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계약기간이었던 삼년 간의 도쿄 1악장이 끝나고 드디어 2악장이 시작이다.
계약연장은 2년이지만 삼년 비자를 받고 오늘 구청에 가서 외국인등록변경까지 마치고 왔다.
재밌는 건 갑자기 우리 구에 한국인이 늘었는지 오늘 볼 일을 보는 사람들중에 한국인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것. 이것도 한류의 영향일까?
원래는 어딘가 갈 생각이었지만 기분도 묘하고 날씨도 꾸물거리길래 포도주 사들고 그냥 집으로 왔다.
날이 날이니만큼 이 곳에서 포도주를 마시는 건 즐겁기도 괴롭기도 하다란 생각을 하며 터덜터덜. 포도주를 마시기위해 독일로 돌아가야한다는 건 좀 우습긴 하지만 하도 마셔대니 나날이 고급스러워지는 혀를 감당하기엔 이 곳 포도주는 너무 비싸다.(아 뭐 그래도 한국보다야 싸다만)
우짠든 하루 이틀에 결정된 문제가 아니지만 막상 새 비자가 찍힌 여권을 받아드니 마음은 좀 복잡시럽다. 여기서 총 오년을 보내게 되면 주재원생활중 가장 긴 것도 모자라 내 독일에서의 체류기간보다 길어지니 어찌 안그렇겠는가. 서울 다음으로 내가 가장 오래 거주한 도시가 될 거니 말이다.
그 삼년동안 신랑이야 미치도록 바빴지만 나는 무엇을 했나 싶기도 하고 앞으로는 무엇을 해야하나.
결정되기 전에 난리를 쳤던 것처럼 독일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런 생각은 이제 하지 않고 '내 인생아, 될대로 되라' 뭐 이런 기분으로 마음은 편하지만 말이다..ㅎㅎ
1. 아파트이사문제
일본체류가 확정되면 무조건(!) 이사하기로 했던 것도 요즘은 마음을 비웠다. 물론 이사를 나가려면 최소한 삼개월전에 통보를 해주고 집을 알아봤어야하는데 아버님때문에 이래저래 왔다리 갔다리 하다보니 이제야 집문제로 난리를 친다는 것도 막막하다.
그러다보니 이 아파트, 정말 미칠정도로 한동안 마음에 안들었는데 다시 정붙이기 작업을 하는 중이다.
우리 아파트의 최고장점은 물론 전망과 위치다. 어디 도쿄시내 한복판에서 이렇게 환경좋은 곳에 살 수가 있겠는가. 그리고 42층에 있는 헬스클럽도 무시할 수가 없다. 운동을 할때야 늘 바깥만 보고 하는 것은 아니다만 42층에서 운동하고 가끔 사우나하고 그러는 맛도 내가 도쿄에 사니 해보지 언제 해보겠는가 (죽어도 트레이너때문이라곤 말안한다..ㅎㅎ)
거기다 날씨가 추워지니 거실과 부엌뿐일지라도 바닥에 불이 들어오는 것도 너무 좋다. 이러며 날이면 날마다 이사하지 않아도 될 조건들을 따지고 있는 중..-_-
트레이너는 그럼 이 아파트내에서 이사하면 어떠냐고 하던데 우리야 이해할 수 없는 사정상 너무 비싼 월세를 내고 있기도 하니 좀 큰 아파트로의 이사가 불가능한건 아니다만
원래가 거주용으로 지어졌다기보다 주재원을 위한 아파트다보니 불독커플아파트처럼 바다같이 넓어 화장실이 세 개인 아파트도 침실이 두 개였던데다 아무리 신랑이 승진을 해서 월세를 좀 올려달라고 할 수는 있어도 그만큼은 어차피 어림도 없고 방 세개짜리 아파트라면 지금처럼 좁을 건 마찬가지.
거기다 도쿄타워가 보이는 방향이 당연히 더 비싼데 삼년간 정이 들어 그런가 여기 살면서 아무리 좀 넓은 집이라도 도쿄타워가 안보이면 무지 섭섭할 거 같은 기분.
