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묻은 삶

어머니나 아들이나

史野 2013. 1. 25. 17:35

고기공놈이 사야의 시누이랑도 친분이 있는 관계로 사야가 고기공놈 결혼한다는 소식을 대신 전해주기로 했다. 그렇게 따지면 사실 신랑에게도 해야겠지만 아시다시피 요즘은 가능하면 연락을 안하려 노력하는 관계로 시누이랑만 통화를 시도했는데 안되는거다.

 

결국 고기공놈이 유럽의 지인 세 사람, 그러니까 본인친구와 지난 번 출장왔던 기도 그리고 시누이에게(고기공놈 엄마랑 유럽갔을 때 세 집에서 다 묵었던 사람들이다) 동시에 스튜디오 촬영사진과 함께 결혼한다는 소식을 알렸다는데 시누이만 연락을 안했다는거다.

 

절대 그럴 애가 아닌데 무슨 일이 있나 혹 시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생긴건가 어찌나 신경이 쓰이던 지.

역시 아시다시피 시어머니가 약간 치매기가 있으셔서 남편 새와이프랑 헷갈릴까봐 전화안한 지도 백만년.

도저히 안되겠어서 전화를 했는데 어쨌든 어머님은 너무나 멀쩡히 받으셔서 그냥 전화를 끊고 안도했다만 사야가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해 그냥 끊어버렸다니 기분 참 묘해서 아니 솔직히는 드러워서..ㅎㅎ 그 날도 술을 왕창 마셨다.

 

친구일도 있었고 그제 갑자기 삶이 너무 고단하단 생각이 들어 여기에 좀 주절거리려고 자판을 두드리다가 어찌 외숙모랑 통화를 하게 되었다.(그때 그 술사주신다던 그 분이다)

사야를 워낙 이뻐라하시기도 하지만 이쁜 우리 00이를 몇 번이나 말씀하시면서 진짜 소설에서 나오는 좋은 친정엄마처럼 전화를 받아주시는데 정말 눈물이 미친듯이 쏟아지더라.

그런 꼴까지 보이긴 그래서 얼른 전화는 끊었는데 그래도 누구랑이라도 통화를 하고 싶었는데 막상 전화를 걸면 나오는 건 눈물뿐. 눈물이 아니라 진짜 짐승처럼 엉엉 소리내며 몇 시간을 울었는 지 모른다.

 

아 내가 필요했던 게 이런 따뜻한 한마디였는데, 하는 생각에 더 서러웠는 지도 모르겠다. 유감스러운 건 지, 다행인 건 지 모르겠다만 사야가 기억하는 엄마와의 최초의 트러블도 이 외숙모앞에서였다.

사야 여섯살 때 이 외숙모가 조카를 데리고 놀려오셨었는데 그 조카가 뭔가 잘못해서 울 엄마가 엄청 열받는 사건이 있었다. 다섯 살인가 했던 사돈애를 때릴 수 없었던 울 엄마, 정말 사야를 길거리에서 개패듯이 팼다니까..ㅎㅎ

당시 어렸던데다 울 엄마에게 꼼짝 못하던 울 외숙모, 어쩔 줄을 몰라 말리지도 못하고 당신 조카 등짝만 두드리고 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우짜든둥..ㅎㅎ 그러니 어제 여기저기서 난리가 났는데 특히 울 큰언니네는 울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줄 알았다는 거다..^^;;

민들레님 전화오고 울 큰언니 전화오고 조카에게 문자오고..ㅜㅜ

오해는 풀었지만 외숙모만큼 푸근한 성품은 아니어도 늘 사야편이었고 사야인생에서 정말 잊을 수 없는 사람중 하나인 울 시어머니가 너무나 보고싶더라는 것.

그래서 또 술을 마시고 술김에 전화를 했다. 썼듯이 사야는 술김이라는 게 없는 무서운 사람인데 이젠 진짜 변했나보다.

 

아 울 시어머니, 사야가 신랑이랑 헤어진다니 그제 사야가 울었듯이 온몸을 떨며 미친듯이 울었다는 그 시어머니

반가와 죽다 모잘라 그리움에 목이 메이던 내 시어머니, 예전같았으면 전화비 많이 나온다고 내가 걸께, 하셨을텐데 삼십분 가까이 전화가 끊길까 내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하던 내 시어머니..

남편을 버리고 온 걸 후회하진 않는다만 아버님의 유언이기도 했던 시어머니를 지켜주지 못했던 건 지금도 가끔씩 아프다.

 

작년 사야생일에 시누이랑 통화할 때 시누이는 뮌헨 양로원으로 시어머니를 모셔가겠다고 했었는데 본인이 그냥 그 집에서 혼자 살만하시다더라.

'내가 너 한번 보러가야하는데' 했더니 난리났다. 아끼꼬도 있고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고 했더니 걱정말란다 자기가 설득하겠단다.

자기 와이프를 설득하고 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던 신랑메일이 생각나 그 와중에도 웃음이 나더라.

