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묻은 삶

그녀 Hanna

史野 2015. 11. 3. 04:24

사야가 시어머니를 처음 만났던 게 92년 8월이니 23년이 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얼굴을 본 건 2007년 8월이니 15년을 만나다 8년을 헤어져 살았다


32년생이니 사야랑은 서른 다섯살 차이고 올해 한국나이로 여든넷

굉장한 미인이었던데다 부유한 집의 세딸 중 장녀로 태어나 공주같이 자랐다.

어린 시절엔 우리가 영화에서나 보는 것처럼 기다란 식탁에 여러 하인들이 식탁시중을 들던 뭐 그런 모습.


시댁엔 괴테시절 그러니까 18세기의 장이 하나 있었는 데 우리나라에서 시집갈 때 오동나무 옷장을 해주는 것처럼 혼수였을 그 장은 못은 하나도 안박혀서 분리가 가능했던 그리고 이백년이 넘었어도 여전히 아름답던 장.

거기다 무슨 골동품이 아니라 그냥 그대로 이런저런 물품을 담아두곤 했던 그런 장 말이다.

거긴 우리가 모카잔이라고 불렀던 에스프레소 잔이 들어있었고 술같은 것도 들어있어서 사야도 수백번 열고닫았던 장이다.


자세한 그 집안 사정은 모르겠고 또 그게 지금 중요한 것도 아니고

사야가 지금 쓰고 싶은 건 그녀에 대해서다.

사야가 블로그를 시작한 후 무진장 언급이 되었겠다만 오늘은 정말 딱 그녀의 이야기만..


그렇게 공주같이 살던 그녀는 전쟁도 거치고 직장을 따라간 부모와 헤어져 조모랑 살기도 하다 우리식으로는 고삼때 부모랑 합류하게되는 데 그녀가 살던 뮌헨이랑 부모가 살던 드레스덴의 학제가 달라 그러니까 수능을 한해있다 봐야한다는 인생 최초의 어려움에 부딪히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그 오랜 인생을 통틀어 가장 후회하게될 그 시험을 포기하게 된다

대학교수였던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의 그런 결정에 급실망하게 되고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의 그 결정을 존중해주게 되는 데 결국 또 그 어머니의 그 존중은 그녀의 평생을 잡는 발목이 되기도 한다.


어쨌든 그녀는 대학을 꼭 가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간절한 소망을 뒤로한채 아예 집을 나가 낯선 도시에서 유치원 보육교사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이 시점에서 사야에게 가장 황당했던 건 그 집엔 세탁기도 없어서 빨래를 다 모아 우편으로 보내면 그녀의 엄마가 그걸 다시 다림질까지 다해서 또 우편으로 보내줬다더라. 그녀보다 서른다섯살이나 어린 사야도 손빨래 다하며 컸는 데 빨래를 우편으로 보내고 어쩌고 진짜 이 무슨 말도 안되는.^^::)

그리고 그녀는 또 하노버로 옮겨가 거기서 삶을 시작하게 되는 데 당시 하노버공대생이였던 한 남자가 동료생들과 함께 드레스덴대학으로 현장학습같은 걸 가게되고 그 대학의 교수였던 그녀의 아버지로부터 그녀의 연락처를 얻게된다.

그녀만큼 미남이었던 그 남자는 하노버로 돌아와 그녀와 만나게 되고 첫눈에 반하고 결국 약혼까지 하게 된다


그런데 아버지를 거역할만큼 독자적이었던 그녀는 약혼후 결혼을 하는 선택보다 또 대학을 다니던 약혼자와 그냥 만나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자신을 더 업그레이드시켜야겠다며 전문대에 진학하게 되고 전문대학시절 사년 총 육년간 그 남자를 미치게 만들게 된다.

물론 그 남자만 그리 생각했고 그녀는 파혼이었다고 자긴 기다리라고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 둘은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게되고 그녀의 한국나이 서른 넷에 첫아이 그러니까 사야의 전 남편이 태어난다..ㅎㅎ

그리고 또 삼년뒤엔 못 가질 줄 알았다던 시누이도 선물같이 태어난다.

(그 자식들은 뭐 이해못할 바는 아니다만 부모가 늙었다는 이유만으로 나름 지들은 힘든 어린시절을 겪는다.)


우짜든둥 그 둘은 자식들을 둘 낳고 지금의 안식처인 뮌스터에 집도 사고 우리식으로 따지면 건설부 공무원인 남편이 그 도시의 건설청 책임자도 되고 돈은 없지만 그래도 나름 두 자식을 알뜰하게 키우며 평범한 삶을 살게 된다

그러다 그녀의 남편이 승진을 하게 되는 데 안분지족의 삶을 원했던 그 남자는 거절하게 되고 (이게 울 시아버지인 데 지금은 그 이야길 하는 게 아니니 빼기로 하자) 맘대로 살았던 처녀시절과 달리 그냥 주부였던 그녀는 그냥 그걸 아프게 받아들이고 그렇게 삶은 흐른다.