이렇게 구구절절히 읊어대는 건 역시 이사를 하고 싶은 마음은 많다는 거겠지만 일단 포기하고 십년도 넘게 쓰고 있는 가구들이나 좀 바꿔볼까 생각중이다. (이것도 한국증권을 샀다가 새가구 비용보다 더 날리셨다는 부군의 보고로 실현가능성이 별로 없어보인다만..ㅎㅎ)
아파트를 옮기지 말기로 하면 가장 좋아할 남자는 공적이건 사적이건 이사를 담당해야하는 내 남자인데 내가 요즘 워낙 닥달을 안하다보니 대충 눈치는 챘을거다.
어쨌든 이사를 하지 말아야겠다 생각하는 내게 들려온 좋은(?) 소식은 내년부터는 전기세와 난방비를 각자 부담하게 되었다는 것.
하루 이틀도 아니고 전기세 난방비 내어본 적이 없는 생활 이제 만으로도 구년이라 갑자기 어떻게 적응을 해야하는지 모르는 마당에 넓은 집으로 이사 안가는 게 얼마나 다행이냐 또 자기 합리화를 하는 중..^^;;
2. 일본어
광고(?)를 대단히 했다시피 내 문제는 독일어인데 막상 여기서 이 년을 더 살게되면 일본어가 더 필요하단 생각.
나야 뭐 언어배우는 게 취미다보니 별 문제될 건 없는데 학원을 다니려면 돈이 문제다. 지금 일본어를 잘하는 건 절대 아니지만 그래도 먹고 살기에(?) 아주 부족한 건 아니니 대충 개겨야할까 아님 이년을 바라보고 좀 투자를 하는게 나을까 아직도 결정을 못한 상태.
돈만 문제이면 덜 골치아프겠지만 언어 열심히 하는데 시간도 장난이 아닌데 독일어는 그럼 어떻하나 하는 걱정도 들고 말이다
더 보태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내가 여기 살게 되면 영어도 더 필요한데 이렇게 버벅대고 사는것도 자존심 상하고 물론 일본에서 3악장까지 연주(?)해야할 상황은 안 생기겠지만 또 다른 나라라도 가게된다면 독일어보다 내 인생에서 중요한건 영어인데 하는 위기감도 무시 못하겠다.
언어를 다섯가지나 하지만 이젠 한국어도 그렇고 뭐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이 공포스러운 상황에 대한 대비책이 전무랄까.
3. 아이문제
아이문제가 도쿄 2악장이랑 무슨 상관이 있냐고 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어쨌든 내가 아이를 낳을려고 나름 노력을(?) 한게 도쿄 와서고 앞으로 도쿄를 마감하게 될 때는 내가 아이를 전혀 낳을 수 없을 나이로 진입을 하는 관계로 이것도 조금은 고민이다.
내가 정말로 아이를 원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차피 인생이 허무의 과정인데 뭔가 집중하는 일이 있으면, 그러니까 그 허무를 조금은 상쇄하는 대상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는 거다.
입양은 내가 올해들어 처음으로 두 번이나 남들에게 들어 충격(?)을 좀 받기도 했는데 한분은 우리 이모. 날더러 딸이라도 하나 데려다 기르면 어떻겠냐였고 울 시어머니 입양은 생각없냐고 조심스레 물으셨던 것.
물론 자연임신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었을때 시험관아기보단 입양이 어떻냐는 신랑의 의견도 있었지만 내가 아이가 꼭 있었으면 좋겠다는 모성애 자체가 없는 상태에서 입양은 불가능하다.
더 나아가 나는 차인표부부나 졸리부부가 입양을 하는데도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아이는 정성을 다해 키워야하는데 그렇게 바쁘고 또 방금 아이를 낳거나 한 사람들이 애보는 사람을 들여서 애를 키우는 게 뭐가 바람직하고 대단한건지 모르겠다.
그럼 친자식도 없고 할 일도(?) 없는 나같은 애가 딱 입양을 해야하는데 나는 애에 대한 로망이 없다보니 남의 아이를 데려다 키운다는 걸 어찌 생각하겠는가
그럼에도 아이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하는건 자꾸 원초적인 즐거움이 적어지는, 나이들어가는 신랑이 안쓰러워 보이기때문이기도 하고 혹 나도 나이가 들어 자꾸 약해질때 누군가가 있으면 좋지 않을까하는 이기적인 생각때문.
