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묻은 삶

존재자체가 아픔이다.

史野 2013. 1. 22. 18:48

'짝사랑때문에 든 생각'에도 썼지만 사야는 사실 먼저 다가가지 못하고 다가오는 사람들, 그러니까 주로 사야를 좋다고 하는 사람들만 만났다.

역시 '오래된 기억'에 쓴 것처럼 사야는 당당하고 나름 멋진 구석이 있는 인간인데 그걸 자신만 인정 못하는 것 같다고 지난 금요일에 정신과샘하고 비슷한 이야길 했었다.

 

 

얼마전 친구랑 통화를 하다가 친구도 마침 하던 일을 쉬고 있다고 해서 결혼식 끝나고 함께 여주로 내려오기로 했다.

예전에 사야가 서울에 오자마자 찾고 싶다고 썼던 그래서 첫사랑놈이 찾아줬다는 그 친구다.

이사는 했지만 전학은 하지 않은 관계로 중학교친구는 아니지만 교회때문에 중학교때부터 알다 고2때 같은 반이 되어 더 친해진 친구,

사야의 졸업작품 모델도 서주고 사야 결혼식에 승호엄마랑 같이 야외촬영도 도와줬던 진짜로 친한 친구.

그러다 사야가 떠도느라 연락이 끊겨 십년간 만나지 못하긴 했지만 사야에겐 정말 자연스럽고 편한 친구말이다.

 

정신과샘에게 사야는 자연스런 관계가 별로 없는 것 같다고 했더니 자연스런 관계란 뭘 말씀하시냐고 하던데 이 친구가 그 많지 않은 자연스런 친구중 하나랄까.

고등학교때 사야가 극심한 두통으로 학교를 밥먹듯이 빠졌다는 이야긴 했을 거다. 그때 링겔을 몇 번 맞았는데 그게 팔이 엄청 아프다. 그럼 와서 그 팔도 몇 시간씩 주물러주고 사야가 화실에서 밤새면 우리집에가서 양말이나 속옷도 가져다주고

지난 번 이사할 때 어깨를 다쳤을 때도 여주까지 와서 청소며 정리며 다 도와준 친구..

아무리 연락을 자주 안하고 살다가 만나도 그저 반갑고 자연스럽고 그런 친구.

우산없는 사야가 역에 가만히 서있는데 일본만화영화에서 막 빠져나온 듯 생긴 이 친구가 처음으로 우산 씌워줄까, 물어서 얼마나 기뻤었는데..

친구집에가서 잔다는 건 불가능했던 관계로 자본 적은 없지만 그 집 숟가락 갯수까지 알 정도로 드나들고 그 친구의 형부와 올케언니도 물론 잘 알았지만, 이년 전 겨울, 동생이랑 제부까지 와서 즐겁게 놀다 갔다는 그 친구.

 

사설이 길다고? 그래 그럴 수 밖에 없다

사야에겐 그런 친구인데 어제 이 친구왈 사야가 당시 자기를 무진장 무시했다는 거다. 거기다 사야주변엔 늘 친구가 넘쳐났고 자긴 늘 거리감을 느끼고 살았다나?

이런 충격적인 이야길 삼십년이 지나 듣다니.. 그리고 그렇게 친하고 좋아했던 친구에게 그런 상처를 주었다니..

어느 정도 말은 맞다. 고2때 일곱명이 친구였는데 사야는 그 여섯하고 다 친했다. 그 친구는 나랑 또 한명 정도? 그 한명도 사야가 생각하는 그 자연스런 친구중 하나라 우리 둘 다 간절히 찾고 싶은 친구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 중 공부를 제일 잘했던 두 친구가 사야를 무진장 좋아했다.

그 친구들을 헷갈리니 A와 B라고 하자. 사야야 뭐 그냥 다 친하니까 별 생각이 없었는데 B가 사야에게 너랑 정말 친해지고 싶은데 다가갈 수록 자꾸 유리벽같은 것이 느껴진다고해서 충격받았던 적도 있었는데 저 친구마저 사야에게 거리감을 느꼈다니..

 

A는 고2때 뿐 아니라 고3때도 같은 반이었던데다 대학까지 같이 갔다.

공부는 A가 사야보다 잘했지만 이야기했듯이 사야는 학교를 밥먹듯이 빠지긴 했어도 국영수를 워낙 잘했던 관계로 모의고사는 사야가 늘 잘봤고 당연한 결과로 학력고사도 훨씬 잘봤다.

고등학교때 그 A가 사야에게 열등감을 느낀다는 장문의 편지를 받은 적이 있다. 그치만 사야같은 친구가 있어서 너무 좋다 뭐 그런 내용이었다.