시기야 다르다만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엄마처럼 그녀도 스카웃도 시키고 승마도 데려가고 그냥 온 삶을 남편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게 된다.

그러다 그녀가 커가는 자식들을 보며 나름 자신의 삶을 유지하려고 생각했던 게 리코더와 이태리어.

일주일에 한번은 레슨을 받고 혼자 연습하고 공부도 하고 그렇게 환갑이 되었을 때 그녀는 아들의 한국애인과 마주하게 된다.

환갑잔치(?)를 마치고 폴란드로 삼주간 자전거여행을 다녀왔더니 그 한국여자애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더라고..ㅎㅎ


그녀는 사십년을 넘게 안맞는 남자랑 살았다

사랑하는 거랑 맞는 거랑은 또 다른 문제다. 그러니 아프고 속상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사야가 본 그녀는 늘 그랬다. 가끔은 정말 그 남편이 미워 사야앞에서 울었다. 그리곤 또 그 남편이랑 똑닮은 아들이랑 사는 사야때문에 위로받고 혹은 또 그 사야를 위로하고..


그런데 그 남자는 처음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고 약혼하고도 육년을 기다렸고 그 오십년을 한결같이 그녀를 사랑했다.

그녀가 유방암때문에 한 가슴을 절단하고 누워있던 그 때 그녀의 팬티를 정성스레 다려온 그 남자가 웃으며 그랬다

난 처음부터 당신 얼굴이 예뻐서였지 가슴이 예뻤기때문이 아니었다고..

오래된 유럽식 건물이라 창문이 무지 컷고 그날은 날씨도 좋아 그 창문으로 햇살도 가득했는 데 그런 부부를 바라보고 있던 사야는 그냥 무작정 좋았다.


그 남편이 최선은 아니었는 데 그녀는 나름 최선을 다했고 역시 최선은 아니었던 사야의 남편에게 최선을 다하는 사야를 그녀는 있는 그대로 간절히 응원했다

사야가 남편때문에 조금만 힘들어해도 잘 키워보내지 못해 미안하다고

그래 그녀는 그랬다

그녀가 얼마나 잘난 집안에서 태어났는 지를 저 위에 강조했던 건 그때문이다

내가 얼마나 괜찮은 집 자식인지 아냐고 그녀가 말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슬프게도 그녀는 늘 내가 얼마나 부족한 인간인 지만 말했다

지난 날과도 그 누군가와도 그녀는 비교하지 않았다

그건 총체적으로보면 그녀가 부모를 실망시킨 일종의 트라우마인데 그리고 사야의 전남편에게나 시누이에게나 사실 주지 말았어야하는 자기반성의 모순이기도 한데 어쨌든 그녀는 그랬다.

두살 어린 동생은 물론 여덟살이나 어린 동생뿐 아니라 서른다섯살이나 어린 사야에게도 그녀는 그랬다

너희는 어쩌면 하는 것마다 이렇게 멋진거니? 라고..


다림질이건 음식이건 칭찬할 때마다 그녀는 웃으며 그랬다

이걸 내가 몇 년을 하고 있는 데 그러냐고 넌 내 나이가 되면 훨씬 더 잘할 거라고..

윤리점수를 잘못받아와도 윤리는 도덕 그러니까 그건 니가 엄마말을 안들었기때문이라는 말을 듣고 자란 사야에게 그녀는 거의 신기루였다

그래서 오히려 사야는 그런 그녀가 벅차 많이 싸우고 니가 그러니까 내가 하고싶은 말도 못하는 거 아니냐고 소리도 지르고..


신파를 찍으려는 건 아니다

그녀를 보내려는 거다

토요일 전화를 받고나서부터 느낌이 안 좋다

갈 수 없다면 사야도 나름은 이별의 과정이 필요하다.

오늘도 누가 묻던데 사야 안간다

남편과 헤어지고 나서 시어머니가 울고불고할 때 사야가 약속했더랬다

네가 필요하다면 난 언제든 지 네 곁에 있어줄거라고..


근데 그 그녀는 우리가 행복했던 그 오랜 시간이 아닌 사야가 아픈 시간만 지금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못간다. 안간다

그저 그녀를 자식들보다 구구절절히 기억하고 있는 한 인간이 여기 있다는 걸 굳이 남긴다

그녀를 사랑하니까

기억한다는 건 또 무슨 의미일까도 백번 고민했다만 또 그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까

살아있다는 건 누군가를 기억하는 일이니까

그 기억속에 사야는 그녀를 품는다고..

결코 그렇게 외롭게 두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는 데..


그러고보면

이제 십년이 다되어가는 시아버지가 더 행복했을까

그땐 정말 시누이랑 번갈아가며 거실에서 쪽잠자고

음식만 들여가면 하도 화를 내셔서 시누이랑 서로 니가 들어가라고 문앞에서 실랑이도 하고

한밤중에 나타난 시아버지랑 옛날 이야기도 하고 그랬었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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