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따뜻한 은신처

아름답고 따뜻한 사람을 그대로 닮은 책

史野 2017. 2. 21. 23:43




지난 번 얘기했던 조카의 저 책을 드디어 다 읽었다

귀하고 비싼 음식은 쉽게 먹을 수 없는 것처럼 왠지 아주 소중히 다루고 정성을 다해 아껴 읽어야할 것 같았다

요즘 밥도 서서 먹는 사야는 혹 책이 더렵혀질까봐 책도 서서 읽었다..^^;;


1991년 10월 16에 태어났으니 아직 만으로 스물다섯인 청년.

마침 그 날은 사야가 첫출근을 하기도 했던 날. 우연히도 조카가 태어난 병원이 근처라서 병원에 들렸다 갔던 관계로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날이기도 하다.

재작년부터 작년까지 십개월간 네덜란드에 인턴사원으로 나가있을 때 여행한 것 포함 5년간 18개국을 여행할 때 찍은 사진들과 짧은 소회같은 걸 담은 필름에세이다.

가장 놀라왔던 건 그 사진들을 전부 디카가 아닌 필름카메라로 찍었다는 거다.

필름이 아까와서 또 현상전까지는 제대로 볼 수 없으므로 더 정성스레 피사체를 바라봐야하는 그 추억의 필름카메라라니..

91년생인 조카는 자기보다도 더 나이가 많은, 중고로산 89년산 미놀타 X-300이라는 필름카메라를 구입해 그 많은 시간들을 함께 했단다.


사진들도 넘 좋지만 중간중간 끼어있는 글들이 사야는 사진보다도 더 좋았다.

주로 사진들이고 글들은 얼마없어 안타깝더라지.

때론 오랜만에 깔깔대고 웃었을 정도로 유머러스하고 때론 진지해서 경건한 마음이 들기도 하는, 여행지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조카의 성품과 닮았다.

그리고 그건 조카의 아버지인 민들레님 딱 큰형부의 성품이기도 하다.

물론 아직까지는 아버지를 따라오려면 멀었지만 그 아버지의 나이가 되었을 때는 아버지보다 더 근사한 인간이 될거라는 믿음이 들더라.

늘 열린마음으로 세상을 대하고 겸손함으로 누구라도 품는 울 형부와 좀 까칠하긴해도 똑똑하고 현명한 언니의 합작품이니 말이다

(여기서 언니에 대한 표현은 형부가 자기 와이프를 표현할 때 쓰는 거지 사야의 평가가 아니다..ㅎㅎ)



사실 사야는 조카가 태어나고 이년후에 한국을 떠난데다가 돌아와서도 거의 서울을 떠나살아서 조카의 성장을 지켜볼 기회는 별로 없었다

그나마 유럽에 살던 칠년간은 한번 나오면 한달씩 있곤 했으니 언니네 집도 가곤했지만 아시아에서는 겨우 일주일씩 있었기에 일년에 두번 얼굴 잠깐 본 정도. 다행히 홍콩살때 식구들이 놀러왔었기에 며칠 함께 있을 수 있었던 게 행복한 시간을 보낸 전부.

그러니 사야가 기억하는 조카는 대부분 꼬맹이시절인데 어느 새 이리 멋진 한 인간으로 성장을 했으니 감동이다.

여기 그 에피소드를 다 쓸 수는 없지만 어려서부터 배려심이 많고 따뜻한 아이긴 했다.


멋진 책을 읽으면 저자가 넘 궁금해지는 법인데 그게 사야가 아는 사람이고 거기다 조카라니 어찌 감격스럽지 않겠냐

워낙 독실한 기독교인이라 솔직히 읽기전에는 종교적 색채가 드러나 있지 않을까 조금 우려(?)했었는 데 끝이라고 쓴 글에도 없어서 신기했다(물론 결국 배신하지 않고 마지막장에 넣긴넣었더라만..ㅎㅎ)

사야가 능력만 있었다면 다시출판해서 사야가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선물해주고 싶은 그런 책이다


어쨌든 사야는 조카가 많이 부럽다. 그 나이에 그리 많은 곳을 그것도 배낭여행으로 다녔다는 것도 부럽고 어느 곳에서도 배낭여행의 궁상스러움이 느껴지지않는 그 마음의 여유가 부럽고 함께한 친구들이 있었다는 것도 부럽고 사진마다 녹아있는 그 세상을 향한 따스함이 부럽다

특히 인도여행이 부럽더라. 사야야 겨우 뭄바이 그것도 타지마할같은 호텔에 묵었으니 인도를 제대로 봤다고 볼 수도 없지만 무엇보다 콜센터시절 인도인들에게 하도 데어서 편견으로 가득했던 마음은 애초에 인도를 제대로 보고싶은 마음도 없었다.


사야도 꽤많은 나라를 돌아다니긴 했지만 결혼후였고 거의가 돈을 싸짊어지고(?) 다닌 여행이었던 관계로 더 부러운 지도 모르겠다

(사실 남편과도 한번 배낭여행을 하긴 했는 데 슬프게도 그게 마침 한국이었다..ㅎㅎ)

그래서 어쩌면 숙소도 정해놓지 않고 혼자 떠났던 프라하나 홋가이도가 기억에 많이 남는 이유인지도...

아니 인도에서 17시간 기차를 탔다는 조카처럼 사야에게도 두 여행이 다 기차여행이었기 때문일지도..

일종의 변명이기도 하겠지만 사야는 당시 늘 삶이 긴 여행같은 기분이었던 지라 그 여행에서 잠시 떠나면 그저 쉬고 싶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여행중의 거의 반은 호텔방아니면 수영장이나 바닷가에서 책만 죽어라 읽었으니까.. 



오랜만에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아니 여행이라기보다는 쿠바같은 곳에 가서 원룸하나 몇 달 렌트해 떠돌다 돌아올 곳이 있는 그런 형태의 떠남말이다

예전에 사야가 꿈꿨던 파리로의 육개월 일탈 뭐 이런 형태도 괜찮겠다

오전엔 언어를 배우고 오후에는 그 주변을 떠돌고 또 주말엔 그 도시를 벗어나 보는 그런 경험말이다

까맣게 잊고있었는 데 육십살 정도 되어 하바나 어느 구석동네에 짐을 풀고 스페인어를 배우며 저녁이면 허름한 바에서 생음악들으며 맥주한잔 마시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지금부터라도 꿈꾸어 볼까나..ㅎㅎ


지금도 그랬지만 우짜든둥 조카의 책은 한동안 책꽂이에 꽂지않고 자주 들춰볼 생각이다

예전 복사본책처럼 확 펼치면 책이 떨어질까봐 여기 사진을 몇 컷 올리지 못하는 게 아쉽다.

글이라도 올리고 싶지만 책을 구기지 않고 자판두드리기도 쉽지 않네.



대신 조카가 쓴 자신의 소개글을 올린다


'낡은 필름카메라를 들고 자주 먼 곳으로 떠났습니다. 여행지의 정취를 필름안에 담는 걸 좋아하고 게스트하우스의 루프탑에서 쏟아지는 별과 함께 맥주 한잔하는 걸 좋아하는 그저 평범한 청년입니다. 특이하다면, 머리가 크고 얼굴이 길어 마주 보고 있자면 이목구비가 서로 외로워보인다는 점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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