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아늑한 모래실

아슬아슬한 일상..ㅎㅎ

史野 2013. 9. 16. 23:21

 

 

 

 

맘이야 지옥을 왔다갔다한다만 그래도 살아야하니까 우여곡절끝에 다시 데려온 울 씽씽이.

워낙 듬직한데다 말도 잘 듣고 등치는 산만한 놈이 애교까지 있어서 사야에겐 든든한 지원군이다만 어제도 썼듯이 사야는 너무 힘들고 갈피를 못 잡겠다.

 

 

 

열흘만에 다시 돌아온 집. 빨래도 하고 왔다리 갔다리하는데 껌딱지처럼 붙어있던 놈이 저러고 있네.

도착하던 날은 열 달만에 왔어도 지 집이라고 먼저 대문앞에 뛰어가 꼬리치고 마당이며 집안 구섯구석 헤집고 다니며 좋아하더니만 또 갑자기 바뀐 이 일상이 견디기 쉽지 않은 것 같다. 저 의자는 울 아끼 지정석이기도 했었는데..ㅜㅜ

 

 

 

 

개들을 키우며 배운 것들도 많지만 가장 고마운 건 네 마리가 사이가 무척이나 좋다는 것과 서열이 없는 것.

특히 저 두 놈들은 9월 28일이 딱 사년이 되는 형제들. 힘도 비슷비슷해서 사야를 두고 으르렁대는 일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만 사년 동안 단 한번도 싸운 적이 없는 사이좋은 놈들이다.

기억하실 지 모르겠지만 나흘간을 두 번이나 가출했다 역시 사이좋게 돌아온 놈들이기도 하다.

 

 

 

삼주전 사진이다만 저리 사야만 가면 붙어서 난리가 아닌 녀석들.

누군가는 무슨 애완견(아마 작은 품종견들을 말하겠지)도 아니고 저 난리들이냐고 하고, 그래 사야에게 오지 않았다면 일미터 개줄에 묶여 살았을 견생들이긴 하다만  어느 고급 품종견들 못지않게 똑똑하고 감정표현이 확실한 놈들이라니까.

 

 

 

어쨌든 삶이 힘들 땐 잘 먹는 게 최고. 오랫만에 정성스레 전복죽을 끓여 진짜 오백년만에 일인용이긴 하다만 식탁보까지 깔고 식사를 했다.

사야는 원래 전복죽에는 아무것도 안 넣는 딱 그 재료지상주의(?)인데 자꾸 다양한 영양소를 섭취해야한다는 내면의 압박이 저리 컬러풀한 죽을 만들게 하네..^^;; 

식탁보를 다리는 게 큰 일이었던 적도 있었는 데 이렇게 또 추억은 아련히 간다..

 

 

 

그리고 씽씽이와 함께 산책에 나섰다.  십개월만인데도 울 씽씽이 갈 길이 어딘 줄 알고 잘 가더라. 조금만 멈춰서도 저리 기다려주고..

 

 

 

찬란한 햇살을 받은 황금들판. 슬프게도 수해를 입은 논이 생각보다 많더라.

 

 

 

햇살이 어디에 걸리건 늘 아름답다만 그 중 갑이 이 강아지풀이 아닌가 싶다. 아니 어린 시절 강아지풀을 가지고 놀던 그 기억에 따른 감정적인 편승인가.

 

 

 

사대강지류 공사로 한동안 와볼 수 없었던 이 곳은 저 밑이야 시멘트 투성이겠지만 고맙게도 보기엔 다시 친환경적으로 돌아왔더라. 저 산책길로 만들어놓은 곳에 자란 풀들이며 쌓인 모래를 보니 공사는 별 소용이 없었던 것 같고 말이다.

 

 

 

혼자걷기엔 좀 애매한 곳이라 씽씽이 덕에 오랫만에 나와 본 청미천.

아직도 저 뒷쪽으론 공사가 진행중이라 도는 지점에서 씽씽이가 물속에 풍덩풍덩거리는 동안 담배 한대 피우던 낭만도 사라졌고 새떼며 울 씽구리가 괴롭히던 꿩들의 보금자리도 사라져 서글프더라만 그래도 저 풍경이라도 있는 게 다행이었다.

 

 

 

 

진짜 오랫만에 신나는 산책을 마친 울 씽이는 강제목욕을 당하곤 떡실신. 좀 전에 일어나 밥도 먹고 간식도 먹었다만 안쓰러운 건 매한가지.

한번만 불러도 오던 놈이 몇 번을 부를만큼 어찌나 방방 뛰던 지. 그러니 또 이사간 지 일년이 다 되도록 산책 한 번 못하고 있는 나머지 놈들이 생각나 또 우울.

 

무슨 동물학대도 아니고 날이면 날마다 산야를 떠돌던 놈들이 이사간 지 일년이 다 되도록 집밖 출입을 못하고 있다. 바로앞이 국도니 그것도 겁나고, 주변이 또 산이니 잘못하다 덫에라도 걸리면 그것도 큰 일이고..