대학을 같이 갔기에 짱가놈도 A를 안다.

짱가놈이야 사야를 좋아했으므로 지금도 인정하진 않지만, 객관적으로 사야보다 예쁘고 키고 크고 일이학년 반장이었던 지라 카리스마도 있고 집은 방배동 마당딸린 이층집에 살던 친구가 그러니 솔직히 사야는 할 말이 없었다.

 

대학에 갔는 데 동문회(그러니까 짱가놈학교)를 가건 미팅을 나가건 사야가 훨씬 인기가 많은거다.

A는 학교다닐 때 공부만 했지만 엄마와의 갈등으로 삶이 죽을 맛이었던 사야는 책도 읽고 여행도 다니고 연애도 하고 길거리를 미친듯히 헤매다니기도 하고 교회가서 천장청소까지 별 짓을 다하고 살았다.

그러니 당연히 미팅을 나가도 화제가 풍부하지. A가 또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같은 내용이다. 사야가 뭘 어쩔 수 있었겠냐.

 

어쨌든 계속 친하게 지냈던 관계로 대학축제에 낼 그림에선 A가 모델을 서줬다. 기간은 다가오는데 약속을 잘 어기기도 하고 너무 예쁘게 입고 나타나기도 했어 어디가냐고 물어도 웃기만 했는데 알고보니 연애중이었던거다.

그것도 직접도 아니고 나중에 A과동기들에게서 들었다. 그때의 배신감이란..

A가 한 선배를 짝사랑할 땐 사야가 다 도와주고 집에 못들어갈 이유가 생기면 사야집에서 재우고  하던 친구였는데 말이다.

어제 송이가 했던 식장에서 결혼했다는 친구가 A인데 결혼식엔 갔다만 마음은 접었다.  

 

그래 사야 잘났다. 학교 그렇게 빠지고 할 짓 다해놓고 학력고사도 반에서 제일 잘봤고 사야에게 열등감 느꼈다는 사람들은 부지기수다.

그 잘난 리즈마저 사야처럼 당당한 인간은 처음본다고, 심지어 그 착한 마유미마저 열독(우리말로 독해다)시간에 사야에게 열등감을 느껴 학교를 못다니겠다고까지 말했다.

머리에 쥐나는 열독 중간고사인가를 팔십몇 점인가 받아 감동하고 있는데 울 중국어샘  어떻게 사야가 이 점수밖에 못 받았냐고 흥분하셨더랬다. 마유미 점수는 묻지도 마라.

시험보자마자 홍콩으로 와 버린 관계로 HSK 증서를 마유미가 찾아다 사야에게 보내줬는데  미안하다고 너무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며 열어보았단다. 등급이야 딱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만큼만이었지만 위에 말한 열독은 만점(!)받았다니까

 

독일에서 대학다닐 때 교수님에게 뭔가를 따졌다니 울 시누이, 독일인인 자기도 수업시간에 구석자리에 앉아 말한 번 한 적이 없는데 사야는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나냐고 엄청 부러워했다. 사야성격이다.

 

어학학원 다닐 때마다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인기짱이었고 (아니 몇 중국어 샘들은 사야가 하도 질문을 해대서 수업들어가기 싫었다더라만) 더블린에서 어린이집 다닐 때도 학부모들이 원장보다 더 좋아했고 콜센타에서 일할 때도 수습기간때부터 신입직원 교육했다.

사야가 빠지면 콜센타가 안 돌아갈 지경으로 전화를 잘 받아댄 관계로 그만둔다니 그 재수없는 지사장 앞으론 절대 한국회사에서 일 못하게 하겠다고 협박까지 했다.

 

독일에서 한국의 교육프로그램에 대해 다큐멘타리 형식으로 보여준 적이 있는데 울 신랑 저런 교육을 받고 어찌 너같은 인간이 나올 수 있냐고 정말 미스테리라고 했다. 아 그러고보니 남편은 모른다만 남편친구가 상해까지 찾아와 구애했다 거절당하자 남편하고의 관계를 끊어버린 일도 있다.

 

쓰자면 끝이 없으니 여기서 끝내자. 그래서 결론이 뭐냐고?

다는 아니지만 어제 친구랑 이야기하면서 사야가 고민했던 미스테리가 조금 풀리는 느낌이었다. 오늘 글을 쓰면서는 더 하다.

사야의 존재자체가 누군가의 아픔일 수 있었다는 걸 이제 받아들인다. 그것 때문에 너무 오랜 시간 고민하고 괴로와했다. 

