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도는 흔적

슈베르트가 난해하다니!

史野 2006. 12. 6. 09:28

 

 

어제 간 음악회는 아르카디 볼로도스의 피아노 독주회였다.

 

맨날 매진인 이 곳에서 예상외로 표를 살 수 있어서 행복했는데 왠걸? 막상 가보니 홀이 많이 비었다. 우리야 워낙 유명한 사람 음악회를 주로 가니 만석이 보통이라 그 분위기가 참 낯설었다. 아니 이 양반도 한 유명하는데 일본처럼 클래식음악 매니아가 많은 나라에서 이렇게 비다니.

 

괜히 연주자에게 미안한 기분..ㅎㅎ

 

72년 러시아 생페테르부르그에서 출생한 이 남자는 어찌나 뚱뚱하던지 또 내 남자의 오늘이 피아노연주회가 아니라 오페라 아리아 연주회였냐는 썰렁한 농담을 들어야했다지..^^

 

어쨌든 슈베르트의 악흥의 순간과 리스트곡은 미정이라는 정보를 갖고 간 음악회.

 

악흥의 순간이 내게 그리 익숙한 곡은 아니지만 아예 모른다고 생각한 건 아닌데 이건 완전 새 곡에 새 분위기인거다.

 

듣는 내내 아 슈베르트도 이렇게 난해할 수가 있다니. 편견이란 참 무서운게 현대음악을 가끔은 듣는 나기에 현대음악이라면 그냥 그러려니 할텐데 슈베르트다 생각하고 들으니 더 어렵더라는 것.

 

도대체 언제 음악이 끝나는 건지도 모르겠더라. 그래 전반이 끝나자마자 신랑에게 '자기야 슈베르트도 이렇게 복잡한 음악을 작곡했구나' 울 신랑 '그러게 곡 치기만 그런게 아니라 자체도 복잡한 건가봐' ㅎㅎ

 

포도주 한 잔 마시면서 피아노를 진짜 잘 치긴 잘 치는데 완숙미는 없는 것 같다는 둥 지 무식한 건 탓하지 못하고 궁시렁 궁시렁.

 

그 마누라에 그 남편이라고 연주하는 내내 계속 화장실가고 싶은 표정이더라는 농담이나 하고.

 

후반부는 리스트인데 아 여기선 확 다르다. 그의 엄청한 테크닉이 화려하다 못해 숨이 막힐 정도로 연주되는데 정말 대단한 분위기.

 

거기다 고음에서 손가락 마구 움직이는 거 그거 뭐라고 하는 것 같던데 어쨌든 그런 테크닉은 한마디로 예술.

 

손가락이야 안보이지만 앞에서 셋째줄에 앉었기에 그가 온몸으로 느껴지는데 이래서 음악회를 온다는 생각이..

 

더 감동적이었던 건 이 남자가 앵콜곡을 다섯 개나 연주했다는 것. 그것도 보통 가볍게 연주하는 곡들이 아닌 역시 머리(?)깨지는 곡들로..ㅎㅎ

 

네 번째인가 곡명은 모르겠어도 멜로디가 내게 무지 익숙한 곡을 연주할때 내가 너무 감동이 되어 신랑에게 그랬다. ' 자기야 난 딱 이 수준이야. 피아노 진짜 잘 친다..ㅎㅎ'

 

다섯 번째 곡은 모든 건반을 다 이용하는 곡이었는데 결국 사람들이 부라보를 외치는 걸 넘어서 기립박수를 마구 쳐댔다.

 

역시 감동스런 표정으로 그가 뭐라고 한마디 하는데 난 못 알아들었지만 신랑말로는 러시아말로 고맙다고 한거라나..^^

 

돌아와서 당장 인터넷을 검색해 악흥의 순간을 들어보니 그럼 그렇지 역시나 엄청난 편곡에 변주에 무식한 내가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새로운 해석! 내 수준은 아니었슴..ㅎㅎ

 

어쨌든 테크닉도 그렇고 힘도 그렇고 그가 관현악단이랑 연주하는 황제를 한 번 들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의 레퍼토리인지는 모르겠다만..^^;;)

 

연주회는 언제나 기분이 좋다. 거기다 오늘 너무 이쁘다는 신랑의 칭찬도 마구 듣고 진짜 뿌듯한 날..ㅎㅎ

 

 

 

크리스마스 분위기 가득한 산토리홀을 향해 내려가는 길

 

 

음악회 끝나고 나와 메시지를 확인해보니 크리스토프는 나타나질 않았고 파트릭은 전화회의중이라니!!

 

웬수땡이 신랑은 음악회에 올때부터 또 몸살끼로 난리여서 어찌보면 다행이지만 그래도 섭섭한 마음으로 집으로 걸어 오는데 도쿄도 꽤나 쌀쌀해졌다.

 

나야 겨울코트를 입고 나갔지만 아직도 트렌치코트차림인 신랑은 덜덜 떨며 걷다 그런다.

 

' 더블린같다 음악회끝나고 덜덜 떨며 버스기다리던 거 생각나냐?'

 

' 그러네. 그래도 버스기다리는 것보단 걸어서 집에오는게 나으니 발전이다..ㅎㅎ'

 

이렇게 오백만년만의 뿌듯한 음악회 외출을 마무리..^^

 

 

 

 

 

2006.12.05. Tokyo에서 사야

 

 

2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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