그래 이제서야 이 글의 제목이다. 어머니나 아들이나 철이없는 건 지...ㅎㅎ

 

절대 그러지말라고 만약 가게된다면 그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한다며 대충 전화를 끊으려는데 울 시어머니 간절히 그러신다

'너 내게 편지라도 해주면 안되겠니?'

작년에 만으로 여든, 울 시어머니에게 남은 날들은 얼마나 될까. 이 곳 여주 주소도 사야의 휴대폰 번호도 사실은 다 알고 계시는데

난 네가 어디있는 지도 모르고 연락도 안되고 편지라도 보내면 주소는 알거 아니냐고 묻는 연로한 내 시어머니.

이럴 줄 모르고 왔냐고는 묻지마라. 사야는 독한 인간이고 워낙 이기적인 인간이니까.

 

92년 여름에 처음 봤으니까 이젠 그녀하고도 이십 년이 넘었다.

그녀가 사야에게 했던 걸 생각하면 머리카락으로 짚신을 삼아도 모자란다만 예전에도 썼듯이 그녀는 당신 아들이 선택한 여자는 누구에게라도 그렇게 했을 거고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을거라는 걸 안다.

그렇다고 그녀와 내가 보낸 시간들을 그리 간단히 정리할 수 있는 건 아니지.

그녀가 아직은 그 집에 살고 사야를 기억할 때 가서 하버님묘소도 함께가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힘들어하는 그녀의 손을 잡고 그녀가 인생을 얼마나 애쓰며 살아왔는 지 안심시켜주고 위로해줘야하는데..

그게 참 쉽지가 않다.

 

너무나 다행인건 울 시누이가 오는 오월에 드디어 애 아빠랑 결혼을 한단다. 지난한 세월, 결국 결실을 보게되고 무엇보다 내 시어머니가 그걸 경험할 수 있게 되어 너무나 감사하다.

왔다리갔다리 울 시어머니 물으시네 너도 결혼식에 올꺼냐고..^^;;

 

그래 결혼식은 아니더라도 사야야 뭐 마음만 먹으면 미친척 독일로 튈 수도 있고 그녀의 손을 잡아줄 수도 있고 포도주잔 앞에 놓고 밤새 그녀의 이야길 들어줄 수도 있다만 그게 또 다른 누구에게 상처가 된다면, 그것도 사야가 아끼는 그 남자의 와이프를 속상하게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울 시어머니 사야에게 엄청 중요한 인간이긴 하다만 유감스럽게도 남편만큼은 아니다. 만약 정말 독일에 가게된다면 그 남자랑 의논의 의논을 거쳐야할 것 같고 그 쪽으로 최대한 피해가 안가게 사야가 노력해야겠지.

 

행동을 하느냐 아니냐와 다른 문제인게 시어머니를 뵙고 와야하는 당위성(?) 아님 사야가 앞으로 인생을 조금 더 편하게 살기위한 보험(?) 그 비슷하 건 맞는 것 같아 더 고민이다

물론 남편때문에 맺어진 관계긴하다만 신랑이나 시누이나 엄마가 너한테 그런 이야길 다했다고 놀랠정도로 깊은 관계이기도 했고, 그 둘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한, 시어머니가 남편에게 갖던 고민이나 열등감을 나눈 관계이기도 하다

사야가 수다쟁이이긴 하지만 떠벌이는 아니라니까..^^

울 시어머니는 세 자매중 맏딸인데 이런 이야긴 동생들에게 못해봤다며 풀어놓은 신 이야기들도 많다.

 

남편부부 그래 적확히는 전남편부부가 지금 독일에 있다. 그들의 운명이(?) 어찌 될 것 인지는 어제 시어머니랑 이야기도 했고 이 오지랖 사야도 궁금하다만 그래서 더욱 힘들다

만약 독일에 가게 된다면 올해안에 다녀와야하는데, 어떤 방법이 가장 좋은 건지

그녀가 사야를 얼마나 원하는 지 사야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데, 그리고 그녀가 살아있을 때 다녀와야 사야도 인생이 그나마 편할텐데

어제 그녀랑 통화하고 났더니 아주 미치고 팔짝 뛰겠다

내 시어머니, 아니 내 엄마, 나를 낳지는 않았지만 엄마가 뭐라는 걸 절실히 보여준 바로 그 여자

 

한나, 정말 미안하다

네가 나를 간절히 필요로 할 그 때 내가 옆에 있어주지 못해서..

그리고 마틴은 나를 믿고 갔는데 그 약속도 지켜주지 못해서..

그게 아니었다고 네 아들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고  설득시킬 수도 없어서

그럴 수 밖에 없었는데 그걸 이해시키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

 

아 갈께

너를 보러 꼭 함 갈께

아무리 치매가 심해져도 너는 나를 찾을 거라 믿지만

아니 그래서 더 가고 싶지만

아 정말 미안

너보다 완벽한 며느리는 없을 거라 네 아들이 이야기했지만

너처럼 완벽한 시어머니는 내게 없었을 거다

너무, 정말 너무 많이 미안하다

도대체 지금 내가 너를 위해 뭘 해줄 수 있니

정말 간절히 너를 위해 뭔가 해 줄 수 있는 게 있으면 좋겠다..

 

 

 

 

2013.0125. 여주에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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