나란 인간은 왜 이런 걸까, 왜 이렇게 태어난 걸까 자책하면서 말이다.

본인이 안고 산 문제만으로도 머리가 터질 것 같았는데 남들때문에 했던 고민이 너무 많았다는 이야기다.

이젠 놓으련다. 이 놈의 자기연민에서도 좀 벗어나련다 

어제 친구에게도 '그렇게 무시당한다고 느꼈으면 나랑 끝내지 그랬냐' 물었더니 그만큼은 아니었나보지 너에게 열등감을 느꼈었나보지, 하더라..

 

이 영민하고 마음 따뜻하고 합리적이고 눈치빠르고 사람 배려할 줄 아는 사야가

만약 조금 더 좋은 집안에서, 아니 좋은 집안까진 아니더라도 덜 학대받고 자랐다면 지금 어쩌면 나름 사회에 기여하는 인물이 되어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만

촌구석에 쳐박혀 술담배에 쩔어사는 이 사야가 그래도 울 엄마아빠 딸로 태어나 어쨌든 그 유전자를 물려받았고 그 모진고초를 겪으며 어쩌면 삶을, 인간을 더 이해하게 되었을 수도 있고,

그 잘난척하며 남들에게 상처주는 울 엄마를 안 닮으려고 죽을 힘을 썼으나 그렇다고 또 내가 엄마딸이 아닌 것도 아니니까, 부정하기엔 닮은 면이 너무 많으니까.. 살고 싶다는 이 삶에의 집착마저도 결국은 엄마를 닮은 거니까..

 

바보같이 또 눈물이 난다만 그래도 사야는 단 한순간도 죽어버리고 싶단 생각을 해본 적은 없으니까 그리고 지금도 사야에게 주어진 삶은 열심히 열정적으로 살아내고 싶으니까 사야 스스로를 용서하고, 아니 그만 불쌍해하고 그냥 생긴대로 잘난척하며 살아야겠다.

그래 그러다 누군가를 무시하고 상처줄 수도 있는 거지 뭐, 사야가 무슨 신도 아니고 아니 완벽한 인간도 아니고 말이다.

사야에게 상처받은 인간도 많겠지만 사야에게 위로받은 인간이 얼마나 많은 지는 사야 스스로 잘 안다.

 

얼마전 짱가놈이랑 이야길 하다 그 놈 아들이 이제 오학년이 된다길래 사야가 그랬다.

그럼 너는 앞으로 최소한 8년간은 살아야할 이유가 있네 나는 팔일도 없는데.. 

 

살아야하는 이유? 그래 이제 그 웃기는 소리는 그만하자. 삶에 지쳤다는 이야기도 더 노력할 힘이 없다는 이야기도 그만하자

노력안하면 되는 거니까. 너무 힘들다며 죽어버릴 용기도 없다면 그냥 한 템포 쉬어가면 되는 거지

맨날 술마시는 주제에 웃기는 말이긴 하다만 이젠 자기검열같은 것도 때려치우고 하루종일 술취해 있어볼 수도 있는 거 아닐까

 

구구절절히 많이도 썼다만

오늘은 참 살아가는데 너무나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사야가

스스로도 참 부담스러운 날이다...

 

 

참 얌마, 너 이 글을 읽고 있을 너

나는 진짜 몰랐다

지하철만 타면 나중에 찾지말고 표내놓으라고 구박하던 너

어이고 또 사고쳤구만, 하이튼 알아줘야한다니까, 라고 말하던 너

너를 누가 말리겠니, 하며 웃던 너

내가 우겼다는 그 이야긴 정말 미안하다만

내 말버릇이 본의아니게 네게 상처가 되었다면 그것도 미안하다만

난 네가 내 친구라서 참 좋았다

네가 날 간절히 필요로할 때 내가 옆에 있어주지 못했을 진 모르겠지만

넌 늘 내가 원할 때마다 와줬고, 또 같이 흥분하며 이해해줬고

사실은 그때나 지금이나 나를 구박할 수 있는 친구라는 것

그건 좀 알아줄래?

이박삼일 내 주절거릴 수 있어서 좋았고

반짝반짝 빛나는 싱크대를 보는 것도 행복했고

유자차 타다달라고 떼를 쓸 수도 있어 좋았고

너는 몰랐다고 하지만, 그 힘든 세월

뭘 부탁해도 들어주던 네가 있어서 행복했다

만약 그때 너도 같이 부산에 갔었다면 우린 더 행복해졌을까

너의 진심과 내 진심이 어긋났다고 생각하진 않는다만

그래도 임마, 어제 나는 많이 아팠다

 

 

 

 

 

 

2013. 01.22. 여주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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