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글에 잠시 언급을 했더니 여기저기서 전화도 오고 반응들이 뜨겁다..ㅎㅎ
근데 생각해보니 사야가 외사랑은 몰라도 짝사랑은 전문이었더라는거다. 누군가 그 차이가 뭐냐고 묻던데 짝사랑은 상대가 내가 좋아하는 지 모르는게 짝사랑이고 외사랑은 상대도 알고 있는 그러니까 더 슬픈게 외사랑이다..^^;;
사실 사야가 여기 늘 첫사랑놈, 어쩌고 쓰는 그 놈도 사야가 십년넘게 짝사랑했었더랬다. 너무 좋았는데 표현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친구라는 이름으로 아주 오랜 시간을 옆에 있었다. (아 물론 사야가 그 사이에 연애를 안했다는 건 아니다..ㅎㅎ)
오늘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한데 거절당하는 것이 두려웠기때문이다.
그러니까 사야는 사야가 좋아한 사람보다 사야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연애를 했다. 가는 사람 잡지않고 오는 사람 막지 않는다는 사야의 생각은 그렇게 형성되었다
아 물론 재수없게도 사야의 매력에 한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가 없었던 관계로(사야가 한 표현이 아니다..^^;;) 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만..하하하
어제 큰언니부부가 다녀가 엄마이야기며 가족이야기를 해서 여전히 좀 아프다만 어쨌든 나를 조건없이 사랑해야하는 엄마에게 거절당한 기억은 사야를 그런 인간으로 만들어버린거다.
그러니까 엄청 사람좋아하고 인간관계 좋아보이는 사야가 사실은 관계에 굉장히 미숙하다는 거다.
이건 꼭 남녀사이에 문제만이 아니라 여자친구들도 따져보면 자연스레 친해진 사람보다 사야에게 다가와서 친해진 경우가 더 많더라는 거다.
그러니까 늘 안전한 선택만을 했다고 해야할까.
불에 한번 데인 아이는 불옆에 안가듯이 이미 깊은 상처가 있던 사야에겐 상처를 받는 다는 게 끔찍할만큼 고통스러운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어찌 용감하게도(?) 독일인과 결혼을 해서 그 먼땅으로 떠날 생각을 했냐고 물으면 의외로 대답은 간단하다
당시 엄마에게서 한국땅에서 간절히 도망치고 싶었기때문이다.
얼마전 정신과샘이랑 이야기도중' 왜 한국을 떠났다고 했죠?' '겁이나서요' 왜 한국에 돌아왔다고 했죠?' ' 겁이 나서요'
유감스럽게도 사야의 대답이 이랬다는 거다.
사야가 삶을 후회하지 않는 건 늘 이야기하듯이 그땐 그게 사야에게 최선의 선택이었기때문이다.
다시 선택을 하라고 해도 사야는 그때 한국을 떠났을 거고 또 일본에서 한국으로 돌아왔을 거라는거다.
요즘 사야가 아이있는 사람들을 엄청 부러워는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 건 만약 아이가 있었다면 절대 한국에 돌아오지 못했을테니까
하긴 아이가 있었다면 전남편도 아이가 학교들어갈 때 쯤은 독일로 돌아갔을 가능성이 크니 뭐 결과론적인 이야기다만..
어느 분이 댓글에 사야가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면이 있는 것 같다며 사야에 대해 좀 쓰셨고 그 글을 읽은 몇 분이 어찌 만나보지도 않고 그리 잘 아느냐고 그 분은 통찰력이 대단한 것 같다고 하던데 맞다
사야속엔 아직도 그 상처받은 어린아이가 여전히 부들부들 떨며 살고 있다.
거침없고 당당하고 어디가서도 기가죽지 않는 사야지만 혼자인 것을 못 견뎌하고 같은 상처를 가진 사람만 보면 정신을 못차리는 그런 연약한 사야가 말이다.
어찌보면 엄마에게 감사해야할 지도 모르는, 강자에겐 강하고 약자에겐 약한 사야의 좋은(!) 품성은 강자인 엄마가 약자인 자식에게 너무나 모질었던 반대급부다.
사실 그리 오래 좋아했던 첫사랑이 결혼을 하자는데 그걸 뿌리치고 전남편과 결혼을 한 건 위에 쓴 이유도 있지만 전 남편이 첫사랑놈은 언제라도 다시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지만 자긴 쉽게 연애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에 설득당했기때문이다.