물론 시험관아기를 시도한다고 되라는 법은 없지만 마유미말대로(마유미는 시험관아기가 아니라 유산을 몇 번 하며 아이를 포기하게 되었는데) 최소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나이에 나름 최선을 다하면 아이없이 늙어가는게 훨씬 즐거움(?)이 될거라는 충고때문에라도 시도는 해봐야하지 않을까하는 왠지 찝찝함.
이건 신랑과는 이미 없이 잘 살기로 이야기가 끝났는데 그냥 나혼자 뭐가 우리 두 사람에게 더 나은 생을 위한 길인지 고민하게 된다.
4. 탱자팔자.
아시다시피 나는 탱자팔자다. 아이도 없고 직업도 없고 그렇다고 프로주부도 아니고 그저 나하고 싶은대로 사는 인생.
나는 그리고 이 마음대로 해도 되는 내 인생이 아직까지는 아주 마음에 든다
이건 3번에 올인하게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긴 하겠지만, 거기다 쓸데없이 그런 일에 돈을 투자한다면 내가 쓸 돈이며 시간이 훨씬 줄어든다는 의미니까 뭐 생각하고 어쩌고 할 문제도 없지만 3번의 가능성보다는 이 가능성이 많으니까 역시 고민을 하는 문제.
누군 안그렇겠냐먄 점차 나이가 들어가다보니 인생에 대한 생각도 자꾸 변하게 되고 내가 지금만 살게 아니라 이십년 삼십년 사십년 뭐 이렇게 살게 되지 않을까 희망하는데 과연 어떻게해야 잘 늙어갈 수 있느냐 혹은 족한 삶이었다고 말할 수 있느냐 뭐 그런 문제말이다.
누군 계속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고 난리인데 내가 그림을 그리며 늙어갈 상황은 아니고 노래를 부르며 늙어갈 상황도 아니고 솔직히 지금으로선 사진을 찍으며 늙어가고 싶지만 이것도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힘든 상태.
내 감각이라는게 한계가 있어 괴로운 시점인데 뭔가 체계적으로 배우기엔 또 금전적 문제도 그렇고 여러 상황이 암담하다. 잘 찍고 싶은 마음은 있으나 가장 중요한 건 거기에 대한 열정이 부족하다고 할까..ㅜㅜ
언어라는 거야 끝이 없는, 말하자면 인격수양 뭐 이런 거랑 같으니 할 말이 없고 뭘하고 어떻게 살아야 만족스러운 늙은이가 될 것인가 묻고 또 묻는 상황
일본에 살고 있으니까 한국과 일본의 문제에 지금처럼 교양수준이 아니라 파고들어가볼까 싶은 욕심도 있긴 한데 워낙 그 문제를 내가 학교라는 곳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한데다 한국의 사료나 사관등이 중구난방이다보니,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너무 과장되고 진실(?)이라는 게 없다보니 하다보면 또 원점으로 돌아오기가 일쑤다.
오늘 혼자 마구 열을 냈던 독립군문제만 해도 기록된 독립군사에 역사적 사실은 10프로밖에 없는 듯하니 말이다.
이렇게 나름은 생각을 정리해서 쏟아낸다고 쏟아내도 나야 원래 고무공같아 무엇에 탄력을 받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간.
어쨌든 이런 저런 속을 주절거리며 내 도쿄생활의 2악장을 축하하는 중.
모든 인생사가 그렇긴 하지만 내가 도쿄에서 연장을 하게 될 줄은 일년 전만해도 생각하지 못했던 사실.
얼마전에 썼듯이 나는 도쿄가 좋고 또 나란 인간이 뭔가 결정되면 좋은 면만 보는 인간이긴 하니 기대도 좀 있고..
이래저래 대낮부터 내 미래를 위해 혼자 건배중이다.
2악장이 시작이다!!!!
결과에 어찌될른지 며느리도 모르지만 시작이야 늘 가슴이 떨리는 거 아니겠는가..^^
2006.11.28. Tokyo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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