내려가서 새깽이들 보는 것만으로도 힘들어 한동안은 잊고 있었는데 오늘 씽씽이 한시간 넘게 좋아죽는 걸 보니 다른 놈들 생각에 죄책감도 느껴지더라.

 

우짜든둥 저 놈들의 괴로움은 빼고 사야는 좋았다.

씽씽이가 와서 든든하고 산책도 할 수 있어 좋고 대답은 없다만 수십마디라도 건넬 수 있어서 좋다. 거기다 저 등치의 체온을 느낄 수 있어서 더 좋다.

체온..

겨울을 거치며 점점 밝아지고 온도가 올라갈 때는 몰랐는 데 갑자기 추워지고 해지는 시간도 짧아지니 진짜 혼자라는 사실이 두려워지더라.

이런 후폭풍이 있을 줄이야 몰랐다만 무리인 줄 알면서도 씽이를 데려오고 싶었던 간절한 이유였을 거다.

 

 

 

 

담양집에도 이리 부엌에 냉장고가 생겼다.

저리되기까지 그 구구절절한 사연이야 이루 말할 수가 없다만 수미터옆에 있던 냉장고를 왔다갔다하던 사람으로선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거기다 사야집에도 없는 전자레인지도 있다. 물론 저 냉장고랑 전자레인지를 산건 사야다.

 

인간이 우습다랄까 아님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고 이야기해야할까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한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던 스피노자는 아니다만 사야는 늘 살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사야가 강해서가 아니라 사는 거 살아 내는 거, 할 게 그거 밖에 없어서다.

누누히 강조하지만 사야는 태어나서가 아니라 왜 살아야하는 지를 아직 모르기 때문에 끝까지 살아야 한다니까.

 

 

근데 참 이상하게도 삶이 힘들었던 건 마찬가지인데 요즘은 남을 원망하는 마음이 자꾸 생기더라는 거다.

물론 남을 원망하는 만큼 자신이 속으로 삭혔던 그 원망때문에 얼마나 다른 사람들을 괴롭혔는 지도 보이더라는 공평함이 있더라만.

특히 전남편에게 화를 냈던 그 무지막지한 시간들이 대부분은 사야 스스로의 상처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도대채 그 얼토당토한 화를 어찌 그리 참아내며 웃었는 지, 물론 그 남자는 열등감이 적은 사람이라 가능하기도 했겠다만 새삼 고맙고 미안하고 그렇더라.

 

국제의학회에도 등재되었다는 한국의 홧병. 남친에게 내재된 그 화를 보면서 참 당황스럽기도 하고 신기했었는 데 알고보니 사야에게도 내재되어 있더라구.

남친은 그래도 그 화를 욕으로 순간순간 내뱉는 능력(?)을 타고났다면 사야는 그것조차 할 수 없었던 인간이라 전남편을 전남친을 괴롭혔더라는 거다.

그래 결국은 또 사야다운 마무리

그렇게 화를 내고 짜증을 내도같이 살았던 전남편이나 전남친이나 사야가 좋았다더라..^^;;

  

 

그래 음식은 늘 해먹고 반성(?)도 늘 하고 빨래는 가끔 한다만 일상이란 글을 올리게 된건 산책때문일거다.

걷는 걸 미치도록 좋아하는 사야에게 오늘 오랫만의 산책은 정말 좋았다.

거기다 산책하면서 고기공놈하고 한 이야기.

 

그래 사야는 살고 싶어서, 잘 살고 싶어서도 아니고 간절히 그냥 살고 싶어서

이렇게 애쓰고 있더라는 거다.

그 난리를 치고 냉장고를 샀고 그 난리를 치고 씽이를 데려왔으니 어떤 경우건 살아야하는 건 맞는 거니까.

웃음이 난다

사야처럼 이렇게 간절히 살고 싶은 인간있으면 나와보라그래..ㅎㅎ

 

다시 여주다.

정착하고 싶어 남편까지 버린 사람이 사십년도 넘게 만에 산 이 집,

죽었다 깨어나도 혼자는 못살 줄 알았던 사야가 그나마 일년 가까이 버텨낸 이 집을

그러니까 간절히 정착하고 싶어서 돌아온 이 땅에서 최초로 사야가 마련했던 이 집을 사야는 또 삼년만에 포기해야하는 걸까

아무리 유목민 생활을 팔자로 타고 났다고 해도 조금은 벅차다..

 

 

 

 

2013. 09.16. 여주에서... 사야

 

'4. 아늑한 모래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또 하나의 특별한 경험  (0) 2013.09.20
엄청난 추석선물..ㅎㅎ  (0) 2013.09.17
재밌는 단상  (0) 2013.09.04
구월이 시작되었다.  (0) 2013.09.02
뜻밖의 손님..^^  (0) 2013.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