎㅎㅎ

 

그렇게 한국 다녀온지 한달도 안되어 그 큰 통 두개가 사라졌다. 우리부부 또 그녀가 올 때만 기다렸고 역시나 그녀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또 큰 통 두개를 들고 나타났다.

 

여행 떠나기전 그 오징어젓을 먹으면서 울 신랑, 자기가 여행다녀오면 없을 거니까 미리 많이 먹어둬야한다나. 걱정말라고 최소한 한 통은 남겨놓는다고 했는데 진짜로 한 통은 거의 비어간다.

 

어제 또 오징어젓을 세 번이나 가져다주며 충분히 있으니까 걱정말라고 큰 소리를 쳤는데 솔직히 말하면 한 통은 신랑거니까 이제 내가 먹지 말아야 공평한거지만 그게 어디 될 말인가

 

나는 식탐이 없어서 술은 모를까 음식가지고 신랑을 견제하는 일은 없는데 신랑이 오징어젓 달라고 할 때마다 얼굴은 웃어도 손떨리게 생겼다..ㅎㅎㅎ

 

시누이가 한국갔다 엿에 맛을 들여서는 먹고 싶은 걸 맘대로 못 먹고 사는게 여행자의 서러움이라고 했는데 나야말로 오징어젓이 떠도는 삶의 서러움이다.

 

물론 귀하니까 이렇게 절실한거겠지 한국에 산다면 어디 오징어젓이 이런 귀한 대접을 받겠는가..^^

 

 

 

 

 

2007.03.06 Tokyo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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