그 엄청난 결혼마저도 미치도록 사랑해서 한 건 아니었단 이야기다.
누군가 사야가 참 위험해보인다는데 그건 이십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국제결혼이라고 다 반대할 때 못살면 돌아오면되지 뭐, 했었는데 말이 씨가 되어서인 가 결국 돌아왔다만 그때도 삶을 포기해서 그런 선택을 한 건 아니었다
그랬다면 그때 결혼하자는 사람들 아무나랑 결혼해 그냥 살았지. 그 낯선 땅으로 가 새로운 시작을 해 볼 생각은 못 했을테니까.
십오년 간 그 많은 나라를 옮겨다니며 이를 악물고 살 수 있었던 건 전 남편이 너무나 좋은 사람이었던 이유도 있었지만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엄마를 버리고 떠났으면 한국을 버리고 떠났으면 다 잊고 좀 냉정하게 삶을 살았으면 좋으련만 사야는 또 그게 안되더라는 거지.
이제서야 후회, 라는 걸 한다. 이십년 전에 엄마랑 관계를 아예 끊어버렸다면, 그 전 일이야 어쩔 수 없더라도 그 이십년 동안만이라도 엄마의 독설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면 사야는 지금 보다는 더 치유되어있지 않을까
아니 그땐 아니더라도 전남편이 이젠 그만 괴로와하고 엄마와의 관계를 끊으라고 충고했을 때 끊었더라도 지금보단 좀 낫지 않았을까
왜 사야는 진정으로 엄마를 용서해야만 자유로울 수 있다고 믿었던 걸까. 엄마같은 사람이 될까봐 자식낳는 것도 끔찍해했던 사야는 도대체 왜 그랬던 걸까. 왜 사야는 조금더 독하지 못했던 걸까
이제 엄마는 용서해주고 말고도 없는, 스스로 만든 삶의 틀속에 갇혀 외롭게 늙어가는 약자일 뿐이다.
미워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란 말이다. 그냥 내 엄마, 나랑 닮은 점이 많은 불쌍한 인간일 뿐이더라는 거지
평생을 엄마같은 인간은 되지 않겠다고, 내 엄마를 반면교사로 삼고 미친듯이 살아왔는데..
나처럼 당한 적도 없는 울 큰언니도, 어제 형부가 자기를 울엄마 닮았다는 말에 히스테릭할 정도의 반응을 보이는데 가슴이 많이 아프더라.
어쩌다 울 엄마는 저런 인생을 살게 된 걸까.
Bacic anxiety (미안하지만 지금 이 말을 번역할 기운이 없다.)
사야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다. 뭐 어찌보면 사야입장에선 애정결핍증이랑 비슷한 말이기도 하다만 우짜든둥 사야가 극복해내야하는 지금으로선 최우선의 과제다.
가토 다이조라는 사람의 '착한 아이의 비극' '왜 나는 눈치를 보는 가' 그런 관련책을 읽고 있는데 (그래 유감스럽게도 아직도 읽고 있다..ㅎㅎ) 정말 사야에겐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사야가 누군가를 짝사랑한다고 쓸 수 있었던 건 그 짝사랑을 여기 남기고 끝낼 생각이 있었던 게 가장 큰 이유이긴 하지만 일단 사야가 조금은 회복되고 있다는 증거다
사야는 지금 어른이 되어 갈려고 무진장 애를 쓰는 중이다.
온전한 어른, 혹은 한 인간이 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 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만, 더 늦기전에 사야는 그 인간이 한 번 되어보고 싶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사랑한다란 말도 해보고 싶고, 아니 무엇보다 사야는 엄마에게 사랑을 받아보고 싶다.
사야야말로 엄마를 짝사랑하는데 울 엄마는 너는 할만큼 했으니까 엄마 죽어도 울지말라는 이야기만 하네..ㅎㅎ
자신외엔 누구도 사랑하는 법을 잘 모르는 내 엄마가 참 안타까운 밤이다...
당신 딸로 태어나서 내가 얼마나 고통받고 살았는 지 당신은 모르지
근데 당신때문에 또 내가 얼마나 괴로와하는 지 그것도 당신은 모르지.
나를 왜 이렇게 낳아놨니?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덜 괴롭히지 그랬냐구...
2013.01.08. 여주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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